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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아내가 결혼했다] 경쾌 산뜻 쌉쌀한 황당부부
김영주 2008/11/10 09:16    

[일부일처제의 신화](2002, 해냄)라는 책에, 어떤 시인의 짧은 시가 있다. “헤이 헤이 여자는 일부일처, 헤이 헤이 남자는 일부다처” 사회학이나 생물학이 아니라 마약을 통해서 얻은 영감이란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꼭’ 맞는 말은 아니다. “남자도 바람피고 싶어하지만, 여자도 바람피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다르고, 그래서 그 스타일이 다르다.” 그 이유와 스타일을, 난 ‘남자의 부평초 사랑과 여자의 따개비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걸, 난 생활이야기로 풀어가지만, 이 책은 동물행태학으로 풀어간다.

* [일부일처제의 신화]에서 동물행태와 인간행태


“남자든 여자든 간에, ( 일부일처제가 요구하는 1:1의 ) 정절貞節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다는 것을 밝혀내는” 것이 이 책의 임무 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그 동안 만들어 온 일부일처제의 겉모습과 속모습이 어떻게 서로 엇갈리고 있는지를 그 동안 동물행태학의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하고 자세하게 파고 들어간다. 1장 사회적 일부일처제와 성性적 일부일처제의 거리, 2장 혼외성교에 대한 남성의 딜렘마, 3장 성적 다양성을 추구하는 여성의 정자고르기, 4장 여성의 혼외 성교에 대한 또 다른 관점, 5장 도대체 일부일처제는 왜 나타나는 것인가?, 6장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7장 일부일처제의 불완전함, 그리고 남은 문제.

동물행태학에 관심이 많지만, 그걸 인간사회에 접목시키는 ‘사회생물학’에서는 허술하거나 오바하는 경우가 많아서 실망스럽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실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례를 들어 펼쳐가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일어나니까, 처음 한 두 번은 눈에 힘빼고 읽은 뒤에, 그 어지럼증을 잘 간추리면서 다시 한 번 눈에 힘주고 읽어야 할 책이다. 암컷과 수컷 사이에 벌어지는 그 수많은 사례들이, 단순하게 나열되는 관찰연구의 사례들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생명의 본질’을 들여다봄에 그 어떤 거창한 화두를 내세운 말씀보다도 훨씬 리얼하고 적나라한 사색을 준다. 보기 드물게 훌륭한 책이다.

* 똑똘녀와 모지리가 엮는 황당한 코메디


<예고편>


이 영화에서, 애당초 이런 사색꺼리를 기대했던 건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경쾌하고 산뜻한 잡담이든지 아니면 시시껄렁한 연애담을 말장난으로 알콩달콩 엮어가는 수다려니 지레짐작했다. [외출]뒤에 손예진을 좋아했고, 그녀의 벗은 몸도 슬쩍 훔쳐보고도 싶었고, 내 ‘바람끼 충동’을 이 소설의 젊은 상상과 비교해 보고도 싶었다. 이미 소설과 영화를 얕잡아보는 ‘오만’을 깔고 만났다. 오만이 깔리면, 영화에 빨려들지 못하고, 영화를 관찰한다. 그런 건방짐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엔가 난 그 영화에 빨려들어 있었다. 감독이 누구지? 정윤수? 감독을 전혀 몰랐고, 관객 삐끼용 예고편으로 그의 ‘범상치 않음’을 놓쳤다.

이 영화는, 여자가 남편에게 버젓이 애인이 있다면서 “당신도 사랑하고 그 남자도 사랑한다. 그래서 결혼 한 번 더 하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더구나 “당신과 이혼하지도 않고 ··· ” 이미 그런 내용을 가진 영화라는 걸 자자한 홍보로 알고 본 영화이지만, 막상 그 장면을 만나니, 저절로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 하· 하· 하· 아니, 어떻게! 아~니 어떠~케! 그것도 “그게 뭐 어때서 ··· ”라는 태도로 “누가 달을 따 달레? 별을 따 달레?” 이건 발칙한 게 아니라, 어처구니없다. 남자든 여자든,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그래도 소설이고 영화니까 이보다 더 어처구니없다 한들 기발하다고 할지언정 놀랄 꺼까진 없겠다.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주제에 현실적인 리얼러티를 섬세하고 짜임새 있게 잘 입혀서, 마치 진짜로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실감나도록 이끌어가는 솜씨이다. 그래서 남자관객들은 많이 불편해 하고 황당해 하면서, 많이들 ‘Bad 영화’라며 비난할 법도 하다. Good 영화인지 Bad 영화인지는 접어두고, 아이러니칼하게도 남자관객들이 더욱 불편해 하거나 더욱 황당해 하며 신경질을 부릴수록, 이 영화가 더욱 Well-made하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토록 황당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들 사이사이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그 이음새를 잇는 대사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때론 기발했다. 자질구레한 터치에 번뜩이는 재치와 풍자가 맛깔나게 자리잡았다. 게다가 음악도 그 이야기 그 자리에 꼭 들어맞게 흘러들어 화면을 이끌어간다. 손예진이 물 만난 고기처럼 퍼득퍼득 살아났다. 김주혁은 ‘모지리 남자’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모든 게 Cool~하다.( 마무리가 좀 억지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주제가 워낙 황당하기에 그렇게 갈 수밖에 없었겠다. )



* 경쾌 산뜻 쌉쌀한 성性담론


이렇게 시대상을 비꼬고 저항하는 메시지는, 자칫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자기만의 오기로 훈계하기 쉬운데, 전혀 그러하지 않고 가벼운 산책하듯이 끌고 가는 게 사뭇 인상적이다. 꽤나 시니컬한 대목도 가벼이 농담하듯이 휙 스쳐 지나간다. [베터 댄 섹스]가 섹스와 섹스 사이로 흐르는 질펀하고 낯 뜨거운 비밀을 산뜻하고 경쾌하게 이끌어가는 모습에 상쾌한 감동을 먹었다. 이 영화는, 그런 상쾌함에다가 남녀 사이에 흔히 끼어드는 구질구질한 비겁함도 까발리는 쌉쌀함까지 곁들여 있어서 더욱 좋았다. 대단한 내공이다. 깜짝 놀랍고 너무 부럽다.

우리 사회의 섹스 개방이 지나치게 문란하고 천박해졌는데, 그 시궁창 속에서 이런 진주알을 품어 빛을 내는 작품이 나타났다. 포르노는 순전히 남자 입장에 서서 여자에게 일방으로 퍼붓는 모독이다. 이 영화는 정반대로, 순전히 여자 입장에서 남자에게 일방으로 날리는 군밤이다. 이 정도 군밤이야 호프 한 잔에 가벼운 안주감으로 웃어넘길 수도 있겠지만, [일부일처제의 신화]라는 책에 기대어 좀 더 진지할 필요가 있는 소재이기도 하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 못지않은 충격이다. 영화는 가볍게, 사색은 진하게.

대중재미 A · 영화기술 A · 삶의 숙성 A. 점수가 A0와 A+ 사이를 왔다갔다 헷갈린다. 대중재미는 ‘신경질난 남자관객’ 때문이고, 영화기술과 삶의 숙성은 ‘이 어처구니없는 주제’ 때문이다. 이토록 황당한 영화에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하는지도 헷갈리고, 이 높은 점수도 소설가에게 돌려야 할지 영화감독에게 돌려야할지 헷갈린다. 소설을 꼬옥 만나보고, 이 감독의 다른 영화도 꼬옥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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