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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블루스]에 적셔드는 흑인의 고달픈 설움
김영주 2004/07/04 18:35    

컴퓨터 앞에 앉으면, 맨 먼저 음악싸이트를 찾아 ‘다시듣기’를 접속한다. KBS FM1에 김미숙의 <세상 모든 음악>과 오정혜의 <풍류마을>, EBS 라디오에 <세계음악기행>, 라디오21에 강헌의 <아날로그 까페>을 골고루 돌아가면서 듣다가, 틈틈이 <오이뮤직의 뮤직비디오>를 찾는다. 특히 우리 판소리나 민요 그리고 라틴 이슬람 인도 아프리카 스페인의 민속음악을 매우 즐긴다. 재즈 블루스 포크 칸쵸네 파두도 좋아한다. 클래식은 열에 여덟 아홉이 지루하고 때론 지겹기까지 하다. 락음악은 킹 크림슨의 에피탑이나 이글즈의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좋아하는 곡도 없지 않지만 대체로는 싫고, 펑크락 하드락은 제발이지 싫다.

락음악을 싫어하면서도, 틈나는대로 락음악의 발자취를 더듬더듬 찾아본다. 왜냐면 오늘날 우리나라 문화를 알려면 미국문화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선시대를 알려면 중국의 송명시대를 먼저 알아야 하듯이, 우리 대중음악사를 알려면, 미국 대중음악사를 먼저 알아야 한다. 미국문화에서 락음악이 갖는 무게가 너무 크기에, 락음악이 좋든 싫든 지성으로든 감성으로든 가까이 해야 한다. 락음악을 가까이하면, 저절로 락음악에 앞선 백인 대중음악과 흑인 대중음악을 접하게 된다. 거기에서 ‘블루스’를 만나게 된다.

나에겐 미국 대중음악에 관한 몇 권의 책, 그리고 케이블TV에 방영된 ‘락음악, 그 60년대와 70년대’, 5년전 쯤 교육방송 라디오 특집 임진모와 강헌의 ‘대중음악사회사’를 녹음한 30개 테이프, 작년 봄쯤에 Q채널에서 방영한 BBC 8부작 특집 ‘팝100년사’를 녹화한 비디오가 있다. 이걸 거듭 보고 들으면서, 블루스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블루스의 뿌리’가 궁금했다. 막연하게 미루고 있던 차에, [부에나비스타 쏘셜클럽]의 감독 빔 벤더스이 또 다시 그렇게 만든 음악영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이 상영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게 [택시 드라이버]의 감독 마틴 스콜세지가 제작하고 지휘하여 만든 7부작 다큐멘터리의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그 7부작이 모두 아마 8월 말쯤부터 교육방송에서 방영될 예정이라 걸 듣고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야호!!!” 교육방송은 항상 너무너무 고맙다. 공짜로 금싸라기 같은 보물을 줍는 이런 기쁨을 그 무엇에 비기리오.


우리의 대중음악은 미국의 대중음악의 껍데기만 흉내내어 우리 그 시절의 어떤 감성에 맞추어 변형된 것이다. “백고가 불여 일부라고, 백 번 고고 추어봤자 한 번 블루스 춤만 못하다”는 내 스무살 시절의 명언이 있다. 미국 남부의 블루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끈끈척척하게 유혹하는 ‘장미빛 스카프’의 진하게 늘어지는 색소폰 소리”하고는 사뭇 다르다. 삶의 설움이 배인 흑인 영가에 목화밭의 땀내나는 고달픔이 새겨지고 맺혀서 새어 나온 신음소리이다. 고된 일을 잊으려거나 한 숨 돌리는 틈에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꺼나 집어들고 두들기고 긁으며 그냥 매갑시 그렇게 뽑아보는 한 가락이었다. 비록 곡조는 다르지만, 문득 채정례 할머니의 ‘진도 씻김굿’하고 울 엄니의 ‘타향살이’가 떠올랐다. 전문가의 닳고 닳다 발랑 까지기도 하는 그런 솜씨하고는 전혀 다르다. 그 발성이 귀에 설어서 가슴을 파고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삶을 새기면서 듣고 또 들어보니 그 슬픔이 점점 적셔들어온다. 느리게 슬픈 블루스가 도시로 가고 새 시대를 맞이하며 빨라진 리듬 앤 블루스로 변하거나 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만나면서, 그 소박함과 처연함이 사려져 간다.

이 영화는 [영매]나 [송환]처럼 다큐영화이다. 그러니 다큐의 미감에 낯선 사람에게는 재미 없는 영화이다. 우리의 이야기도 아니고, 널리 관심 갖는 이야기도 아니며, 요즘의 어떤 화끈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니 더욱 재미 없을 게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알고픈 사람, 우리 대중음악사와 미국 대중음악사의 긴밀한 고리를 살피고 싶은 사람, 전통문화와 현대문화 그리고 상류문화와 서민문화 사이의 갈등과 접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런 걸 보아두고 모아두어 세월을 묵히며 숙성시켜야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떻겐가 우리 생활 깊숙이 피와 살에 적셔들게 된다.


문화는 이렇게 ‘긴 세월과 잔잔한 숙성’을 먹고 자란다. 그러니 문화정책이란 눈 앞의 열매를 다툴 수 없다. 그 잔잔한 숙성의 터전을 닦아주고 길고 긴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화산업정책하고는 자못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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