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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과속 스캔들]로 딱지 떼인 '미혼모의 현실'
김영주 2008/12/11 21:01    

‘미혼모’를 따뜻하게 감싸는 영화이다. 미혼모!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禁忌는 ‘근친상간’일 테고, 그 다음이 아마 동성애와 미혼모일 게다. 동성애는 지난 10여년 사이에 여러 매체로 많이 이야기되고 그려져서, 세상사람들의 반감이 많이 누그러졌다. 미혼모는 예전보다 쬐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단단하고 높다. 이게 일단 ‘남의 일’이니까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 만약 ‘나의 일’이라면 내 삶의 나머지 모든 게 물거품이 될 정도로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감당 못한다. 이 영화가 ‘미혼모’를 소재로 삼았으니, 비록 ‘남의 일’이지만 잠깐 생각해 보자.

* 타락한 도시문명의 사생아, 미혼모


이제 겨우 솜털이나 마악 벗어났을까? 아직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았을 스무살도 못된 남녀가 애를 낳았다.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싸가지 없이 옆길로 새서 저지른 일이니 모두 즈그들이 지고가야 할 업보이다. 종자가 나쁜 것들은, 하는 짓마다 또라이 짓이다.” 과연 그럴까? 혹시 그 애들이 정상이고, 세상이 또라이인 게 아닐까?

남자와 여자. 이 문제처럼 풀기 어려운 것도 없다. Case by Case로 그 때 그 때마다 다르니 정답도 없다. 더구나 15살에서 25살 사이의 청소년 시절은 가히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활화산이요, 글자 그대로 질풍노도이다. 더 더구나 세상 경험이 짧아서 세상 물정까지 어두우니 참으로 위태로운 시절이다. 어른들이 일러주는 말도 도통 귀에 들어오질 않는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야생마에 재갈을 물려 길들이려 하지만,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다.

20살쯤에는 짝을 지워주어야 하는데, 무려 10여년을 문명이라는 가마솥에 짓이겨 넣어서 입시교육이라는 장작불로 달구어대니, 비명을 지르고 튀어 나오려는 건 정상이고 얌전하게 삶아지는 건 비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은 그 정상이 비정상이 되었고 그 비정상이 정상이 되었다. 미혼모 문제는 그 철딱서니 없는 청소년들의 잘못을 탓하기에 앞서서, 그 뿌리가 지나친 인구증가로 낳은 도시문명에 있고, 그에 따라 뒤틀린 사회제도와 극렬한 탐욕을 합리화하는 입시교육에 있다.


이걸 어찌 해야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지금 문명이 아무리 ‘범죄와 전쟁’을 선포해도 아무 소용없듯이, 미혼모 문제도 이 문명이 어찌 할 수 없는 ‘사생아’이다. 이 좁은 마당에서 무얼 더 말할 수 있겠나! 굳이 한 두 마디로 말한다면, 대도시를 소도시나 소농촌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빈부격차를 줄여서 치열한 경쟁을 누그러뜨리는 방법 밖에 없다. 이게 안 되면, 이 문명이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사회문제이다.

<예고편 보기>

* 훈훈한 덕담으로 과대포장한 심심풀이 재미

길어보았자 2시간밖에 되지 않는 영화가, 이토록 ‘거창한 인류의 화두’를 내세우며 지금 우리 삶을 꾸짖고 훈계해 주기를 바라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눈먼 도시] · [아내가 결혼했다] · [바르게 살자]처럼 상징적 이미지로 비유하여 암시해 줄 수는 있다. 이 영화에는 그런 상징이나 비유가 전혀 없다. 이 영화는 미혼모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기는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처럼 그들에 대한 ‘값싼 동정’을 넘어서지 못한다.

[아내가 결혼했다]처럼 이 시대상을 저항하고 풍자하는 쌉쌀한 맛도 없고, 스토리나 대사에 삶의 숙성이 담겨 있지도 않고,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잘 발라서 우려내지도 못했다.( 맛있는 대사가 많지만, 삶의 숙성이라기보다는 삶의 단면을 재치있게 잡아내는 재능으로 보인다. ) 그래서 이 영화로 ‘미혼모 문제’를 화제로 삼아 고민하며 설왕설래할 껀 없다. 남자주인공이 까맣게 잊고 살다가 느닷없이 벌어진 ‘얄궂은 소동’을 소재로 삼아 ‘웃자고 만든’ 영화이다. 그냥 그렇게 인정하고 보면, 그냥 웃고 넘어갈 코믹영화이겠다. 대중재미 B+ · 영화기술 C+ · 삶의 숙성 D0


남자주인공 차태현은 항상 고만고만하게 ‘착한 총각’으로 고만고만한 얄개다운 연기를 보여주고, 여자주인공 박보영은 처음 보았지만 그 역할을 부족함 없이 무난하게 잘 이끌어 간다. 꼬마의 역할이 가장 돋보인다. 여자주인공이 이 꼬마에게 “너 애, 맞아?”라고 했듯이, 겨우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는 꼬마애가 여간 영악하고 능글맞지 않으면서도 어린애의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게 참 인상적이다. “사람, 괜찮던데~” / “좀, 합띠다~.” 이 꼬마 땜에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하겠다. 영화관 문을 나서자, 단박에 [미녀는 괴로워]가 떠올랐다. 여기저기에서 풋풋한 웃음을 주면서 여자주인공의 노래를 중요한 모티브로 삼아 그렇고 그렇게 해피엔딩한다.( 노래에 뽀샵처리를 했다고 감안하더라도, 음색이 좋을 뿐만 아니라, 노래를 가지고 노는 솜씨가 가수하고도 넘칠 정도이다. )

미혼모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싶은 감독의 착한 마음새에 그대로 덩달아 간다면 훈훈하고 재미있는 영화이겠다. 그러나 ‘진짜 미혼모’의 입장에 조금이라도 접근해 주기를 바란다면, 이 영화는 훈훈한 덕담을 과장하고 리얼한 현실을 외면해 버린 심심풀이 ‘껌이나 땅콩’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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