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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브 파이] 놀라운 영상, 실망스런 각색
김영주 2013/01/10 14:27    

이안 감독에게 자주 놀란다. 이안 감독을 처음 만난 [음식남녀] [와호장룡]에선 영화를 잘 만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놀라지는 않았다. 그런데 [색/계]에서 보여준 그의 내공과 외공에 매우 놀랐고, [음식남녀] [와호장룡] [색/계]를 만든 중국인이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테이킹 우드스탁]에서 미국사회의 내밀한 이야기를 그토록 섬세하게 잡아내는 능력에 많이 놀랐다. 그는 이미 70시절 미국 중산층의 삶을 리얼하게 묘사한 [아이스 스톰]과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인간의 광기를 그린 [Ride With The Devil]로 미국 영화계를 놀라게 했고,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센스, 센서빌리티](1995)에서 서구인의 삶을 동양인이 섬세하게 그려낸 이채로운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까지 받았었다. 그래서 이번 [라이프 오브 파이]에게 무조건 달려갔다.

이번에도 놀랐다. 호랑이와 소년 사이에 벌어지는 교감의 리얼러티 그리고 그 틈새에 그려내는 황홀하게 환상적인 영상에. 이토록 독특하고 환상적인 화면은 타셈 싱 감독의 [더 폴]에 견줄 정도이다. 그 스타일은 다르지만. 예고편이나 홍보물에서 그걸 강조할 때만 해도, 요 몇 년 사이에 BBC자연다큐나 EBS여행다큐에서 수없이 만났던 그 황홀하게 아름다운 장면들과 얼마나 다를까 싶었다. 그러나 그 다큐들에서 만난 영상과는 체질이 다르다. 그 황홀한 자연경치에 감독이 상상한 갖가지 환타지를 뒤섞어서, ‘태평양의 환상 쑈’를 보여준다. 그것도 3D나 I-MAX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 황홀한 ‘환상 쑈’도 대단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건, 드넓은 바다에서 조각배를 사이에 두고 호랑이와 인간이 서로 생존하려고 밀고 당기는 장면들이다. 어떻게 저렇게 실감나게 연출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리얼하다. 그게 호랑이라서 더욱 놀랍다. 주인공은 사람이니까 그렇다 치고, 어떻게 호랑이를 비롯한 몇 마리 동물들의 그런 장면이 나오도록 만들 수가 있을까? 엄청난 폭풍 장면도 매우 그러하다. 이안 감독의 무궁무진한 능력이 놀랍다. 이젠 SF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만들어보고, 뮤지컬영화나 댄스영화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예고편 보기>

그런데 이 영화가 대중흥행엔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 태평양 표류장면에 이르기 이전의 초반이 축 늘어져 지루하고, 마지막에 놀라운 반전이 있지만 그리 놀랍지도 않고 아리송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면서, 그 가운데에서 보여준 그 환상적인 장면들과 신기한 장면들을 묻어버린다. 이 영화는 ‘종교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영화 전체가 그걸 말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걸 말하려면 표류장면들과 종교를 어떻게 연결지어야 하는지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 실마리를 잡아내기가 어렵다.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면, 그 상징적인 암시를 지나치게 깊이 숨겨버린 셈이다. 마지막 반전이 그걸 암시하고 있는 듯한데, 그걸 짧은 시간에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니까 잘 연결되질 않는다. 지루한 초반 이야기를 상징적인 몇 장면으로 축약하고, 그 남은 시간을 그 마지막 반전이 이해가 되도록 정성을 들였어야 했다. 지루한 초반과 얼렁뚱땅한 마무리가 영화 전체를 죽도 밥도 아니게 만들었다. 대중 흥행을 노리든지 높은 작품성을 노리든지, 그 어느 한 쪽으로 몰아쳐서 확 밀어붙였어야 했다. 왜 확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능력부족이라기보다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둘 다 잡으려는 욕심 때문이겠다. 그 욕심이 좋은 욕심이긴 하지만, 좋은 욕심이라도 잘못 이끌면 작품을 오히려 이렇게 갉아먹는다.


영화관을 나설 때, 그 황홀한 환상과 생생한 리얼러티의 여운이 찐하게 뒤따라오질 않아서 허전하다. 안타깝다. 그 안타까움에 인터넷 영화마당에 들어가 동영상 11개를 모두 뒤져 보았다. 황홀한 환상과 생생한 리얼러티가 다시 살아났다. 이러하매 “이 영화는 그 내용에 맘 쓰지 말고 황홀한 환상과 생생한 리얼러티만 즐기시라.” 원작소설[파이 이야기]에선 종교적 담론을 상당히 깊이있게 다룬다 하니, 그게 궁금하면 아무래도 원작소설을 읽어야 할 것만 같다. *대중재미 : 황홀한 환상과 생생한 리얼러티만은 A+ · 영화 전체로는 B+, *영화기술 A+, *감독의 관점과 내공 : 민주파 A0.

이안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훌륭한 감독이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비극은 오지 않아야 한다. 다음 영화에선 순전히 대중흥행만을 노리고 [색/계] 같은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작품성은 덤으로. ) 그가 말했다. “너무 많은 돈은 창조적인 자유를 말살한다. 너무 적은 돈은 영화를 어렵게 만든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낙 실력파 감독으로 알려져 있고 [와호장룡]과 [색/계]로 흥행에도 성공한 명성이 아직은 쟁쟁하니 다음 영화를 찍을 수야 있겠지만, 흥행에 두어 번 실패하면 아무리 유명한 감독이라도 돈줄이 갑자기 뚝 끊긴다. “장사꾼은 백원을 보고 백리를 가고 천원을 보고 천리를 가며 만원을 보고 만리를 간다. 그러나 돈이 안 되면 꿈쩍도 않는다.” 영화는 돈 먹는 하마이다. 흥행이 한 번 꺾이고 두 번 꺾이다 보면, 회생하기 힘들어진다. 세상살이란 게 본래 그러하지만, 영화판은 그게 아주 심하다.

독자 의견 목록
1 . ^^ 아라 2018-09-18 /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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