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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을 만나다.
김영주 2004/05/22 10:45    

5월 6일 ~ 5월 9일. 구로자와 아끼라 감독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의 영화를 만나려니, 교육방송의 <일요시네마>와 <한국영화특선>이 문득 떠올랐다.
일요일이면 낮엔 옛날 서양영화, 밤엔 옛날 우리영화를 보여준다.

일요시네마에서 유명하다는 옛날 서양영화 몇 개가 "저런 영화가 왜 그리 유명하지?" 밋밋하고 재미도 없었다. 영화평론가라는 사람들이 그 영화들에 바치는 찬사는 지나치게 거창해서 거북살스럽다.
그렇게 뻥을 쳐야 그들은 삶의 의미를 갖는 모양이다.
<세계의 명화>도 대체로 그렇다. 그래도 세계의 명화는 틈틈이 골라서 보기도 하지만, 일요시네마는 아예 관심을 꺼버렸다.

여드름 시절부터 만나기 시작한 영화평론가나 영화기자의 말과 글에 도통 궁합이 맞질 않았다. 스무 살 시절까지는 내가 무식해서 영화평론가의 그런 관점을 잡아내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서른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말과 글이 '지적 사기'를 치는 걸로 보기 시작했다.
불만이 쌓여갔다. <시네마 천국>은 그런 불만이 좀 덜해서 즐겨본다.

요즘 <새로운 영화, 새로운 시각>이 아직 성에 차지는 않지만 상당히 좋다.
주고받는 말이 빡빡하고 꼬여있긴 하지만, 그 정도는 참으시고 자주 보시라고 적극 추천한다. 교육방송 목요일 밤 11시 또는 인터넷으로 다시보기( 교육방송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인터넷 공짜보기- '이주헌의 미술기행' '시네마 천국' '라디오 세계음악기행' 그리고 이것. )

어렸을 때 재미있게 보았던 우리영화가 이제 지금 한국영화특선에선 유치하고 재미없다. 그러나 어쩌다가 걸리면, 본다기보다는 틀어놓는다.
그리운 얼굴들과 사라져버린 옛 풍치와 풍물들.
그 때 그 장면들을 보노라면, 그 때 그 시절로 퐁당 빠져드는 착각을 준다. 그 추접스런 가난의 시절들이 왜 그리 아련하게 가슴을 메워오는지. 씁쓸하면서도 썰썰한 흑백의 아련함. 그 골목길 그 구멍가게, 그 학교 그 냇가, 그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노는 소리, 그 아저씨 그 아줌마, 그 밥상 그 옷, 그리고 그 시절의 우리 식구들 ... ... . 사무치고 눈물 마렵다. 그저 틀어놓고 그 사무친 그리움을 즐긴다.

구로자와 아끼라. 그의 명성은 '일본영화의 천황'이라는 찬양으로 오래도록 들어왔다.
50년대에 만들어진 흑백영화였다. 그래서 일요시네마가 생각났다.
"혹시 그 '지적 사기'로 뻥치는 거 아니야?"

내 열 살 앞 뒤 시절인 60년대엔 일본 풍물이 널려 있었다. 전형적인 일본집에서 한 삼 년 살았다. 몇 년 전에 일본 교또에 갔을 적에, 펼쳐진 거리풍경은 내 예닐곱 살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그래서 일본의 50년대는 나에게 아련한 추억이 진하게 묻어온다. 그래서 한국영화특선이 생각났다. "겨우 '사무친 그리움'만 즐기고 마는 거 아니야?"

[들개] [이끼루] [거미집 성] [7인의 사무라이]. 그 풍물에 그리움이 스며오기도 하지만, 음향 촬영 앵글 편집 연기 그리고 스토리가 펼쳐지는 패턴이 그 때 그 시절로 빨아들인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작품실력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를 '스승'이라고 칭송하였던 프란시스 코폴라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토록 새로움이 넘쳐흐르는 세상을 앞장서서 이끌어 가는 빼어난 후배들의 작품하고 같은 눈금자로 저울질하는 건 잘못이다.
지금의 눈을 벗어나 그 시절의 영화들에 잠겨서 돌이켜 보면, 그는 그 시절에 상당히 빼어난 감독이었겠다.

[들개] [이끼루]는 스토리의 기본줄기에 선과 악을 무리하게 몰아치는 점이 없지 않지만, 사회문제를 매섭게 파고드는 힘과 그 섬세한 터치에서 깊은 고뇌가 보인다.
그게 거칠게 선동적으로 외치지 않고 은근하게 깔려있어 숙성된 관조가 있다.

[거미집 성] [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 중세 풍습과 풍물에 낯선 신기함은 있었지만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7인의 사무라이]는 무려 4시간이나 늘어졌고 액션에 응축된 긴박감이 없었다. 마지막 싸움장면이 제법 좋았지만 나머지는 대체로 지루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눈'으로 보자면, 독특한 화면처리나 연출기법이 상당히 실험적이어서 선구적인 개척정신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서양그릇에 일본 음식'인지 '일본그릇에 서양음식'인지 꼬집어 말하기 어렵지만, 전통과 현대를 뒤섞어 새로운 예술적 미감을 찾아보려는 '퓨전'적 실험이 돋보였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에 그런 실험이 많아지고 있지만, 그 진지한 치열함이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내공도 부족하고 숙성도 부족하다. )

옛날 영화가 '지금의 눈'으로 '괜찮았던 영화'가 별로 없는데, 그의 영화는 지금의 눈으로 괜찮았고 '그 당시의 눈'으론 '빼어난 영화'였겠다. 그를 향한 찬사가 유명세에 무턱대고 올라타는 '지적 사기'는 아니었다. 그의 영화에선 옛날 유명영화에 '삐딱한 불안감'을 털어 내게 되어 내 스스로에게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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