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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엄마 뿔났다] 김수현의 글맛 vs 장미희의 매혹
김영주 2008/08/22 15:04    

* 주성치의 [장강 7호]에 실망하다.

주성치. 20여 년 전쯤만 해도 감질난 무술영화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10여 년 전쯤부터 그가 주연으로 나오기도 하고 감독하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개성이 엿보였다. 그러려니 흘러 넘기다가 [소림 축구]와 [쿵푸 허슬]을 놓쳤다. 그런데 흘러 다니는 풍문이 뭔가 낌새가 달랐다. 그래도 일부러 찾아보진 않다가, 우연히 케이블TV에서 [소림 축구]를 보고 나서, 당장 [쿵푸 허슬]을 찾아보았다. 깜짝 놀랐다. 비린내 나는 초등생이 2~3년 사이에 우람한 덩치로 자란 모습에 주눅 들리는 듯 한 느낌이었다. “그의 초라한 겉모습에 이토록 놀라운 끼가 숨어 있었구나!” 반성했다. 그 반성으로 이번 [장강 7호]라는 SF영화를 당장 보았다. 꽝이었다. [쿵푸 허슬]의 감동하고는 정반대이다. 무슨 사정이 있는가는 몰라도, 이렇게까지 정반대라는 게 도무지 이해되질 않는다. 그래도 [쿵푸 허슬]의 감동과 반성을 저버릴 순 없다.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 김수현의 [엄마가 뿔났다]와 [사랑이 뭐길래]

쓸 만한 영화이야기를 찾지 못했다. 문득 TV드라마 [엄마 뿔났다]가 떠올랐다. 난 TV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재밌게 보았던 TV드라마가 없는 건 아니다. 그냥 우연히 두서너 번 본 것도 있고, 재밌었는데 어째어째 보다 만 것도 있다. 거의 빠짐없이 열렬히 본 게 얼추 10여 개쯤 된다. 이참에 [엄마 뿔났다]를 열렬하게 보았다. 과연 김수현 작품답다. 그녀의 홈피에 들어가 열렬하게 본 그녀의 작품을 뒤져보았더니, 1981년의 [안녕하세요]와 1991년의 [사랑이 뭐길래]가 있었다. [뭐길래]는 이순재 김혜자 최민수 하희라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연하고 귀에 쟁쟁하다. 재미도 재미려니와, 하희라의 신세대 분위기 친정집과 구세대 분위기 시가집을 워낙 생동감 넘치게 그려냈다. 그 갈등이 암시하는 사회문화적 의미가 깊은지라, 10여년이 넘도록 내 강의의 중요한 소재로 삼아 실감나게 강의할 수 있었다.(지금은 그 드라마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학생이 별로 없어서 거의 써 먹지 못한다. 너무 아깝다. 그걸 DVD로 구입해서 방학숙제로 낼까?)

* 김수현의 글맛


대중재미나 삶의 숙성에서, [뿔났다]가 [뭐길래]보단 못하지만 그래도 만만찮다. 이야기가 김혜자 가족 · 장미희 가족 · 신은경 가족을 중심 줄기로 삼아 진행되지만, 그 사이 사이를 메우는 인간 군상들도 참 아기자기하게 잘 엮어간다. 세 가족의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솜씨도 놀랍지만, 그 사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갈등을 펼쳐내면서도 그 어떤 접점을 잡아서 이어가고 풀어가는 말솜씨의 절묘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몇 겹으로 복잡하고 미묘하게 덮인 마음껍질(Persona)을 뚫고 들어가는 힘도 상당히 놀랍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만날만한 사건에 흔히 듣는 말로 우리 삶의 깊이를 그렇게 까지 담아낸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놀랍다. 어렵게 말한다는 건 잘 모른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고 깊은 걸 담는 게 진짜 어렵다.

그런 일상생활의 이야기가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알콩달콩하기도 하지만, 자잘한 수다처럼 간지럽기도 하고 때론 시끄러운 느낌도 없지 않다. 도도한 물결을 타고 흐르는 세상사의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도저한 안목을 흩뜨리거나 뜬구름 잡는다고 비웃는 듯 하기도 하다. 수다스런 잡담에 괜한 시간낭비가 아닐까 하는 신물이 살짝 돌아서 두어 번 멀리하다가도 그 알콩달콩한 재미가 솔곳이 떠오른다. 중독성 있다. 여자들 이야기는 상당히 깊이 들어간다. 남자들 이야기도 수더분하게 잘 그려내지만, 그 속내에 한 걸음 들여 놓다가 결국은 건전하고 상투스런 선에 멈춰서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고 만다. 고만고만하게 갈등하다가 결국은 해피엔딩이다. 인기는 끌더라도 세상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겠다는 뜻이겠다.

* 장미희의 매혹


김혜자 강부자 백일섭 장미희의 연기는 농익을 대로 농익어서 천연스럽다. 김혜자 강부자 백일섭은 늘상 그 모습 그대로이어서 그러려니 하지만, 장미희는 오똑하게 톡 튄다. 그녀는 1977년에 [겨울 여자]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정윤희 유지인과 함께 1980년대 트로이카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날렸고, 전두환과의 스캔들로 이순자가 어찌어찌 했다며 장안이 온통 수런거렸다. 외모도 독특하거니와 얼굴 표정도 그러한데 코맹맹한 음색과 똑똑 부러지는 말투까지 그러해서인지, 심심찮게 관심을 불러 모은다. “아름다운 밤이예요!” · “똑 사세요” · “미세스 문~”

그녀가 광고에 떠오르는 걸 보면, 이번 [뿔났다]에서 한 껀 제대로 건졌다. 그게 헤어숍에까지 뻗쳐 “장미희 숏커트 해주세요!”라며, 롱 헤어를 촌스럽게 여길 정도란다.(중국 춘추전국시대에 吳나라를 멸망시킨 傾國之色으로 유명한 西施가 눈썹을 찡그리는 게 아름다워서 온 나라 여인네들이 눈썹을 찡그리고 다녔다는데 ... .) 그녀가 허영이 가득 찬 부잣집 마나님의 행세를 얄밉도록 해대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본 모습이 그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연기가 뛰어난 것 같기도 하다. 헷갈린다. 그녀 말고는 그 역할을 해 낼 사람이 아무도 없겠다 싶을 정도로 딱이다. 그녀만 보면 몰입이 꽉 차 오른다.

냉정하게 헤아리면 김수현의 글맛이 최고지만, 열정하게 몰입하면 장미희의 매혹이 최고이다. 여러분도 그 ‘냉정과 열정 사이’를 헤매어 보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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