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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올드 보이]의 ‘칸-그랑프리’에 시비 걸다.
김영주 2004/05/31 10:01    

작년 11월. [올드 보이]를 이야기하였다. “... ...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에 반해서, 뭔가 껄끄러운 예감이 들면서도 [복수는 나의 것]을 굳이 보았다. [공동경비구역]이 좀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번 [올드 보이]도 '기능적 기술'로 보자면 '잘 만든 영화'이다.

그는 상당한 문제의식과 작품 실력을 갖춘 감독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잔혹한 엽기영화로 인공조미료를 잔뜩 뿌려 솜씨 자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땅의 어두운 그늘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가 왜 이렇게 그런 잘못된 잔혹함에 집착하는 걸까? 그래도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밑바탕에 깔린 깊은 설움과 분노를 보여주었지만, 이번 [올드 보이]에서는 일본사회의 그늘에 숨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흉내내면서, 기발한 역습이나 반전으로 관객에게 ‘공포의 깜짝쇼’를 펼치는 재주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무얼 어찌하겠다는 건가! 돈 좀 벌어 보겠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우리 사회에 깔린 잔악한 폭력을 고발해 보겠다? 그건 관객의 눈높이를 무시한 처사이고. 이런 표현양식을 개척해서 우리 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 그건 남의 손 빌려 코 닦으며 자기 멋에 빠진 자아도취이다.”라며 그의 작품실력을 인정하지만, 바람직한 영화가 결코 아니라고 비판하였다.

큰 상 받은 영화나 인기를 끈 영화를, 나도 함께 환호작약하며 만장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도 상을 준 사람들이 갖는 권위에 기대고 싶고 수많은 사람이 즐기는 걸 함께 즐기고 싶다. 남들이 다 좋다는데, 나만 홀로 삐딱하게 비틀어지고 싶지 않다.

더구나 [올드 보이]처럼 세계적 권위를 갖는 일에, 나만 비틀어지면 내가 ‘웃기는 짜장면’이 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기존의 학문이나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고, 비엔날레의 현대미술에 시비를 걸고, 락음악이나 클래식음악에 삿대질 하며, 새로운 사색틀과 새로운 문화운동을 주장하는 내 모습에, 내 스스로 어찌 불안하고 긴장되지 않겠는가? 내 스스로는 확고하지만, 그렇다고 남의 코웃음을 귓등으로 흘려넘길 정도로 강하지도 못하다.

[실미도]와 [태극기 ]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이번엔 [올드 보이]가 칸느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것이, 결코 즐겁지 않다. 스스로 돌이켜 보았으나, 이건 ‘잘 나가는 짜식들’을 끌어내리는 ‘시기 질투’가 아니며, ‘잘 난 놈들’을 씹어대며 내 자신의 레벨을 높여보려는 ‘자기 기만’도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박찬욱 감독은 사회문제에 상당히 깊이 있는 안목을 갖고 있으며, 기술적 작업능력도 매우 높다. 우리나라에서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진짜 능력을 갖춘 아주 드문 감독이다. 이창동 감독에 비해, 예술성은 거의 버금가고 대중성은 훨씬 낫다. [취하선]의 임권택 감독이나 [스캔들]의 이재용 감독하고는 차원이 훌쩍 다르고 방향이 아예 다르고 미감이 사뭇 다르다. 잔혹 엽기물만 가지고 말하더라도, 일본이나 서양의 어떤 엽기물보다도 내공이 깊다. 김기덕 감독의 엽기물하고는 차원도 다르고 내공도 다르다. 타란티노의 [킬빌] 정도 엽기물은 유치하다.( 내 눈에 [킬빌]은 C급영화이다.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영화감독이 어떻게 칸느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인지 이해가 안 된다. 서양의 현대예술계가 상당히 뒤틀려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그가 [올드 보이]를 보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시기 질투하면서도 [올드 보이]에 그랑프리를 안겨준 주도자였다는 건, 그가 인격적으로 수준 낮은 사람은 아닌 모양이다. 그가 [올드 보이]에 반한 건, 그의 [킬빌]의 엽기성 미감하고 매우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 엽기성의 미감을 인정하고 보자면, [복수는 나의 것]이 훨씬 낫다. 대중의 눈으로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오바 페이스해서 실패하였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이미 어떤 큰 상을 받고도 남을 그릇이었다. 내 가늠자로 보아, 임순례 이창동 장준환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의 감독이며, A+라고 하긴 어렵지만, ‘A급 세계적인 감독’이다. 칸 영화제가 아무리 까다롭더라도, 얼마든지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감독이다. 그럴 만한 감독이 그랑프리를 받았으니 우리 영화의 크나큰 경사임에도, 내가 결코 즐겁지 않은 것은 현대예술의 뒤틀린 풍조와 거기에 한 줄기를 잡은 잔혹엽기물의 ‘병적인 섬뜩함’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에 깊이 걸려있다. 보수적 예술 쪽은 그 나쁜 병을 화사함과 풍요로움을 앞세워 꽃단장으로 덮어버리거나 가족이기주의의 달콤함 안으로 숨어서 눈 감아 버리거나 세상사를 초연한 듯한 자기 위선으로 도피하고 있으며, 진보적 예술 쪽은 그 나쁜 병을 비탄하고 분노함이 뒤틀려 정신분열적 자학증으로 극렬한 오기를 부리거나 퇴폐적 데카당스의 자폐적 쾌락에 빠져 자포자기의 난장판을 부른다.

결국 보수적 예술은 ‘자아도취 뺑끼칠’로 넘치고, 진보적 예술은 ‘막무가내 깽판’으로 치닫는다. 이런 자기 패거리 집착은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이 낳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을 고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류문명에 더 깊은 상처를 주고 골을 깊게 패이게 한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그게 보수적인 쪽이든 진보적인 쪽이든 ‘아주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에 하겠다. ‘현대예술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수렁’을 준비하여, 푸코 데리다 들뢰즈를 비판하려고 한다. )

그 중에 하나가 잔혹엽기물이다. 그 어느 무엇에든 매니아는 있다. 그 매니아들이 즐기는 개인적인 취향 자체에 시비를 걸고자 하는 뜻은 없다. 설사 그게 내 개인적인 관점에서 “나쁘다”하더라도, 다른 사람 모두에게 나쁘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 또 설사 그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쁘다고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나쁜 것도 그 나쁜 대로 ‘존재의 의미’는 있다. 모시옷과 털옷에 궁극적으로 ‘선악 시비 우열’은 없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 삶의 현장이 7월 여름이면 “모시옷은 좋고 털옷은 나쁘다” 그리고 1월 겨울이면 “모시옷은 나쁘고 털옷은 좋다”를 말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잔혹엽기는 우리 삶에 생생한 어느 한 영역임에 틀림없다. 실은 따지고 보면,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기본적으로 잔혹엽기를 깔고 있다. 그러니 세상 모든 생명의 삶과 죽음에는 잔혹엽기가 밑바탕에 깔려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생명체와 다른 인간만이 갖는 독특한 패턴이다. 그 독특한 패턴이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우리 인간의 삶을 황폐하게 유린하고 있고 지구 생명체를 잔혹하게 짓밟고 있다. 심각할 정도로 지나치다.

그 지나침의 오바페이스 중에 하나가 잔혹엽기물을 정신적 퇴폐성으로 즐기고 음미하는 것이다. 그런 미감을 변태적으로 즐기고 음미하면서, 우리 인간이 무얼 어쩌자는 것인가! 더구나 사회문화풍토가 이리도 막무가내이고 자기 여과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채 철없이 말초적 감각에 취해서 흥청대는 새파란 젊은애들에게 그게 어떻게 작용하겠는가!( 이런 관점을 잘못 보면 보수적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길게 차분하게 말할 마당이 아니어서 요지만 말하자니, 더 짜임새 있고 더 자세하게 말하지 못한 점이 있다. 내가 비록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주의에 비난어린 비판을 준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보수적 관점에서 그러는 게 아니다. 이 시대 학문 예술 종교의 보수 쪽이든 진보 쪽이든 서양 쪽이든 동양 쪽이든, 총체적으로 그 뿌리와 줄기에 심각한 튀틀림이 있다고 본다. 미안하다. 이렇게 거창하게 선언적으로만 말해서. )

현대 기계문명과 도시문명은 ‘잿빛 어둠의 나쁜 병’에 깊이 빠져있다. 그게 너무 지나쳐서인지, 보수적 예술 쪽이든 진보적 예술 쪽이든, 잘못된 길로 아주 잘못 가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세계적으로 A급이라 할 만한 솜씨 좋은 재능이 그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그는 진보적 예술가이다. 진보적 예술이 이 잿빛 문명을 향해 던져야 할 메시지와 작업이 얼마나 많고 많은데, 그 좋은 재능을 그런 잔혹엽기물로 몰고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 아니 안타깝다기보다는, 좋은 재능이 잘못된 길을 밟아가며 저지를 죄악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나는 그가 [공동경비구역] 같은 영화가 아닌 [올드 보이] 같은 영화로 큰 상을 받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너무 싫고 너무 염려스럽다.

혹시 제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만나는 현대예술의 잘못된 길에 침묵해선 안 됩니다. ‘잘못된 현대예술’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개 폼 잡거나 군림하며 끽소리 말라고 주눅 주는 일에 항의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수구세력의 부패정치 ` 탄핵정국 ` 지겨운 지역감정에만 분노하지 말고, 자기 울타리 안에 ‘숨은 파시즘과 잘못된 뒤틀림’이 비비꼬여들지 않도록 스스로 반성하고 바꾸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그 동안의 병든 현대문명과 잘못된 현실에 깃든 학문 예술 종교의 잘못은 부분적이 아니라 총체적입니다. 잘못된 학문 예술 종교가 함께 어우러져 소용돌이치며 지금 우리의 현실생활을 수렁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그게 너무 지나칩니다. 저항하고 반성합시다. 수구 쪽만 말고, 진보 쪽도. 서양 쪽만 말고, 동양 쪽도. 잘 몰라도 뭔가 아니다 싶으면, “너흰 아니야”라고 말합시다. 잿빛으로 깊이 병든 문명에서 유명한 사람, 높다란 학벌, 단단한 패거리의 죄악은 구조적이고 총체적입니다. 그들에게 주눅들지 맙시다. 실명이 껄끄러우면 가명으로. 물론 막무가내 욕설이나 무턱댄 마타도어는 안 되겠지요?

*****

제가 작년 11월에 [올드 보이]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여기에 덧붙입니다.

@ [올드 보이] 잔혹하고 스산한 엽기 스릴러

03/11/27 김영주

이 영화의 원작이 일본만화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토리와 캐릭터가 보여주는 극한적인 분위기가 일본의 엽기 스릴러를 쏘옥 빼 닮았다.

한 시절 일본만화를 무지 즐겼다. [드래곤 볼] [닥터 슬럼프] [시티헌터] [형사25시]가 아직도 생생하다. [시티헌터]와 [형사25시]는 범죄스릴러이다. [시티헌터]는 코믹터치임에 반해서, [형사25시]는 잔혹하고 스산하다. [형사25시]는 우리가 가히 상상하기 힘든 엽기적인 사건으로 넘쳐난다. 그 범인들이 엽기적이기도 하지만, 그걸 그려 가는 스토리와 그림이 섬세하고 치밀하다.

그 정신병적인 범죄에서 그려지는 잔혹한 장면이 가증스럽게 지겨워서, 편안하게 즐길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그런 스토리를 엮어내고 어떻게 그토록 엽기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건지 놀라웠다. 일본 만화의 외설과 엽기는 그저 그림만 그렇게 외설적이고 엽기적인 게 아니라, 스토리의 전개와 짜임새가 함께 맞물려 들면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마 같은 상상을 그렇게까지 그려낼 수 있는 건지 ... . 치가 떨리도록 인간이 두려워졌다.

잔혹한 엽기물은 서양의 기계문명이 배설하는 회색빛 어둠을 먹고 자란다. 그래서 슬프지만 뒤틀린 정신병이다. 개인적인 현상이기에 앞서서 사회적인 현상이다. 사회적인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사회구조적인 억압과 횡포의 감옥에서 탈출하고픈 욕망이 자학적인 그로테스크로 폭발한 것이다. 거기에 일본문화의 유별난 섬세함이 스며들면 그 잔혹함이 모골이 송연하게 스산하다.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과 이번 [올드 보이]이 그러하다. 김기덕 감독이 보여주는 포악스럽게 짓이겨버리는 잔혹함과는 다르다. 그가 어떻게 해서 이런 미감을 즐기는지 알지 못한다.

내 체질적인 거부반응을 접어두고, 설사 잔혹한 엽기물의 매니아들이 즐기는 그 비밀스런 미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김기덕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엽기영화는 그 기괴한 미감을 느껴보는 수준을 넘어서 범죄적인 뒤틀림으로 이끌고 부추긴다. [어둠 속의 댄서]나 [돌이킬 수 없는]처럼 리얼하고 깔끔한 게 아니라, 들쩍지근한 인공조미료를 잔뜩 발라놓은 맛이다. 나는 그래서 그들의 잔혹한 엽기영화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에 반해서, 뭔가 껄끄러운 예감이 들면서도 [복수는 나의 것]을 굳이 보았다. [공동경비구역]이 좀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잘 만든 영화라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복수는 나의 것]이나 이번 [올드 보이]도 기능적 기술로 보자면 잘 만든 영화이다. 그는 상당한 문제의식과 작품 실력을 갖춘 감독이다. 그러나 그가 이런 잔혹한 엽기영화로 인공조미료를 잔뜩 뿌려 솜씨 자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 땅의 어두운 그늘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가 왜 이렇게 그런 잘못된 잔혹함에 집착하는 걸까?

그래도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밑바탕에 깔린 깊은 설움과 분노를 보여주었지만, 이번 [올드 보이]에서는 일본사회의 그늘에 숨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흉내내면서, 기발한 역습이나 반전으로 관객에게 ‘공포의 깜짝쇼’를 펼치는 재주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서 무얼 어찌하겠다는 건가! 돈 좀 벌어 보겠다? 그건 아닌 것 같고. 우리 사회에 깔린 잔악한 폭력을 고발해 보겠다? 그건 관객의 눈높이를 무시한 처사이고. 이런 표현양식을 개척해서 우리 영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 그건 남의 손 빌려 코 닦으며 자기 멋에 빠진 자아도취이고. 안타까움에 그의 작품을 한 번만 더 기다려 보겠다.

독자 의견 목록
1 . 멋진, 깊이 있는 글입니다. 무명시인 2004-06-09 / 19:41
2 . 광주에서 삽니다. 그러나 김영주 2004-06-13 /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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