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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백조와 흑조, 도플갱어에 빠져들다.
김영주 2011/02/25 19:41    

[블랙 스완], 처음엔 나탈리 포트만 이름에 이끌려서 들어가 보았는데, 아니 웬 걸!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작품이 아닌가! 그가 올해 새로운 [로보캅]을 보여준다기에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데, 웬 발레 영화? 우연히 그의 첫 작품 [π파이]를 광주극장에서 만나고선 깜짝 놀랐다. 그리곤 [레퀴엠][천년을 흐르는 사랑][레슬러]를 만났고, 이번에 [블랙 스완]을 만났다.

[π파이]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아서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나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천재 수학자의 괴이한 방황, 그리고 그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는 괴이한 흑백 화면과 음악 음향 무대 소품들도 아주 독특하지만, π의 3.14 무한소수를 화두로 삼아서 어지러운 숫자나 기묘한 기호 · 유대교 토마와 중국인 거리 · 바둑판과 그 소용돌이까지 모든 게 특이하다. 수학이나 컴퓨터로 이루어진 기계문명의 삭막함을 음울하고 스산한 흑백 화면에 상징 깊은 영상과 이미지들로 풍자하는 표현능력이 놀랍다. 이게 그저 영화기술의 능력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메시지가 뉴튼물리학을 바탕으로 한 기계문명 vs 생태생물학을 바탕으로 한 생태문명이라는 새로운 문명에로 전환을 화두로 하는 ‘문명의 뿌리’에 관한 논쟁이다. 그래서 더더욱 놀랍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이 암시하는 ‘공화파 자연학’에 비교하면서, 일본 애니[공각기동대]와 함께 ‘진보파 자연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의미심장한 영화이다.

그는 다음 작품[레퀴엠]으로 평단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마약 중독으로 황폐해져가는 이야기를 시리고 독하게 그려가고 있다. 그 스토리가 리얼하면서도 영상 이미지는 워낙 독특해서 소름 돋도록 섬뜩하기까지 하다. [π파이]에서도 이미 그러했지만, 그 다양한 표현력과 그 치밀한 짜임새로 천재라는 느낌이 확 밀려왔다. [천년 사랑]은 현대의 소설가와 의사 그리고 스페인 여왕과 장군 사이를 오고가면서, ‘삶과 죽음’을 서양의 자기 집착적인 永生으로 추구할 게 아니라 동양적인 관조와 윤회의 한 모습으로 스스럼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서양 사람에게서는 보기 힘든 관점을 갖가지 상징적인 화면과 음악으로 그려낸다. 그런데 다음 영화 [레슬러]에서, 한 시절 잘 나가던 레슬러가 인생을 막 살아가다가 늙어가면서 추락해가는 그 뒤안길을 아무런 꾸밈없는 쌩얼굴로 보여주는 그의 또 다른 연출능력에 다시 한 번 놀라며, 이 감독을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나인&하프 위크]에서 꽃미남 미키 루크를 기억하는 사람은 괴기스러운 거구로 변한 모습에 깜짝 놀랄 것이다. ) 이 대단한 감독의 이번 [블랙 스완]은 높은 작품성에 ( 앞의 작품들과는 달리 ) 대중재미도 제법 갖추었다. 그 능력에 마냥 놀랄 따름이다. 예술성이 높은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 대중성을 멸시하거나 소홀히 하는 건 잘못이다. 이번엔 대중성도 얼마쯤 갖추었으니, 흥행에 성공하길 바란다. 좋은 감독이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더없이 좋은 일이다.


<예고편 보기>

[레옹]의 어린 소녀로 스타덤에 오른 나탈리 포트만, 단박에 [스타워즈 에피소드]에서 여왕으로 등극하였다. 전도연처럼, A급 스타로 떠오르면서도 어떤 역할이든 몸을 사리지 않는 당찬 모습과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여 소화해내는 열정이 가상하면서도 때론 경외롭기까지 하다. 그녀의 깡마른 모습이, [블랙 스완]에선 순수하고 나약한 백조(善)와 도발적이고 관능적인 흑조(惡)를 함께 연기해야 하는 도플갱어의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프리 마돈나의 역할에 더 어울렸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녀의 생동한 젊은 매력이 삭아드는 느낌이 없지 않아서 서운했다. 흑조의 분장과 날개 돋는 장면은 아주 좋았지만, 그 등장이 너무 짧았고 표정연기가 그리 강렬하지 못했다.( 그나마 강렬해 보였던 것은 연기력이 아니라 분장발이다. 영화 전체에서 가장 핵심포인트인데 . . . ㅉㅉ. 안타깝다. 감독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요염함이 많이 부족한 나탈리 자체의 한계인 듯하다. ) 조연 밀라 쿠니스는 선과 악 사이를 스스럼없이 넘나들면서 자유분방하고 거리낌 없는 자신감을 꾸밈없이 보여주는 캐릭터에 무척 잘 어울렸다.( 등의 흑조날개 문신이 사뭇 도도하게 도전적이다. ) 뭇남성의 욕정을 자극하며 군림하는 모니카 벨루치의 남편 뱅상 카셀, 질투에 눈이 멀어선지 그의 독특한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그를 뒷골목 양아치라며 미워했는데, 이 영화에선 숙성된 중년의 웅숭깊은 카리스마가 다가왔다. 그의 겉모습에 매달려 미워하지 말고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연기력을 인정하기로 했다.

세 배우의 연기력만이 아니라,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과 음향이 적절하게 자리잡았고, 감독의 장기인 독특한 영상이미지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잘 살려냈다. 이 모든 게 단순한 기술능력을 넘어서서, 도플갱어의 심리적 스릴러를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극렬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고, 은근하게 스산하고 섬뜩하게 그려내는 연출력이 그저 대중재미만을 노린 눈요기가 아니라 예술적인 숙성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기립박수!!! 새로운 [로보캅]을 무지 기대한다. * 대중재미 : 스산한 스릴러를, 즐기는 관객 A0 · 즐기지 않는 관객 B0, * 영화기술 A+, * 삶의 숙성 : 공화파 C+ · 민주파 A+ · 사회파 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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