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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오프 크라이스트]의 멍에, ‘시지프스의 바윗돌’
김영주 2004/04/12 09:31    

내가 맨 처음 만난 예수는 할머님 방의 천장 쪽에 바짝 걸린 십자가이다.
흉측해 보였다. 저런 걸 왜 방에 걸어 두었는지 이상해서 몇 마디를 할머니께 여쭈었고, 답변 말씀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머리에 씌워진 게 “까시”라는 말에 진저리치며 더는 쳐다보지 못했다. 그 뒤론 할머니 방에 가는 걸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 십자가를 눈이 닳도록 보게 되었고, 예수님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인지는 귀가 닳도록 듣게 되었다.

서양의 생활을 몸소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내가 만난 서양의 학문과 예술에는 ‘강렬한 극단성’이 깊이 배어 있다. 불변의 진리나 극단적인 이상향을 향한 갈망이 지극하고, 선과 악이 극렬하게 대립하는 사고틀이 뼈 속 깊이 박혀 있다. 카톨릭교와 개신교가 그러하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도 그러하며, 학문과 예술에 모두 그러하다. 하다 못해 서양문화의 이러한 극단성을 깡그리 부셔버리려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의 도전마저도 그 극단성의 수렁에 빠져 있어 보인다.

서양문명이 도저히 헤어나지 못하는 멍에인 것 같다. 현대의 진보적 예술이 자학적 그로테스크로 뒤틀리고 병든 이유도, 현대의 보수적 예술이 극단적인 악마를 설정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향한 희망에 강렬한 감동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서양 학문과 예술은 자기 집착의 도덕적 결벽증이나 정신병적으로 뒤틀린 반항에 빠져, 메마르고 빡빡하거나 뒤틀리고 비비꼬여 있지 않은 게 없다. 도무지 소박하고 담담하고 그윽한 맛을 찾기 힘들다.

이제 나이 들어 돌이켜 생각하니, 내 어린 시절에 만난 ‘십자가에 못 박힌 가시면류관의 예수’가 보여주는 극렬한 숭고함과 잔혹함의 대립에서, 서양문화가 태생적으로 짊어진 ‘시지프스의 바윗돌’을 보게 된 것이다. 이라크 사태도 그 업보의 어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인류의 영원한 업보로 ‘미친 피바람’을 몰고 올 그 정신분열적인 천형(天刑)이 두렵고 지겹다.


이 영화는 위선과 무지가 낳는 극렬한 잔혹함에 악(惡)을 걸고 인류의 죄악을 대신하는 거룩한 숭고함에 선(善)을 두어, 그 악에 처절한 분노를 일으키고 그 선에 사무친 사랑을 바치도록 몰아간다.

스토리나 대사는 지루할 정도로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대로이다. 단지 그 분노와 사랑이 훨훨 불타오르도록 선과 악의 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가열차다. 극렬하게 잔혹하여 숨막히도록 엽기적이다. 그러나 나는 잔혹한 엽기 장면보다는 그들의 이토록 가열찬 의지가 불길하고 두렵다. 눈물로 회개하고 다짐하여 더욱 굳건해질 그들만의 ‘도덕적 결벽증과 집단적 자폐증’이 심히 염려스럽다.

들려오는 예수님과 부처님의 거룩하신 위대함에 주눅이 들어, 교회 성당 절을 다녀보려고 애써보았다. 거기에 얽힌 사연도 많고 많다. 시건방진 건지 어리석은 건지, 그 분들의 말씀이 도무지 가까이 다가오질 않았다. 더구나 세속종교가 상류층과 밀고 당기며 벌이는 파워게임에 깊게 얽혀 있으며, 또 하나의 권력으로 ‘사회구조적 음모’가 있다는 의심을 지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보자면 결국은 유치한 자기 집착을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화장도구 또는 세상살이에 갖은 편리함을 얻어내는 생활방편으로 보인다.

무슨 ‘삐딱 귀신’에 쓰인 모양이다. 이 잡귀가 빵구난 건지, 생전 처음으로 예수의 생애에 감동한 적이 있다. 교육방송에서 재작년 연말에 방영되고 작년 연말에 다시 방영된, 3부작 다큐멘터리 [예수]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찬양하고 경배하던 그 어떤 말과 글이나 영화에도 나의 이 못된 삐딱함이 제대로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이걸 보고서야 예수님을 스스로 우러나서 존경하게 되었다.
나란 놈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 주어야 알아먹는 체질인 모양이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생활에서 만나는 그 종교와 그 사람들에겐 많은 반감이 있다.

서양문명에 박힌 도덕적 결벽증이나 퇴폐적 자학증이라는 극렬한 정신분열적 이중성의 수렁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영화가 이라크 사태에 오버랩 되면서, 세상이 차암 지겹도록 슬프다. 지구는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는 우린 인간을 통째로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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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리스도의 수난 하당에서.. 2004-04-12 /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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