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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우리 의사선생님]에 깔린 ‘환상적 리얼리즘’(?)
김영주 2010/06/14 18:55    

※ 제 영화이야기는, 영화평론이라기보다는, 영화를 소재로 하여 저의 '세상살이 이야기'를 접목시켜 펼쳐 보이는 글로서, 수없이 다양한 견해들 중에서 하나일 따름입니다.


* [방자전]과 [하녀]를 이야기하려 했는데, 가까운 친구가 갑작스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슬픔에 야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서, 이번 주엔 그 친구를 애도하는 맘으로 영화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다. 문득 일본 영화[우리 의사선생님]의 감흥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 [구구는 고양이다]와 [요시노 이발관]에 잔잔한 감흥이 있었던 터라 더욱 그랬다. 돌이켜보니 그 동안 내 영화이야기에서,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 ·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 · 호소다 마모루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라는 애니메이션 말고는 일본 영화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얼굴 다르듯이 모두 낱낱이 다르다. 체질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살아온 삶의 발자취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알고 살아가다가도 “같은 사람인데도, 어떻게 저렇게까지 다를까?”하며 놀랄 때도 제법 있다. 인간 낯짝을 갖고서 어쩌면 저럴 수 있을까 싶을 때도 그러하지만, 한 시절 즐겨보던 <미녀들의 수다>에서 외국인들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들여다보며 “생활문화가 다르면, 저렇게까지 다를 수도 있구나!” 하면서 자주 놀랐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거리가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런저런 갈등 땜에 반감이 많다는 뜻이지만, 그걸 떠나서 보더라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많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 이래저래 다른 점이 상당히 많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다. “처음 1년엔 ‘어쩌면 이토록 우리와 비슷할까?’로 놀라고, 그 다음엔 ‘어쩌면 이토록 우리와 다를까?’로 놀란다.” 영화를 보아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러브 레터] [4월 이야기] [쉘 위 댄스]는 참 잔잔하고 그윽하고, 내가 싫어하는 [형사 25시] [감각제국] [도쿄 데카당스]는 너무 잔혹하고 퇴폐스럽다. 좋아하는 쪽이든 싫어하는 쪽이든, 무언가를 두루 살피면서 종합해 들어간다기보다는 어느 한 쪽을 잡고서 깊게 파고들어 집중하며 빠져든다. 좋게 말하면 집중 탐미스럽고 나쁘게 말하면 편파 비밀스러워서, 자기만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게 끼어드는 것도 삼가고 삼간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나 단체활동의 공동규약을 엄수하면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서로 침해하지 않으려고 삼가삼가 배려한다. 그게 일사분란하게 단체심이 있어 보이지만, 그 단체심이라는 게 열정하여 능동적이고 정감있는 게 아니라 냉랭하여 수동적이고 의례적이다. 좋게 말하면 예절바르고 도회적이어서 깔끔하고, 나쁘게 말하면 위선스럽고 인공적이어서 썰렁하다. 교양있게 단정하면서도 히스테리하게 정신병적이다.

이게 영화나 만화에서는, 현실의 리얼러티를 생생하게 잡아내어 박진감이 있게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현실의 리얼러티를 몽환스런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곱게 단장하거나 극렬하게 몰아치는 쪽으로 간다. 지극히 탐미스럽기도 하지만 병적인 집착 같기도 하다. 우리와 일본만 놓고 대충 비교해 보자면, 우리 영화는 개운하고 확실하게 밀어젖히며 현실을 질러가는 느낌이 있음에 반해서, 일본 영화는 몽환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현실을 비켜가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쪽이든 싫어하는 쪽이든, 일본 영화는 아련한 여운에 그윽이 잠겨들도록 하기도 하고 정나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잔혹하거나 퇴폐스럽게 몰아쳐가기도 함에 반해서, 우리 영화는 주어진 현실에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내어 현실을 개운하고 확실하게 치고 나간다고 할 수도 있고 거칠고 삐딱하게 도발적이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일본 영화에서 좋아하는 쪽을 많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쪽을 많이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펼쳐 보여주는 그 몽환적인 상상의 세계가 많이 좋기도 하고 많이 싫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의사선생님]은 좋아하는 쪽이다. 얼핏 보기엔 현실의 리얼러티가 상당히 생생해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 현실을 비켜가는 몽상이 깔려있기 때문에 결국은 ‘일종의 꿈꾸는 환상’이라는 서운함이 있다. 이런 걸 두고 이름하야 ‘환상적 리얼리즘’이라 하겠다.( [이웃집 토토로]에 비하면, 뒤틀린 현실을 비켜가며 작가나 감독 스스로를 위로하는 ‘감상어린 도피’가 숨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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