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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사마리아]의 발칙한 상상
김영주 2004/03/09 09:38    

포스터가 매우 도발적이다. 수녀 누드.
카톨릭교단에서 아무 말이 없다. 잘 한 일이다.
사마리아? 유태인에게 따돌림 받은 땅이름 사마리아? 천박한 시궁창 냄새로 자욱한 도시? 그 뒷골목?
그러나 영화의 내용을 보건대, '성녀 마리아' 앞에 머리글자 '사'를 붙인 게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원조교재하는 두 소녀 이야기이다.
앞 소녀가 "인도에 '바수밀다'라는 창녀가 있는데, 그 창녀랑 함께 잔 남자들이 모두 독실한 불교신자가 된데. 날 '바수밀다'라고 불러줄래?"라며, 몸 파는 일 자체를 흐뭇하게 즐기는 모습이다.
자기를 '창녀의 몸을 빌려 남자에게 성(性)을 보시하는 성(聖)녀'로 여기는 듯하다. 그걸 이어가는 다음 소녀 사마리아는 소녀 바수밀다의 뜻을 한 걸음 더 높이 승화시키려고 한다.

창녀(邪)의 몸을 빌린 성녀(마리아)=사(邪)마리아? 또는 김기덕 개인(私)이 자기 나름으로 접근해 본 성녀(마리아)=사(私)마리아?

"너희 중에 죄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포스터 글귀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죄악의 수렁에 빠진 남성을, 순결한 소녀가 안아주고 받아들여 그 원죄를 씻어주려 한다?"는 싸가지 없이 발칙한 상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내 상상이 지나쳤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선 아름다운 풍광에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상징적인 이미지가 넘쳐흐르지만 발칙한 상상은 없었다. 굵은 줄기가 무성한 잔가지에 덮여 '별 볼 일 없는 영화'로 보았다.
이 영화는 발칙한 상상에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상징적인 이미지를 다양한 각도로 곁들여서 상당히 도발적인 이슈를 내건다.

사마리아의 아빠가 서릿발치는 눈빛으로 처참하게 으르렁거리며 울부짖는 연기가 섬뜩하다. 그런 점에서 '별 볼 일 있는 영화'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에 지나치게 '선과 악'을 고지식하게 고집하여, 그 접근이 리얼하지 못하고 숙성된 사색을 느낄 수가 없다.
이런 도발적인 이슈를 감당할 근력도 딸리고 끈기도 부족한데, [봄 여름...]에서처럼 자질구레한 잔가지에 괜한 헛손질을 하고 있다. 그래서 안타까운 영화이다.
그럼에도 베를린 영화제가 그에게 감독상을 안겨준 건, 유럽문화의 뿌리이면서 아직도 위세당당한 카톨릭교 성역의 중심줄기를 물어뜯으며 달려드는 동양의 하룻강아지가 놀랍고 대견했던 모양이다.

작년 9월 광주영화제 개막영화였던 [봄 여름...]을 이야기하면서, 김기덕 감독을 호되게 비판하였다. 그 이전에는 잔혹한 엽기물에 체질적인 거부반응이라는 순 개인적인 취향으로 그의 영화를 싫어하였지만, 이 영화로 장선우 감독, 임상수 감독과 함께 "그들의 사회의식이 지적 허위에 차 있으며 작품 역량도 떨어지는 '사이비'라고 여겼다."

김기덕 감독을 '사이비'라고 말한 건 내가 너무 심했다. 그는 자기 나름으로는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상당히 진지하게 파고든다. 그 이슈를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힘도 강렬하다. 그런데 요령 없이 불끈불끈 힘을 쓰다가, 제대로 힘을 써야 할 곳에서 근력이 딸리고 끈기있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다. 잔재주를 부리는 '사이비'라기보다는 내공이 숙성되지 않아 깊질 못하다.

그가 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바라보는 눈이 싸늘하지만, 그걸 자꾸 포악스럽게 짓이겨버리는 엽기적인 잔혹함에 기대어 절망하고 저항한다. 그게 처참하기에 머리털이 솟구칠 정도로 진저리치지만, 지금 우리의 추악한 삶에 좀더 근본적인 반성이나 쓰라린 회개를 불러오지 못한다.
그렇게 자꾸 기괴하고 거창한 것에 매달려 재능을 탕진하기보다는, 삶의 그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숙성된 내공을 길러, 주변의 평범한 삶에 숨은 범상치 않은 의미를 찾아내길 바란다.

[실미도]나 [태극기]의 상업적 선동에 휘몰려드는 1000만 명의 막무가내 인파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올드 보이]나 [사마리아]의 병적인 자학증이나 싸늘한 잔혹함에 어린 '퇴폐적인 지적 유희'도 두렵다.


독자 의견 목록
1 . 비판속에 비판... 나그네 2004-03-10 / 18:37
2 . 나그네님께 김영주 2004-03-12 /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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