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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킹스 스피치] 내가 만난 공화당 영화중에서 가장 좋다.
김영주 2011/03/18 18:34    

[월드 인베이젼], 오래전부터 자주 보아왔던 미국 공화당영화의 기본 요건을 빠짐없이 갖춘 미해병대 하사의 영웅영화. 삶의 숙성 : 공화당 A0 · 민주당 B0 · 사회당 C0. 우주인의 침략에 맞선 미해병대 전투요원은, 마치 [다이 하드]에서 블루스 윌리스처럼 순전히 몸뚱아리 하나와 이라크전쟁에 나간 전투병 정도의 무기로, 엄청난 무기를 갖춘 우주인과 우주선을 상대하며 싸운다. 스토리가 뻔하고 우리 편은 별로 죽지도 않고 이런저런 상처와 희생으로 치러지는 박진감있고 화끈한 싸움판이다. “해병에게 후퇴는 결코 없다!”며 작심하고 죽음의 소굴을 향해 뛰어드는 병사들의 다부진 모습이 무모하지만 숭고하게 느껴진다. 우주전쟁 영화로는 이래저래 실망스럽겠지만, 좀 요란뻑쩍한 이라크전쟁 영화쯤으로 여기고 보자면 긴박한 재미가 있다. 대중재미 B+ · 영화기술 B+.

예전엔 좋은 영화 또는 볼만한 영화로 아카데미상 수상이 중요한 기준이어서 해마다 이즈음이면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나 수상이 영화가의 화제였다. 그런데 요 10여년 사이엔 관객들이 아카데미상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90년대 후반부터 우리 영화소재가 다양하고 분방해지면서, 보수적인 아카데미상의 영화를 진부하고 고리타분하게 느끼는 것 같다. [블랙 스완]같은 영화는 소재도 진보적이거니와 연출기법도 진보적이어서 아카데미상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겨우겨우 얻은 게, 여우주연상이다. [파이터]와 [킹스 스피치]는 둘 다 보수영화이지만, [파이터]는 크리스찬 베일의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 말고는 상투적이어서 지루하고 그리 가슴 뭉클하지 못하다.

[킹스 스피치]는 소재도 연출기법도 삶의 향기도 보수적이다. 그러나 영국왕의 말더듬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벌어지는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을, 조금씩 조금씩 극복해가는 과정을 지루하지 않고 섬세하고 잔잔하게 그려가는 솜씨가 알차고 정성스럽다. 상류 서열주의의 보수적 가치를 강요하지 않고, 허름한 서민 치료사와 밀고 당기며 굴곡진 갈등을 일으키지만 그 우정을 천천히 조금씩 가꾸어내며 훈훈하게 피어오른다. 왕실 가족의 단아함도 거북살스럽지 않고, 그 허름한 서민 치료사도 자상하고 당당하다. 오히려 ‘노블레스 오블리제’하지 못한 왕실과 귀족의 모습을 꾸짖는 듯해서 더욱 그러하다. 시나리오도 좋았겠지만 연출도 여러모로 훌륭했다.

<예고편 보기>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엘 고어 후보는 공화당 부시 후보를 득표수로는 이겼지만 선거인단 숫자로 패배하여 원통하게도 낙선하고 말았다. 득표수로는 이겼는데 선거인단 숫자로 졌다는 게, 우리에게 잘 이해되지 않아서 미국 선거제도에 의아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선거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되었다. 하나는 ( 부시 동생이 주지사로 있던 ) 플로리다 주에서 나비표라는 부정개표 사건이고, 또 하나는 소비자 보호운동을 하던 변호사 랄프 네이더가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서 전국 유효투표를 무려 2.7%나 얻은 사건이다. 그 표가 거의 대부분 민주당 쪽 표여서 억울하게 낙선한 엘 고어를 더욱 원통하게 만들어서 논쟁이 자자했다. 그 당시 김대중 정부가 모피코트 사건으로 곤혹을 치르며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아서는 순간에 미국에서 공화당의 네오콘이 권력을 잡는다는 게 내겐 너무나 심각했던지라, 랄프 네이더 편을 들었던 어느 진보 인사와 격하게 말싸움을 붙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답답하고 신경질이 치밀어 오른다. 그 이유를 좀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마당이 좁으니 접어두자.( 만약 엘 고어가 당선되었다면, 난 그 다음 해에 일어난 9.11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부시 당선이후의 김대중 정부문제 말고도 할 이야기가 많다. )

그 랄프 네이더가 [수퍼리치(거대 부자)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라는 책을 써서, 워런 버핏 · 빌 게이츠 · 조지 소로스 같은 미국 최고부자들을 이 험한 세상의 구세주로 찬양했단다. 그가 내세운 정치성향으로 보아서, 마치 민중당이던 이재오 김문수가 정반대 쪽 한나라당으로 변신한 것처럼 보였다. 진보 쪽에서 보자면 문국현 정운찬 엄기영처럼 배반한 것으로 보이는 책 제목이다. 책이 아니라 책소개 글이지만, 놀란 맘을 누르고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 글은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협잡이고, 공무원들은 어김없이 뒷돈이다. 기업들은 돈되는 일이라면 못하는 일이 없고, 언론들은 그 뒤에서 떡고물 챙기기에 바쁘다. 모든 악은 물고 물리면서 서로 기생하고 공생한다. 그것은 ‘탐욕의 뿌리’로 서로 얽어 숲을 이룬 자본주위의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자못 비장하게 시작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네 번이나 떨어지다보니 삶의 신념을 배반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9.11의 대재난 속에서도 의회에서 ( 2%부자의 특혜를 위하여 공화당의 신념인 ) ‘상속세 폐지 법안’을 상정하였는데, 그 법안에 워렌 버핏 · 빌 게이츠 · 조지 소로스 같은 미국 최고의 부자들이 라는 단체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쳤다. 랄프 네이더가 그들에게 ‘탐욕이 이끄는 미국’을 구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담아 쓴 ‘가상 이야기’란다.


정운찬의 초과이윤공유제를 향한 이건희의 반발에, 홍세화가 ‘가진 자의 품격’이라는 칼럼으로 “사적 나눔엔 모두 관대하지만 공적 분배엔 쌍심지를 돋우며 반대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 . . 그에게서 가진 자의 고품격이 요구되는 공적 분배에 대한 인식을 기대한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같다.”며 비판의 화살을 쏘았다. “최근에 독일의 거부 페터 크레머는 미국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기부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사회에서 얻은 이익을 공적 기구를 통하지 않고 사적 재산으로 선심 쓰듯 기부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기부액의 대부분이 세금 공제되기 때문에 부자들은 기부를 할 것인지, 세금을 낼 것인지를 놓고 선택을 하게 된다’고 말함으로써, 사적 나눔과 공적 분배를 명확히 구분했다. 그처럼 공적 분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품격은커녕, 미국의 부시 정권이 상속세 폐지 법안을 내놓았을 때 앞장서서 반대했던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같은 부자의 품격조차 찾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 가진 자들의 실상이다.”며, 페터 크래머 같은 냉철한 관점까진 아니다라도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 정도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도 품격조차도 기대하기 어렵다며 우리 사회 가진 자들의 추한 ‘배블레스 돈블리제’에 분노하고 있다.( ‘배블레스 돈블리제’의 어리석은 탐욕에 신랄한 비판은, <한겨레 신문>의 장하준 최근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목대목 대단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강추한다. 장하준 책은 시장만능주의의 줄기를 자세하게 말하고 있고, 내 책 [시장주의, 그 신화와 환상]은 시장만능주의의 뿌리를 자세하게 말하고 있다. 내 책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서 참 답답했는데, 장하준이 나와 같은 주장을 대신해서 널리 펼쳐주니, 샘도 나지만 너무너무 고맙다. )

공자가 “부유하면서 교만하지 않기보다, 빈곤하면서 원망하지 않기가 훨씬 더 어렵다.”고 했는데, 우리나라 부자들은 교만하지 않기가 그리도 어려운 모양이다. 왜 그럴까? ‘깨어있는 시민’이 너무 적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경상도 집단이기주의’라는 ‘최고 악마의 정체’를 제대로 진단하여 제대로 치료하려는 사람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존경하는 박제동이나 이창동’ 같은 경상도 사람은 물론이요, ‘까칠한 논객 홍세화나 진중권’ 같은 서울 사람도 이 ‘최고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어 말한 걸 아직 본 적 없다. 그들은 왜 그럴까? ( 하기사 내가 그들의 글을 모두 다 보진 못했으니까, 어느 구석지에 꽁꽁 숨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더 깊은 이야기가 있지만, 옆길로 새는 듯하니 그만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자. )

이렇게 우리나라가 ‘악마의 수렁’에 빠진 채 온통 돈독이 올라서 ‘배블레스 돈블리제’로 허우적대는 모습만 보아서인지, 이번 [킹스 스피치]의 ‘상류 서열주의’는 허세부리며 떵떵거리지 않고 잔잔하고 단아해서 참 좋았다. 허황된 영웅 [수퍼맨] · 떵떵거리며 안하무인하는 수퍼스타 [아이언맨] · 재벌총수라는 풍족함이 넘치는 밤의 흑기사 [배트맨]보다는, 피자집 알바를 하면서 고학하는 [스파이더맨] · 가난한 동네의 집주인에게 시달리는 괴짜 [셜록 홈즈]가 더 좋고, 몸과 맘이 불구이지만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하늘이 감천하야 스스로 돕는 자를 보우하사 마침내 건강해지고 부자가 되었다는 [포레스트 검프]보다는, 영국왕자이지만 말더듬이 고통을 서민 친구와 갈등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킹스 스피치]가 훨씬 좋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공화당 영화중에서 [킹스 스피치]가 가장 좋다. 소재가 고리타분해 보일 수 있지만, 상당한 재미나 긴장감이 있다. 왕과 왕비 그리고 치료사의 연기와 대사가 은은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어서 참 좋다. 소품 · 무대 · 의상 그리고 영상미까지 그러해서 더욱 좋다. 감독의 숨겨진 내공이 깊고 높다는 증거이겠다. * 대중재미 B0 ( 내 재미 A0 ), * 영화기술 A+, 삶의 숙성 : 공화당 A++ · 민주당 A0 · 사회당 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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