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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철의 여인] “메릴 스트립이여, 영원하라!”
김영주 2012/03/06 16:47    

포스터가 내 눈을 화악 잡아끌었다. 영국의 80시절을 휩쓸었던 철혈 수상, 마가렛 대처를 눈앞에 만난 듯 했다. 보고 또 보았다. 대처의 모든 것을 이 한 장에 고스란히 담았다. 대처 자신보다 더욱 대처답다. 감동 먹었다. [친구]와 [터미네이터 2]의 포스터에 감동했지만, 그 보다 더 감동한 듯하다. 갑자기 바쁜 일이 쏟아져서 영화이야기를 한두 번 쉬려고 했는데, 이 영화에 저절로 끌려들어갔고, 이 영화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대처가 치매에 걸려 자기 생활마저도 온전하게 꾸려가지 못하고 초라하게 살아가면서,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일들과 사람이나 물건을 만나며 문득 문득 떠오르는 지난 세월의 단상들에 얽힌 이야기가 뒤섞여서 펼쳐진다. 대처 일생을 다큐 스타일로 회상하며 엮어가는 바이오그래피이다. 대처의 철혈 인생을 긍정하는 관점이 보이기도 하고, 치매에 걸린 노인을 연민하며 그 강철 같은 인생의 허무함을 회한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아무튼 감독의 관점은 보수파이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와 [킹스 스피치]처럼, 그 숙성도가 A+이다.

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튼 프리드만이 ‘이론적 씨앗’을 심고, 80시절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앞장선 시장만능주의(시장:정부=9:1), 미국은 카터의 민주당 정부에 실망감에서 그리고 영국은 70시절 노동당 정부의 영국병(복지병과 노조병)으로 승승장구하고 떵떵거렸다. ‘작은 재정, 강한 정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미국은 이슬람국가와 대립하고 영국은 포클란드 전쟁과 IRA테러에 강경하게 싸웠다. 그건 미국과 영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높여주어서 미국 공화당의 레이건8년과 부시4년 그리고 영국 보수당의 대처12년을 지탱해 주었지만, 그 어두운 그늘도 짙어갔다. 그 어두운 그늘이 80시절에 그치지 않고, 90시절과 00시절까지 뿌리박혀 이어져서 ‘사기 자본주의’로 끝내 ‘99:1의 양극화 세상’을 만들고야 말았다. 이 영화는, 그 시절의 그 대립과 갈등을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고 대사의 깊은 맛을 알 수 있으며, 그걸 잘 모르거나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지루해서 졸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내 재미는 A0이지만, 대중 재미는 C+아래쪽이겠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만큼 절묘하지는 않지만, 보수파의 숙성 깊고 의미심장한 대사가 쏟아진다. 그 하나만 말하면, “Watch your thoughts, for they become words. Watch your words, for they become actions. Watch your actions, for they become habits. Watch your habits, for they become character. Watch your character, for it becomes your destiny. What we think, we become. : 생각을 잘 살펴라! 생각은 말을 만든다. 말을 잘 살펴라! 말은 행동을 만든다. 행동을 잘 살펴보아라! 행동은 습관을 만든다. 습관을 잘 살펴라! 습관은 인격을 만든다. 인격을 잘 살펴라! 인격은 운명을 만든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우리의 모든 걸 만들어낸다.” 한 번 더 보면서, 대사만을 체크하고 싶었다.


영화기술도 A+로 빼어나다. 스토리의 내용과 전개도 좋고, 영상 · 음악 · 미술 · 의상 · 무대 · 조명이 모두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메릴 스트립의 분장이 매우 뛰어나다. 주연 · 조연 · 엑스트라 어느 하나 거슬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메릴 스트립이 그토록 실감나게 연기하도록 만들어낸 건 그녀의 연기력에 감독의 역량도 크게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필리다 로이드, 대단한 능력을 가진 보수파 여성감독이다. [댄서의 순정]을 문근영에 의한 · 문근영을 위한 · 문근영의 영화라고 했고, [레슬러]를 미키 루크에 의한 · 미키 루크를 위한 · 미키 루크의 영화라고 했는데, 이 영화도 메릴 스트립에 의한 · 메릴 스트립을 위한 · 메릴 스트립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그녀가 대처보다도 훨씬 더 대처다우니, 더욱 그러했다. 문득 포스터에서 “대처 자신보다 더욱 대처답다.”는 느낌이 감동을 넘어서서 전율로 몸서리쳤다. 부르르~, “와우!”

<예고편 보기>

메릴 스트립, 난 그녀를 대학시절 [디어 헌터]에서 처음 만났다. 밉상은 아니었지만 커다란 몸집과 메부리코가 거슬렸으나,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소재로 한 사회고발 영화이기에 여주인공의 비중도 그리 높지 않았고 여주인공이 매혹적인 미모를 갖출 필요도 없는 영화이었고 연기도 잘 해주어서, 그 거슬림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 뒤로 단숨에 스타가 되어서 수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모두 보진 못했지만, 반쯤은 보았을 게다. [맘마미아]에선 조금 실망했지만, 나머진 名不虛傳의 연기라며 그녀의 연기력에 감탄했고,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곤 마침내 이 영화에서 그녀의 신들린 연기를 만나게 되었다. 도대체 그녀의 연기가 어떻게 “대처보다도 더 대처답다.”는 걸까?

이 영화에서 그녀의 연기력은, 말과 글로 형연키 어려울 정도로 대단하다. 대처가 80시절에 미국의 레이건과 함께 ‘시장 만능주의’로 지구촌을 온통 쥐락펴락하는 모습이야 내 전공과 매우 밀접하니 관심 깊게 지켜보았지만, 겉모습은 어쩌다 TV뉴스에 스쳐지나가듯이 만났을 따름이니 속모습까지 들여다 보진 못했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에 감동해서 인터넷 마당에 마가렛 대처의 동영상을 찾아보았다. 그녀의 연기에 사뭇 감흥했지만, 이토록 철저하게 준비해서 연기할 줄이야! 놀랍다. 몸짓 · 표정 · 제스처 · 걸음걸이도 매우 그러했고, 말의 음색 · 억양 · 톤까지도 매우 그러했다. 굳이 다르다면, 마가렛 대처보다 메릴 대처가 더 카리스마 있고 단아해서 품격이 더 높다. 마가렛 대처는 강렬하긴 하지만 강퍅해 보이기도 하고, 그 강퍅함이 음색으로나 표정으로나 표독하고 마귀할멈 같은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메릴 대처는 강렬하면서도 고아하고 단단하면서도 단아한 느낌이어서 강경한 보수의 엄숙한 카리스마로 전형을 보여주니, 마가렛 대처보다도 ‘강경 보수파’의 이상적인 이미지이다. 그녀가 마가렛 대처를 그대로 똑 같이 흉내내는 것보다도 대처의 ‘강경 보수파’ 모습을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게 훨씬 더 예술적이고 훌륭하다고 본다. 마가렛 대처의 “퍼펙트!”한 흉내를 넘어서서, 더욱 강렬하게 단아한 메릴 대처를 새롭게 창조하였다. 그녀의 배우인생에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명연기를 웃도는 최고의 연기이다.

“메릴 스트립이여, 영원하라!”

< 메릴 스트립과 필리다 로이드 감독의 인터뷰 동영상 >

*****

이번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아티스트]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음악상 5관왕을 차지함에 반해, [철의 여인]은 여우주연상과 분장상 밖에 받지 못했다. [휴고]의 촬영상 · 미술상 · 음향상 · 음향편집상 · 시각효과상 5관왕은 영화를 보지 못해서 접어두고, 두 영화만 비교해 본다면 매우 불만스럽다. 난 [아티스트]를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마지막 탭탠스 장면이 좋았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점 말고는 그건 연기라기보다는 묘기이다. 옛 무성영화를 매우 잘 살려냈다. 그러나 그걸 바탕으로 뭔가 새로운 창조나 감동을 이끌어냈다면 모르겠지만, 내용도 뻔한 신파조로 지루했고 촬영이나 음악도 옛 무성영화 그대로 흉내이다. 옛 무성영화 필름이 전혀 없다면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러지 않은 바에야 그걸 그대로 흉내내어 되살려서 무얼 어찌 하겠단 말인가? 정히 상을 주고 싶다면, 옛 무성영화를 잘 흉내냈으니, 그 옛 시절의 추억을 기리는 뜻으로 의상상과 음악상을 주는 건 겨우 인정하겠다. 그러나 작품상과 감독상은 [철의 여인]이 받는 게 아카데미 영화제의 보수성에도 훨씬 더 적합하다.

어린 시절엔 ‘아카데미 영화제’의 오스카상이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매우 보수적이면서도 때론 동의하기 어려운 상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 보수적 성향에 존재의 이유를 인정하지만, 그 명성에 실망하는 때가 많다. 그 권위를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직 아니지만, 이번은 무척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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