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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영복님의 [강의]와 [담론]을 만나다.
김영주 2015/11/06 14:55    

신영복님의 글을 처음 만난 건, 90시절 <한겨레 신문>1면의 작은 칼럼이다. 짧은 글이지만 알차서, 짧아서 더욱 좋은 글이라고 여겼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글 중에서, 가장 좋은 글쓴이 다섯에 한 분으로 꼽았다. 그 작은 칼럼을 만난 지 서너 해가 지나서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감동이다. 감옥에서 그 생생한 체험을 겉으론 담담했으나, 그 속에 담긴 자유에 갈증이 간절했고 모진 고생이 구구절절했다. 그러나 그 감옥에 묻혀 허송세월하지 않고 새로운 깨우침을 일구어내며 숙성이 깊어가는 게 훌륭했다. “높은 곳에서 일할 때의 어려움은 글씨가 바른지 비뚤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가 경험한 일들에는, 감옥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일도 있지만, 감옥이 아니더라도 인간이라는 게 그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경험할 일들도 많다. 그런데 그런 일마저도 그게 감옥에 갇혀서 경험한 일이기에 더욱 적나라하고 더욱 깊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걸 이렇게도 소화하고 저렇게도 소화하면서, 그 자신의 조잔하거나 초라함을 드러내면서,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는 모습이 슬프고 애잔하면서도,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도 낮추어주는 고마움에 감사하기까지 하다. “칼잠을 자며 서로 붙은 몸이 여름의 지옥에서 겨울의 천국으로 바꾸어지는 장면 · 겨울날 바닥의 으스스한 한기를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고군분투 · 손바닥만 한 창문으로 비쳐든 신문지 한 장 크기의 햇볕에 감사하는 장면 · 창살 틈새에 겨우 터 오른 가녀린 새싹을 향한 생명의 환희가 자기 자신의 발버둥이라는 깨달음이 주는 초라함과 숭고함의 양면성”이 무엇보다도 감동이다.

[나무야 나무야]와 [더불어 숲]을 미처 만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그의 동양고전 독법[강의]를 만났다. 그가 어려서 할아버지께 한문을 조금 배웠고 붓글씨를 썼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서민체’ 글씨가 맵시가 단아하고 흐름이 편안해서 너무나 좋다. 더구나 그의 글이 보여주는 마음새와 꼭 닮아서 더욱 더 좋다. 한 시대를 대표할 글이요 글씨이며, 오랜 생명력으로 더욱 빛날 게다. 감옥에서도 한문을 공부하셨다는데, 그 양과 질이 궁금했다. “한문은 전공이 아니다.”며 겸손의 말씀을 하시는데, [강의]를 보건대 양으로나 질로나 “전공이다.”고 말하셔도 된다. 조선시대 최고의 한학자를 상·중·하의 ‘상의 상’으로 친다면, 광복이후에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은 학자들 중에서 최고의 한학자는 ‘중의 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제법 한학자처럼 보여도 ‘중의 하에서 하의 중’쯤이다. ‘하의 하’도 매우 많다. 그나마 서양학문의 세례를 거의 받지 않은 한학자 중에 초야에 묻힌 실력자가 2000년 이전까지는 조금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분이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기준은 漢詩실력이다. 나는 서양학문을 소홀할 수가 없어서 워낙 많은 시간과 정열이 필요한 漢詩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래서 내 기준은 현토나 번역 솜씨로 그 실력을 가늠한다. ‘논어·맹자·대학·중용과 노자·장자’를 번역한 글들을 보노라면,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은 학자들의 한문독해 실력에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도올 김용옥님의 실력과 주장이 대단하고 기발해서 배울 점도 많지만, 문제점도 많다. 어떻든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다. 그가 EBS에서 ‘노자 강의’하던 2000년 즈음에, ‘김용옥을 말한다 : 학자 김용옥 · 인간 김용옥 · 이 시대와 김용옥’으로 20쪽 쯤 글을 이미 썼기 때문에 여기에선 생략하겠다. )

[강의]에서 인용한 몇몇 구절을 번역한 걸로, 그의 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은 한학자 반열엔 충분하다. 더구나 그는 한글 글쓰기에 빼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고, 그 재능만이 아니라 20년의 감옥살이에서 숙성된 사색의 힘은 어느 누구도 갖추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인문학으로 오랫동안 훈련한 안목을 갖추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고전독법을 하고 있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갖추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나는 그의 새로운 고전독법에 큰 흐름에는 매우 동조하지만, 세세한 내용에서는 동조하지 못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나와 다른 경우도 있고, 조금 어긋나 보이는 경우도 있고, 잘못한 경우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오히려 잘못 판단했을 수도 있고, 그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더라도 손질하거나 지우면 된다.

▪ 중요한 세 가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하겠다.

* 나와 다른 점 : 그는 동양의 상호관계론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고 서양의 대립존재론을 매우 비난한다. 나도 서양의 대립존재론이 지나치게 흥성해서 지금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고 본다. 나도 동양의 상호관계론을 매우 강조한다. 그래서 그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서양의 대립존재론을 깡그리 나쁜 쪽으로 몰아세운다. 그러나 나는 서양의 대립존재론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그 위세가 지나쳐서 그 울타리를 훌쩍 넘어서서 갖가지 악폐가 드러나고 있지만 그걸 아직 아무도 제어하지 못한다.( 영화[2012년]의 재앙처럼, 지구촌이 온통 박살나야 정신을 차릴까? ) 지구 생태의 위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으니, 우선 서양의 대립존재론을 맹비난하는 게 옳다. 그러나 서양의 대립존재론을 짓밟아서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그걸 동양의 상호관계론과 아울러서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켜가야 한다. 동양의 상호관계론에도 문제점이 많다.

* 그의 잘못 : [논어]의 “군자는 和而不同하고 소인은 同而不和하니라.”를 잘못 번역하였고 그 새로운 독법도 다른 영역으로 잘못 흘러들어서 과장하였다. 그러나 그게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서양학문의 세례를 받은 한학자 중에서 이 글을 제대로 번역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고, 옛 한학자들의 주석이나 해설에서도 잘못은 아니지만 제대로 선명하게 그 뜻을 보여주지 못했다. 泰而不驕 · 威而不猛 · · · 을 비롯하여 공자의 時中사상과 관련한 글귀와 글들에 대한 해석이 매우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이런 글에 대한 이러한 잘못은 이 글에만 한정된 게 아니라, 공자사상 전체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옛 유학자들까지 모두 책임져야 할 잘못이다. 그리고 이 잘못은 더 나아가서는 맹자 性善說의 잘못에서 주자학 理氣論의 중요한 잘못에까지 연결된다.

* 그가 추구하는 세상 : 그는 ‘극우파와 극좌파’를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자본론]과 [논어]라고 했다. 그도 스스로 서로 색깔이 다른 책이라고 인정하면서 그 이유를 덧붙여서 말했지만, 그 모순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내 눈에는 그가 추구하는 세상은 ‘노자사상’쪽이다. 그런데 노자사상을, 그가 기존 노자연구의 잘못된 방향으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노자사상’쪽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한 듯하다.

<신영복님 동영상 강의 : 1시간 20분 > 이 동영상 끝난 뒤에, 연결된 다른 동영상이 좀 더 편안하다.

<신영복님 동영상 강의>

[강의]를 출간한지 10여 년이 흐른 뒤에 [담론]을 출간했다. [담론]은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앞쪽은 [강의]를 요약하였고, 뒤쪽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조금 달리 말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앞선 두 책을 이미 만난 사람은 [담론]은 보지 않아도 될 법하다. 그러나 [담론]만 본 사람은 앞의 두 책을 읽으면, 그의 지혜를 더욱 깊이 만날 것이다. 요즘 흔히 말한다. “본받을 사람이 없다!” 일단 지금까지, 그는 아주 드물게 남아있는 ‘본받을 분’이다. 그가 자기 나름대로 사상의 독특함은 있으나, 그걸 사상이라고 하기엔 이론틀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직 사상가라고 하긴 어렵다. 감옥생활로 고생하시면서 토해내신 금싸라기처럼 소중한 말씀에 존경을 올리고, 그 와중에 글공부도 소홀하지 않으셔서 동양의 관계론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문명’을 향한 꿈을 키워 가시는 노고에 감사 올립니다. ‘서민체’의 붓글씨도 좋지만, 그림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부디 건강하셔서, 더욱 숙성 깊은 책을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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