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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썸머 워즈] 아주 잘 만들어서 오히려 더욱 나쁜 영화
김영주 2009/10/31 09:14    

[굿모닝 프레지던트]가 장안에 화제이길레 이걸 이야기해 볼까했는데, 도저히 이야기하고픈 맘이 일어나질 않았다. 옴니버스도 아닌 것이 옴니버스인체 하고, 시나리오가 허술하고 산만하며, 대사가 맛깔스럽지도 못하고, 제대로 웃겨주는 장면도 없고, 배우들도 어정쩡하다. 장동건? 그냥 그가 출연했을 따름이다. 그나마 주방장이 젤로 낫다. 나중에 비디오로도 볼 필요 없다. 돈도 아깝지만, 시간이 너무 아깝다. 괜히 욕설만 주절주절 쏟아지려 한다. 그래서 브래드 피트가 갱꼴지게 나온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를 이야기해 볼까 했다. 글쎄, 재미있긴 한데, 이것도 이야기가 별로 땡기지 않는다. 지난 주에 디비디로 보게 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 워즈]로 하고픈 이야기가 목에 차올랐다.

그의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홀딱 반했다. [빽 투 더 퓨처]부터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 소용돌이치는 시간의 구멍을 지나서 과거나 미래를 넘나드는 영화가 많았지만, 이처럼 소박하고 상큼하고 풋풋하면서 흐뭇한 영화는 없었다. ‘시간의 구멍’이라는 장치로, 평범한 일상생활의 뻔한 이야기를 이토록 구성지고 찰지게 스토리를 이어가며 그토록 찬찬하고 맛깔스럽게 삶의 숙성을 우려내는 솜씨가 마냥 부러웠다. 지난 여름에 상영한 그의 [썸머 워즈]를 이제야 디비디로 보게 되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보다, 삶의 숙성이 덜했지만 대중재미가 더 좋았다. 삶의 숙성 A0 · 영화기술 A+ · 대중재미 A0. 스토리도 탄탄하고 진짜 재미있으며, 참 잘 만든 영화이다.

<예고편>


그런데 ‘일본 국수주의’가 엿보인다. 자기 고향이나 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게 잘못 뒤틀리면, 패거리 · 지역차별 · 국수주의가 되어서 집단적 분란의 씨앗이 되고 나아가서 집단적 폭행과 멸시를 당연하게 여기며, 너무 많이 뒤틀리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집단 최면’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죄악을 개과천선시키는 것도 힘든데, ‘집단 최면’은 한 번 잘못 빠져들면 그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고쳐잡기 힘들다. 우리 주변의 패거리주의나 경상도 집단이기주의를 보면, 그 ‘치료 불가능’을 가히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인류가 지난 2000여 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를 돌이켜 보건대, 갖가지 분쟁이나 전쟁은 모두 이 ‘집단 최면’을 조장하고 선동하면서 싹 터오르고, 그 잔악함은 그 ‘집단 최면’의 가열찬 신념 아래 저질러졌다. 한 번 휘말려 들면 도무지 헤어나오질 못한다. 인간 자체가 역겨울 정도이다.


국수주의는 ‘지나친 자기중심주의’에서 출발한다.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는 ‘엘리트 서열주의’가 잘못 뒤틀려서 나타난다. 엘리트 서열주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게 잘못 뒤틀렸을 때 나쁘다는 것이다. 이 영화도 엘리트주의를 깔고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이 아직 새파랗게 어리지만 수학천재이고 컴퓨터 기술에 숨은 고수이다. 조연 중학생 꼬마도 그러하다. 대학생 여자 주인공은 일본 어느 지방을 떵떵거린 가문의 자손이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이 지금은 일반 서민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지만, 실은 대단한 가문의 핏줄을 이어받아서 서민과는 ‘애당초 종자’가 다른 사람들이다. 그 집안 할머니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전형적인 모범’이다. 집안 분위기가 겉으론 분방하고 순박해 보이지만, 한 걸음만 더 걸어들어서면 “부자 · 귀족 · 미국 유학파”가 중요한 푯대이다. 미국에서 온 삼촌도 대단한 천재이다. 겉으론 삐딱해도 끝내는 긍지에 가득 찬 사람이다. 마침내 여자 주인공이 그 가문의 굳건한 자존심을 걸고 악마와 싸워서, 그 집안은 물론이고 세계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해내는 영웅으로 떠오르게 된다.

배트맨 수퍼맨 스파이더맨 반지제왕을 비롯한 수많은 미국영화에서도 이런 영웅주의는 흔해 빠졌고, 수많은 신화나 설화 또는 우리가 흔히 만나는 매체에서 영웅이나 천재 이야기로 넘치고 넘쳐난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영웅주의는 어영부영 흘려 넘기다가, 유난히도 일본영화니까 이리 삿대질하는 게 아냐?” 내가 이 영화에서 이걸 굳이 걸고 넘어지는 건,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인터넷의 혼란으로 마침내 인공위성이 원자력발전소로 추락하여 세계가 위기의 수렁에 빠져드는데, 어찌어찌해서 그 위기를 벗어나 오히려 해피엔딩하게 된다. 그런데 이걸 일본TV뉴스에서 "이 사태는 미국 국방성이 벌인 일로서 일본과 세계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보도한다. 이 마지막 마무리에서, 난 깜짝 놀랐다. 이 마무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 영화의 모든 걸 함축하고 있다고 보게 되었다. 이게 왜 이 영화의 모든 걸 함축하고 ‘일본 국수주의’를 뜻하는가를 자세하게 말하려면 길다. 핵심 포인트만 말하자면, 이 영화의 제목 [Summer Wars]는 1945년 8월의 일본패망을 오버랩시키면서, 원자폭탄으로 태평양전쟁의 패망을 원통해 하는 일본 우익에게 이 영화로 ‘뒤집기’해서 카타르시스를 주려는 속뜻이 숨겨져 있다고, 난 해석한다. 그래서 일본 우익의 주장을 이 영화의 뒤에 감추어 은유해서 발언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몇 해 전에 KBS에서 만든 [천황의 나라, 일본]이라는 다큐 5부작에서 일본 우익의 속내를 리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

이 세상 모든 것은 그 나름으로 ‘존재의 이유’를 갖고 있으며, 그 존재에는 항상 선과 악이 함께 뒤섞여 있다. 엘리트 서열주의도 그 나름의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善으로 나타날 수도 惡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지난 300여 년 동안, 근대 시민혁명의 깃발아래 이른바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서민 평등주의를 추구하며 엘리트 서열주의를 惡으로만 몰아세우는 풍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학문과 예술은 그 뿌리에서부터 이 ‘시대적 편파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이 영화는 엘리트주의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서민생활 모습과 잘 버무려서 순박하고 정겹게 그리고 마침내는 당차고 다부지게 그려가고 있다. 그걸, 인터넷 세상을 소재로 해서 재미있게 그려낸 솜씨가 너무 좋아서 대중재미 A0를 주었고, 갖가지 아기자기한 생활이야기에 상당히 리얼한 삶의 숙성을 매우 잘 담아냈기에 삶의 숙성 A0를 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일본 제국주의는 엘리트 서열주의의 아주 나쁜 모습이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던져서 수많은 민간인까지 한꺼번에 확 쓸어버린 걸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제국주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행한 잔악한 악행까지 합리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영화 자체만 보자면 ‘매우 잘 만든 작품’이지만, 잔악한 일본 제국주의를 미화하려는 나쁜 속뜻을 암암리에 깊이 숨기고 있다고 보기에 나쁜 영화이다. 예리한 칼날이 나쁜 쪽으로 사용되면 더욱 나쁘듯이, 잘 만든 작품이 나쁜 쪽으로 사용되었으니 ‘아주 나쁜 영화’이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보아야지, 이렇게 콩이야 팥이야 온갖 잡설을 늘어놓느냐”며 지겹게 여길 수 있겠지만, 그래도 워낙 잘 만든 영화인지라, 이 ‘아주 나쁜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하는 짓은 그 무엇이나 ‘정치적’이다.( 하다못해 ‘수학과 과학’에도 근대 부르주아세력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담겨있다. ) 그 정치적 속성을 파악하는 안목을 높이려는 노력은, 때론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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