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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배트맨, 다크 나이트]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위한 고군분투
김영주 2008/08/09 07:16    

<예고편>

미국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WASP(White/Anglo/Saxon/Puritan)의 엘리트주의를 추구하는 공화당 이념을 담고 있다. 미국 오락영화의 대부분은 그걸 선과 악의 극렬한 대비에 담아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그러나 이번 [다크 나이트]는 선과 악을 극렬하게 대비시키면서도 ‘악당의 독설’에 “저 자식이 그래서 세상을 작살내려고 작심했구나!”하는 미세한 동감의 잔물결을 일으킨다. 게다가 악당은 일처리가 치밀하고 개운하고 화끈하지만, 우리편은 확 밀어붙이다가다도 “그 놈에 정의 땜에” 꽈당 넘어지고 “그 놈에 인정 땜에” 옆구리에 빵구나며 답답하기 그지없다. 관객들은 정의의 우리편이면서도 악당의 화끈한 잔혹함에 빨려드는 카타르시스로 갈등하며 긴장한다. “결론은 정의편”이지만 “과정은 악당편”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 결론에 스스로를 정의편으로 위로 받으면서도 그 악당에게서 카타르시스를 즐겼기에 “오랫만에 괜찮은 오락영화 보았다”며, 그 오락성에도 충만하고 그 작품성에도 뿌듯하다. 대중재미 Ao · 영화기술 Ao · 삶의숙성 Ao.

* “그는 영웅이 아니라 구원자이다.”


미국 공화당을 너무 싫어하는 감정 때문인지, 어지간해선 공화당 영화에게 삶의 숙성에 A학점을 주지 않는다. 그 동안 극우적 극좌적 뒤틀린 꼴통 엘리트주의나 영웅주의를 무던히도 미워했다. 그렇다고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충정어린 엘리트주의나 영웅주의까지 몰아서 미워하진 말자고 최근에 많이 반성하던 차에, 이 영화를 보자마자 담박에 삶의 숙성에 A학점을 주었다. 이 영화는 [수퍼맨] [인디애나 존스]나 [배트맨 포에버] [배트맨과 로빈]처럼 공화당의 덕목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도 않고, [스파이더 맨] [원티드] [쿵푸 팬더] [포레스트 검프] [신데렐라] [백설공주]처럼 비릿한 서민적 영웅주의도 아니다.

배트맨은 재벌기업 억만장자Billionaire이다. 어려서 악당에게 부모를 잃은 슬픔이 있지만, 타고난 집안이 귀족적인 성골이요 거대기업의 황태자이다. 부모를 잃은 슬픔과 악당에 대한 분노로 어두운 우울의 수렁에 빠져든 게 아니라, 타고난 ‘품격 높은 유전자’로 주어진 역경을 분연히 딛고 일어서서 어둠의 자식들과 온 몸으로 맞짱 뜨는 ‘정의의 사도’이다. 주저없이 ‘노골적인 귀족적 엘리트주의’이다. 그렇다고 건방지거나 위선스럽지도 않다. 솔직하고 강직하다. 악당의 비열한 잔혹함도 버겁도록 힘들고 뭇사람들의 몰이해도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하늘이 선택하신 성골’은 그 고난을 정면으로 감수하고 이겨내야 한다. 만백성의 환호 속에 꽃눈을 맞으며 개선하는 찬연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죄악을 무거운 십자가에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수난받는 예수같은 구원자’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멘트가 “그는 영웅이 아니라 구원자이다.”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으로 ‘경찰의 부패와 무능’에 공권력을 불신한다. 이것은 민주당의 ‘큰 정부’에 대한 공화당의 ‘작은 정부’로 ‘정부의 실패’를 강조하는 정치적 이념에 연결된다. 그것은 시장만능주의로 정부규제 적극적 반대 · 공기업 민영화 · 공립학교의 평준화교육 불신과 사립학교의 엘리트교육 강화 · 시장활성화에 의한 대기업 중심 경제성장론 · 우리 대기업이 지구촌을 휩쓰는 자유무역론과 밀접하다. 이것은 마침내 국방에 민병대나 용병고용을 주장하고, 치안에 자경단이나 사립탐정을 주장한다. 배트맨은 그러한 공권력의 불신을 자기 몸소 해결하는 민병대와 자경단의 후예로서, 낮에는 이 세상을 굳건히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대기업 총수’이고 밤에는 쓰레기인간들을 개운하고 화끈하게 처리하는 ‘정의의 사도’이다. 사립탐정 셜록 홈즈처럼 공권력이 무능과 부패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민첩하게 처리해 주고, [밤의 추적자]의 챨스 브론슨처럼 범죄자 인권보호법 따위에 얽혀 큰 고기에 잔챙이까지 모두 놓쳐버리는 한심한 법조문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는 ‘밤의 Dark Knight’이다.

* [포레스트 검프]와 함께, 가장 돋보이는 공화당 영화


그렇게 보자면, 팀 버튼의 [배트맨1]과 [배트맨2]는 우울의 수렁에서 방황하는 배트맨으로 그 본 모습을 비틀어 그려냈다. 그래서 잭 니콜슨 조커의 히스테릭한 이중적 괴이함과 미쉘 파이퍼 캣우먼의 매혹적 팜므 파탈이 더욱 돋보였겠지만.( 팀 버튼 감독의 개인적 캐릭터 때문인 것 같다. )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포에버]와 [배트맨과 로빈]은 골수 공화당원답게 배트맨이 우울의 수렁을 벗어나 정통 엘리트라는 본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고 양자역학(토미 리 존스의 두 얼굴)과 카오스이론(짐 케리의 수수께끼)이나 자연환경운동가(아이스맨와 아이비걸)을 악당 이미지로 잘 담아서 몰아붙였지만, 그 선과 악을 지나치게 단선적으로 몰아붙여서 눈요기 오락영화로 치우쳤고, [배트맨과 로빈]에서 배트걸까지 무리하게 등장시켜서 스토리가 흩어지며 더욱 유치하게 흘러가버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긴즈]는 그 어느 쪽인지 헷갈리면서 비긴즈의 오프닝과 어쭙잖은 쿵푸훈련으로 길고 지루하게 한 편의 완성도를 갖지 못한 채 다음 편을 기다리라는 암시만 남기고 사라졌다.


그렇게 답답한 [배트맨 비긴즈] 때문에, 매스컴이 “상당한 작품성을 갖고 있다”는 말을 괜한 호들갑으로 여겼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탄탄했다. 배트맨과 냉혈한 조커 사이에 끼어든 여주인공과 투페이스가 엉클어져 벌이는 심리적 관계와 그 줄다리기도 좋았고, 무려 150분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행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팽팽하게 이어갔다. 대사도 감칠 맛이 깊다. “Why so serious? / ha ha hee hee h~(조커의 잔혹함이 깔린 너스레 웃음) / You complete me. / 행운은 자기가 만드는 거야! / 안녕, 이쁜이! / 혼돈은 공평해! / 가족을 위해서였어! / 사람이란 게 너처럼 악랄한 게 아니라 선善하다는 걸 알아야 해! / 그래? xx 이 몸이 꼬옥 몸소 설쳐주어야 된다니까~! / 돈만 밝히는 악당은 품격이 없어~! / 광기는 가속도가 붙지! / 니가 없어지면 내가 재미가 없~지~! / 그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야!” 쿵푸액션이 어색하고 무작스러웠지만, 초고층건물에서 홍콩 야경의 스카이라인을 타고 펼쳐지는 박쥐 비행 · 탱크카와 탱크바이의 질주 액션과 총격전 그리고 병원폭파와 유람선 공포는 가히 A학점이었다. 그 무엇보다도 히스 레저의 조커가 보여준 잔혹한 모습은 잭 니콜슨의 조커보다 좀 더 자연스러웠고, 투페이스의 뒤틀린 심성은 토미 리 존스의 투페이스보다 훨씬 리얼하게 실감났다. ‘은빛 동전’이라는 그 작은 소품 하나가 사건과 사건 사이에 중요한 포인트로 연결고리를 맺어간다는 게 놀랍도록 기발했다.

그러나 일반 관객에게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좀 복잡했을 수도 있겠고, 그 감칠 맛나게 이어가는 대사들의 복합적 의미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엔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고, 어떤 대사는 놓쳐버리면 스토리의 흐름도 놓쳐버릴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좀 어렵다. 그래서 관객 동원에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염려도 들지만, 좀 덜 어렵게 만들면 작품성이 떨어질테니 딜렘마이다. 나도 많이 놓치기도 했고 재미도 있어서 한 번 더 보았다. 게다가 스토리 흐름에 사건 사건마다 조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의도적으로 짜 맞춘 듯한 느낌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까끌까끌하다.

귀족적 엘리트주의를 노골적으로 내세워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코에 걸기도 하고 귀에 걸기도 하는 ‘서민적 평등주의’에 정면으로 맞짱 뜨는 용기가 사뭇 가상하다. 당당하고 의연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만난 공화당 영화중에서 [포레스트 검프]와 함께 가장 높이 평가한다.

* 뱀의 발 : 여주인공이 너무 초라하다.( 이걸 ‘미모 지상주의’라고 비난하면 할 말 없다. ) 중국인 악당을 내세워 ‘욱일승천 중국’에게 신경질을 부림서 뒤통수를 때리는 건, 그 당당하고 의연했던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유치하고 쫀쫀해진다. 글고 이 영화에 무슨 귀신이 붙었나? 히스 레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또 다른 연기를 더 이상 음미할 수 없다는 게 여간 안타깝지 않다. 그의 조커 연기, 놀라울 정도로 대단했는데 ... . 히스 레저에게 명복을, 그리고 모건 프리먼에게도 쾌유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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