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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의 마중] 장예모 감독, 예술로 다시 일어서다!
김영주 2014/10/24 14:02    

장예모 감독을 처음 만난 건, 1987년에 [붉은 수수밭]이다. 그 당시에 중국어로 나오는 영화는 대만과 홍콩에서 제작한 영화뿐이었고,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무협영화였다. [붉은 수수밭]은 ‘베를린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 대륙에서 제작한 영화로 호기심을 일으킨 영화였다. 중국 대륙은 20세기 냉전체제의 반공교육으로 ‘무시무시한 모택동’으로만 알려졌고, 그 이전 이야기는 교과서나 풍문으로만 듣던 중국 대륙의 모습을 영화로 만난다는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래선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중국 대륙영화로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 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호기심에만 그치지 않는다. 드넓은 대륙의 웅장함으로 압도하는 붉은 수수밭 사이에 담긴 어느 여인의 고난이 장엄하고 숙성 깊은 영상과 속 깊은 이야기로 우리의 눈과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 뒤론 장예모라는 이름만으로 그의 영화를 놓치지 않고 보았다.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 [인생] [집으로 가는 길]에 푸욱 빠져들었다. 내 90시절은 장예모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 온통 넋을 빼앗겨 살았다. 2000시절에 들어서더니, 그가 [영웅]이라는 무협영화를 내놓았다. “아! 그가 드디어 무협영화에 손을 대는구나!” 두근거리며 만났다. 내가 붙인 별명 ‘색채의 마법사’라는 걸 과시하려는 듯한 영상연출이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 거슬렸지만, 내가 만난 수많은 ‘무협 환타지’에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가슴 벅찬 감동에 휩싸여들었다. 뒤이어서 [연인], 장쯔이를 가장 화사하게 꾸며서 환상적인 색채감과 액션을 보여주었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지루하게 늘어지더니 끝내는 추욱 쳐져버리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가 이제 내리막길로 가는구나! 그래도 설마?” [황후 화]에서 그의 색채감은 천박해지고 연출은 유치찬란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맘에 한숨을 내쉬었다. “예술로 일어서서 상술로 무너지다!” 그래도 그 이전에 감동했던 수많은 작품을 잊지 못하여 “예술로든 상술로든, 우리의 가슴으로 다시 되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고 기도하였다.


그 뒤로 10년 가까이 그의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연출했다고도 하고, 운남성의 계림을 비롯한 중국의 유명한 관광지에 눈요기 오락을 만들었다고 했다. 중국이 대륙의 장대함을 딛고 일어서는 그 ‘욱일승천’을 과시하는 일이 그에게 의미 없지 않겠지만, 그가 왠지 그 찬란함의 수렁에 휘말려 들어서 자기 자신의 ‘참다운 모습’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면 누구나 시들어간다. 그 시들어감이 그렇게 추한 쪽이 아니라 고졸古拙한 쪽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 . . .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은퇴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런데 작년 어느 날 그의 [진링의 13소녀]를 만났다. 반가우면서도 불안했다. 조마조마하며 열어보았다. 내 염려와 불안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영웅]이후에 보이던 허세나 억지가 없어졌다. [귀주 이야기]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보여주던 소박함이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그게 오히려 연출력이 시들기는커녕 좀 더 세련되고 탄탄해진 걸로 보였다. [영웅]이후에 보이던 잘못을 교훈으로 삼아서 더욱 나아진 게 아닐까? 그러나 그의 작품을 한 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작품 [5일의 마중]을 만남에 두근거리는 맘을 지긋이 누르며 긴장했다. 이번엔 작품내용이 [귀주 이야기]나 [집으로 가는 길]와 비슷해선지, 연출에 그 예전의 소박함을 잘 그려냈다. 그가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아니, 오히려 좀 더 나아졌다고 말하고 싶은 맘이 꿀떡같지만, 앞으로 두어 개 작품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잃어버린 형님을 다시 만난 듯이 반갑고 기뻤다. 그는 이번에 또 공리를 주연으로 함께 작업했다. 공리는 화사하거나 관능적인 미인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가 요염하거나 팜므 파탈한 캐릭터를 맡으면 감흥이 별로 돋지 않고, 시리고 매서운 고난을 이겨내는 강단진 캐릭터로서 수수한 모습이 훨씬 더 어울린다. 그래서 [황후 화]에선 억지로 분장과 연기력으로 감당했지마, 이 영화에선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장예모의 20여 개 작품 중에서, 1987년 [붉은 수수밭]부터 이번 영화까지 거의 30년 동안 8편을 함께 작업했다. 대단한 인연이고 둘도 없을 믿음이겠다. [영웅]에서 진시황으로 출연했던 진도명이 매우 돋보였다. 진시황으로는 그저 다부진 인상을 주는 정도를 넘어서지 못했는데, 이 영화에선 연기력이 온 몸에서 깊은 숙성으로 우러나왔다. 장예모를 좋은 작품으로 만난 게 무엇보다도 반갑고 기쁘지만, 그의 더욱 좋아진 작품이 장예모 혼자만의 공덕이 아니라, 오랫동안 깊은 믿음으로 이어져온 공리가 함께 하고 이에 진도명의 숙성 깊은 연기력까지 보태져서, 이토록 좋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게 더욱 흐뭇하다. 많이 부럽다. 그들의 인생과 작품에 기립박수!!!

<뮤직 예고편 보기>

* [5일의 마중]이야기를 지난 주에 쓰려다가, 허완화 감독의 [황금시대]가 바로 뒤를 이어서 상영되는 바람에 [5일의 마중]과 [황금시대]를 함께 아울러서 이야기를 하려고 영화이야기를 일주일 늦추었다. [색/계]의 탕웨이가 주연한 [황금시대]는 중국대륙의 1930년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가 31살에 요절한 여류 소설가 ‘샤오홍’의 인생을 그려낸 3시간짜리 영화이다. 그런데 그게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연출한데다가, 그 시절 중국의 문학계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엮여들면서 벌어지는 내용인지라,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이 영화를 이어가는 그런저런 에피소드에 제대로 감흥하기가 어렵겠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면, 그게 그 어떤 사람의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을 텐데, 일반 영화의 두 배나 되는 3시간 동안은 버틴다는 게 여간 고욕이 아니다. 나도 그런 감흥이 없어서 힘들었지만, 영화 전체와 부분 부분을 흐르는 연출력이 범상치 않음이 다가왔다. “상당히 실력 있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을 왜 이제야 만난 거야?”

1947년에 태어난 여자 감독인데, 1979년에 첫 작품을 만들고 지금까지 작품이 26편이나 있으니, 장예모 감독보다 캐리어가 더 길고 작품도 더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알려진 건, 2011년[심플 라이프]가 처음이다. 당장 다운로드해서 보았더니, 훌륭한 작품이었다. 놀랐다. 이런 감독이 이렇게 까맣게 숨어 있었다니. . . . [황금시대]를 [5일의 마중]에 곁가지로 덧붙여서 이야기하려다가,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이야기하기로 하였다. 그게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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