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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걸이 소녀]의 매혹에 그윽히 안겨들다!
김영주 2008/09/1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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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고야의 유령]들이 떠돌며 울고..
[고야의 유령]으로 고야의 그림을 이야기하다보니, 렘브란트와 함께 17세기 네델란드를 풍미하였던 베르메르의 작품 '진주귀걸이 소녀' 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5년전의 영화이야기 [진주귀걸이 소녀]를 다시 올렸습니다.

*****

피카소 ` 샤갈 ` 달리 ` 폴락의 그림은 정신 사납고 메스껍다. 일부러 그걸 노린 그림이라고는 하지만. 만약 공짜로 준다면, 포장도 뜯지 않고 얼른 팔아서 돈만 챙기겠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별별스럽게 찬양하는데, 나에겐 괴기스럽기만 하다. 잠옷처럼 보이는 새까만 옷에 가지런히 길게 늘어뜨린 머릿결의 엄정함, 오랜 지병에 시달린 듯한 얼굴색에 눈썹도 없는 얼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괴이한 눈매에 야릇한 미소. 게다가 뒷 배경까지 으스스하다. 입가에 피 한 방울을 살짝 흘려 놓으면 정말 섬뜩할 것만 같다. 미켈란젤로 그림은 등장인물이 지루할 정도로 같은 모습뿐이다. 모두가 천편일률로 ‘바디빌딩’으로 다져진 미스터 코리아감이다. 하다못해 여자도 온통 울퉁불퉁 근육질이다. 천지창조의 ‘하느님과 아담’의 손가락 만남은 참 좋다. 근데 아담의 그 우람한 체구에 아홉 살 풋고추만도 못한 허접스러움이라니, 차라리 하얀 천으로 가릴 것이지 뭘라고 그렸을꼬 ··· .


로코코의 부셰 그림은 육감적인 환상이 간질간질해서 좋고, 드라크르와와 고호는 좋아하지만 지나친 격정이 몰아치는 작품은 감당하기 힘들다. 쿠르베의 사실주의 그림은 우울하지만 우리 삶의 어두운 구석을 생생하게 새겨내는 힘이 단단해서 좋다. 고호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작품과 카라바조의 ‘예수를 의심하는 토마스’를 좋아하는 것도, 쿠르베 그림같은 사실주의적 힘이 느껴져서 그렇다. 그 동안 만난 수많은 그림 중에서 렘브란트나 모네 그리고 김홍도 그림이 가장 좋다. 그 중에서도 난 렘브란트 그림이 단연 으뜸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깊고 그윽한 빛의 그림자로 쑤욱 빨려들어가는 착각이 든다. 그의 깊은 터치가 내 몸과 맘의 구석구석을 더듬어오는 듯 하다. 마치 그와 내가 한 몸이 된 듯한 깊은 충만감에 황홀하다. 화들짝 깨어나 다시 오밀조밀 뜯어보면, 그의 손길은 인간이 뽐내는 재주로 보이지 않는다.
<예고편 보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라는 영화홍보물의 사진도 좋았지만, 거기에 그려진 그림이 맘에 쏘옥 파고 들었다. 사무치게 좋아하는 렘브란트의 색감과 조형감이 느껴졌다. 베르메르? 그리 낯설지 않다. 인터넷으로 뒤져 보았다. 아하 이 그림!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제3권의 표지그림과 속그림에서도 보았다. 렘브란트하고 같은 나라 같은 시대의 화가이었다. 렘브란트 그림과 아주 비슷한 느낌을 주기에, 렘브란트의 위력으로 내 기억에 그의 이름이 묻혀 버린 모양이다. 나만 그러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 당시에 이름을 얻지 못하다가, 19세기에 재발견된 화가란다. 그래서 그의 일생과 주변이야기도 알려진 게 별로 없단다. [진주귀걸이 소녀]라는 그림을 보고, 그의 희미한 흔적을 더듬어 찾아서 픽션으로 만들어낸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란다.

[진주귀걸이 소녀]의 배경은 유럽에서 새로운 사회세력으로 등장하는 17세기 부르주아지들의 전형을 보여주는 네델란드이다. 미술이 대중적으로 상업화되어가는 시대상이 깔려있다. 남자주인공이 너무 도식적인 미남이어선지, 조용히 숨어사는 화가의 개성적인 예술끼를 담아내지 못한 상투적인 연기로 보였다. 여자주인공은 하녀로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갖고 있지만, 어린 소녀에서 이제 막 피어오르는 육감적인 표정연기가 대단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피어오르는 육감적인 욕정을 풀어내는 시나리오의 구도를 잘못 짠 것 같다. 좀더 우아하게 처리하든지 아예 육감적인 욕망을 풀어헤쳐 몰아가든지, 그 어느 쪽으로 각을 확실하게 잡아가는 게 더 나았겠다.(원작 소설에서는 그걸 훨씬 자연스럽게 끌고 갔을지도 모르겠다.) 베르메르의 와이프에게서 풍기는 괴이함이 은근한 연기력으로 점점 무르익어가면서, 마침내 처절하게 뿜어내는 질투의 서릿발이 매섭도록 시렸다. 그녀의 처참한 표정은 압권이다.

진주귀걸이 소녀를 그려낸 그림을 두고, 여자주인공이 욕정을 지긋이 숨기면서 읊조리는 “날 꿰뚫어 보고 있군요!” 그리고 베르메르의 와이프가 일그러지는 울먹임으로 뱉는내는 “음란하군요!”. 그 복합적으로 흐르는 감정적인 대비는 그 영화의 전체를 빨아들이는 소용돌이 구멍이다. 이만큼 극렬하면서도 생생한 예술적인 대비를 맛본 적이 드물다. 이 영화를 향한 찬양이 여기에서 그칠 수 없다. 나는 이 영화에서 렘브란트의 그 빛과 그 그림자를 기대하였다. 그 기대가 이렇게까지 흡족하게 채워질 줄은 미처 몰랐다. 첫 장면부터 그윽하고 깊었다. 부엌에서 요리하는 모습이 그렇게 그윽하고 깊어야 하냐며 그 허영스런 감성을 힐책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게 채워주는 뻥치는 허장이나 사삭스런 허영을 혹시 삶의 윤활유로 인정해준다면, 첫 장면의 한 컷 한 컷부터 내가 목마르게 기다리던 ‘렘브란트의 빛과 그림자’를 담아주었다. 렘브란트의 그림만은 못해도, 실사영화에서 그렇게 깊은 톤의 그윽함 그리고 그렇게 은은한 빛그림자을 구석구석에 담아낸 화면을 보지 못했다. 모든 걸 잊어버리고, 그 한 컷 한 컷을 눈동자의 셔터로 잡아내어 뇌리에 박아 넣었다. 적어도 열 컷쯤은 영화 화면이 아니었다. 그 그림의 포즈를 그대로 취한 그녀의 클로즈 업 장면은 영화가 아니라 그 그림 자체로 깜빡 착각하였다.

그 어느 장면 그 어느 연기 그 어느 대사들의 맛을 잊지 못하고, 네온 불빛 사이에 영화관의 으슥한 골목길을 외로운 늑대처럼 헤매인다. 또 이번에 [진주귀걸이 소녀]에게 그윽히 안겨 녹아들었다. 보나마나한 영화에 헤매이다가 이런 영화를 한 번씩 만나는 맛에, 결코 벗어나지 못할 '영화중독증'에 걸렸다. 하늘 저편이 으스름히 저물어간다. 또 다른 그녀를 찾아나서야겠다. [쉘 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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