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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몽상가]들의 68혁명 & 광우병 촛불집회
김영주 2008/05/1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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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맨]과 [Across the Universe],..
앞 영화이야기 [Across the Universe]에서 68혁명과 베트남전쟁을 이야기 하였다. 68혁명은 20세기 지구촌에서 일어난 사건 중에서 5대 사건 중의 하나이다.( 러시아혁명, 1차대전, 2차대전, 68혁명, 중국개방과 소련붕괴 )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68혁명의 전모와 그 의미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21세기 새로운 시대의 정신혁명에 가장 중요한 씨앗을 심었으며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니체부터 시작하여 푸코 들뢰즈 데리다의 프랑스 현대사상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원천을 이루고 있다. 이 사상에 동조를 하든 하지 않든, 이 사상적 흐름이나 예술적 흐름을 잘 모르면, 현대사상과 현대예술을 제대로 논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무지 난해하다.( 보기에 따라선, 정신병적이거나 엽기적이거나 퇴폐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 이 난해함을 제대로 쉽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반사람들은 어리벙벙하거나 쪽팔리게 만든다. 나도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랑스 현대사상을 공부하면서 처음엔 무지무지 고생했다. 어찌나 어려운지 참말로 욕이 절로 나온다. 남의 껄 무턱대고 베끼고 외우는 공부를 하니까, 그렇찮아도 어려운 걸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린다. 번역물들이 완전 개판이다. 어떻게 낯뜨겁게 그런 걸 번역물이라고 책으로 이 세상에 내놓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남경태'의 해설서가 내가 만난 책 중에서는 그나마 제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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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68년 5월! 우연이겠지만, 이걸 소재로 하는 두 영화가 동시에 상영되었다. [파리 탱고]와 [마지막 황제]를 만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the Dreamers]와 일본 청년문화의 기수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만든 [69년]이다.

우리나라 68년은, 실미도 특수부대를 만들게 한 김신조 일당의 북한 124부대 청와대습격사건으로 새해의 문을 열었다. 이어서 북한은 미국 푸에블로 항공모함을 납치했고,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외침이 온 나라를 메아리치게 한 삼척공비침투사건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갔다. 북한 공산당의 만행에 치를 떨며 ‘반공'으로 분기탱천한 한 해였다. 그 다음 해 69년. “박정희 대통령이 한 번 더 해서 근대화의 과업을 마무리해야한다”는 담임선생님의 충정어린 말씀은 간곡했다. “박정희 찍으세요!”라는 어린 아들의 기특한 말에 울 엄니는 동백기름으로 쪽진 머리에 옥색 치맛자락 올려잡고 동사무소에서 “박정희 찍었다”. 그렇게 해서 박정희는 “잘 살아보세!”라는 외침 속에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게 되었고, 72년에 이루어낼 한국적 민주주의 ‘10월 유신'의 터전을 닦았다. 우리나라는 드높은 반공과 3선개헌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나는 중학교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뺑뺑이 1세대'의 기쁨에 들떠서 동네 골목을 떠들썩하게 누비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월남에 계신 국군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와 이웃집 명숙이 큰 오빠가 보내온 월남의 편지 사진 미제과자박스 그리고 김추자의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그리고 씩씩한 맹호부대 청룡부대의 노래에 얽힌 사연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그 베트남 전쟁으로 68년과 69년에 지구촌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초라한 가난의 먼지구덩이에 묻혀 그저 범생똘뱅이로 철없는 잡초였다. 고등시절 유신반대데모가 어리둥절했고, 대학시절에 약간 삐딱해지긴 했지만 똥폼이었다. 그렇게 오월광주를 만났고 극단의 시절 80년대를 겁먹은 눈길로 책갈피 속으로 숨어들었다. 모든 게 헷갈렸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동양과 서양, 학문과 예술 그리고 과학과 종교.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젊음의 폭발과 끝없이 이어지는 안개 속 방황.

그 헤매임 속에서, 프랑스 파리의 68년 5월이 현대사회의 중요한 포인트이라는 걸 조금씩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우리의 80년대를 견주어볼 수 있겠지만, 다른 점도 많다. 그게 어떻게 뒤틀리고 변형 되었든, 우리의 60년대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시대상에도 깊이 걸려있다. 실존주의 그리고 하이데거와 싸르트르 ` 장발 ` 통키타 ` 찢어진 청바지 ` 히피와 마리화나 ` 락과 포크송 ` 김민기와 양희은 송창식 김정호 그리고 조용필의 사랑과 평화 ` 삐딱한 대학생과 그 똥폼들 그리고 대학가요제 ` 애마부인과 열리는 성문화 `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서태지와 윤도현 싸운드 그리고 비엔날레 현대미술과 [올드보이] ` ` `, 민청학련 남민전과 운동권 노동운동 그리고 노사모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파리의 68년 5월 그리고 그 앞과 뒤를 모르면, 우리와 지구촌의 현대사회를 제대로 알 수 없다. 그걸 [포레스트 검프]는 반감 쪽에서, [the Dreaners]와 [69년]은 그걸 호감 쪽에서 그려내고 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자본주의와 스탈린주의 그리고 국가 종교 학교 가부장제가 지나치게 '붕어빵 인간‘을 강요하고 사회구조적인 횡포를 그럴듯하게 미화하기에, “그 사랑과 평화 ` 자유와 상상력 ` 플라워 무브먼트'를 향한 몸부림과 ‘the Innocent'([the Dreamers]의 프랑스판 제목)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모습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몽상가]는 '홀라당 벗어버린 남녀누드와 금기탈출의 자유 장면들'로 베르툴루치답게 68혁명이 추구하는 '파격적인 자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69년]은 일본영화가 틈틈히 보여주는 '유치하고 백치스런 맛' 때문에 좀 어리둥절해 보일 수도 있겠다.

현실의 삶은 구체적인 선택과 스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항상 어리석음이 깃들어 있고, 그 스텝은 때론 모자라고 때론 넘친다. 지나간 선택과 스텝도 그랬고, 지금의 선택과 스텝도 그렇다. 그건 어느 누구나 범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새로운 선택과 스텝을 그리고 있다. 20세기의 모든 것에 저항한다. 나는 새로이 꿈꾸고 있다. 그 때 그들과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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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글은 일반사람들에게 68혁명에 관한 글을 쓰려다가,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글입니다.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지만, 그래도 68혁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쓰인 글이고, 다양한 관점에서 잘 정리된 글로 보이기에 여기에 올립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인구폭발과 함께, 교육제도가 경직되고 부실해지면서, 프랑스에서 대학생들의 불만으로 폭발하기 시작한 작은 데모가 '앙팡 떼러블'로 이어지며,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어 마침내 20세기 5대 사건중에 하나가 되었다. 문득 지금 10대와 20대가 나선 '광우병 촛불집회'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인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지금 '미친 다이내믹상태'에 소용돌이치고 있어 보입니다. 그 어떤 불길이 온 세상을 마른 들판의 불길로 만들어버릴 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분명코, 세상이 미쳤습니다." 무슨 일인가가 곧 터질 것 같습니다. 내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과장해서 지나치게 삐딱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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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8혁명의 발생

1-1. 배경

지난날의 세대간의 갈등은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으로 상정되었으나 1960년대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영역에 걸치 기성세대의 모든 것에 대한 도전으로서 다시 말해 반체제로서 나타났다.

68년을 기점을 세계적으로 저항운동이 집중된 이유는 동서세계의 냉전으로 인한 획일적 사회 분위기에 대한 반대가, 미국의 베트남 침략이나 소련의 스탈린주의에 의해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전후의 경제번영과 자유를 누리며 대학에 진학한 젊은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대학교육체제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교육제도에서의 지식교수는 억압적 성격을 띄고 있었고 그 결과 지식의 수익자는 노동자원으로서 사회 속에 통합되거나 혹은 경제 사회체제의 결합에 봉사하는 기술산업요원으로 편입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대학이 지닌 모순이 산업사회의 구조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는 인식에 도달했다.

1) 대학 내의 문제

당시 프랑스 대학이 과도한 양적인 팽창으로 인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게 되자 그 부작용은 학생들에 의해 폭발하게 된다. 68혁명 당시의 학생들은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로서 196년 23만명이던 것이 68년이 되면 2배 이상 증가하여 60만명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대학당국의 시설과 교수법에서의 대처는 미흡했다. 초대형 강의, 비좁은 건물, 구태의연한 강의내용과 평가제도, 암기와 주입식에 의존하는 전통적 교수법, 기숙사 시설 대학교원수의 절대부족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졸업 후 사회 진출에 대한 불안감도 크게 작용했다. 학생수의 급격한 증대는 많은 졸업생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곧 고학력 실업자가 양산되는 요인이 되었다.

2) 드골의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와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

드골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구원자였고 그 후 프랑스를 부강하게 만들었으며 미제국주의의 허구를 지적하고 나토를 탈퇴하는 등 대미종속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지만 60년대말 사회의 다양한 욕구와 변화를 충족시키는 정책을 펴내지 못하고 권위주의에 의존하여 강력한 중앙집권을 펴는 부작용을 낳았다.

3) 2차대전 후의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사회구조적 변동과 소비사회의 도래

무제한적인 소비와 이윤을 추구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거부반응을 꼽을 수 있다. 혁명 와중에 나타난 문구들을 보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인종차별 등을 고발하는 내용이 많으며 강대국 중심의 패권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2. 전개과정

당시 프랑스에서는 68년까지의 10년 동안 인문과학 계열의 대학생은 3.5배, 사회과학 계열의 대학생은 4배 증가한 상태였으나 이들을 수용하기에는 대학과 사회 모두 역부족이었다. 대학의 면적은 같은 기간 동안 겨우 2배 증가했을 뿐이며 불투명한 진로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또 전쟁과 공황을 겪지 않은 세대들은 부모세대의 간섭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대학가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불만으로 고조되고 있었다.

미국의 베트남 공습에 항의하기 위해 American Express Bank를 습격하다 체포된 급진파 학생 6명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3월 22일 다니엘 콩방디를 비롯한 8명의 학생이 낭태르 대학 학부장의 집무실을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점거 6일만에 경찰에 의해 캠퍼스는 봉쇄되고 강사들과 학생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인다. 낭테르 대학 폐쇄에 반발한 학생들은 5월 3일 소르본에서 시위를 계속한다. 10일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대치하다 경찰과 유혈충돌이 일어난다. 그 이후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68년, 프랑스, 빠리. 2008년 서울의 청계천은?

학생들보다 2주정도 늦은 13일 총파업으로 노동자들이 시위에 적극 가담하고 공장을 점거하고 연속적으로 총파업에 돌입해 천만명의 노동자가 파업하는 등 사회가 마비되는 상황에 이른다. 27일 CGT등에서는 임금의 10%인상등을 담고 있는 '그르넬 협약'을 맺지만 그 후에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계속되다 29일 드골실종사건을 계기로 드골지지시위가 있다. 이후 6월 5일 시위는 막을 내리고 드골정권은 6월에 총선을 실시하여 승리를 거둔다. 하지만 이듬해 국민투표에서 진 드골은 대통령을 사임한다.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는 68년의 상황에서 반자본의 기치 아래 학생과 노동자가 하나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학생과 청년 노동자는 프랑스 역사에서 처음으로 노학연대를 실현해 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학생들과 청년 노동자들이 정치적 좌파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로 통합되기 이전의 학생들은 객관적 거리에서 현상을 바라볼 수 있었고 따라서 이들은 관료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자본주의의 병폐를 간파하고 이와의 단절을 요구하고 있었다. 청년노동자들 역시 노조지도부를 불신하고 있었고 경제주의적인 타성에만 젖어있는 기성노동자들과 구분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노조 지도부는 정부와의 협상을 위해 5월 22일부터 학생과의 연대를 단절한다. 5월 27일 '그르넬 협약'체결을 공포한 후 연대는 와해된다. 하지만 '그르넬 협약'은 일선 노동자들로부터 거부당하고 파업은 계속된다.

1-3. 특징

5월 혁명의 특징은 일상생활에서의 문화적 저항과 정치적 저항이 융해되어 표출되었다는 데에 있다.

69의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드골의 경제개발정책과 식민지 정책에 반대했다. 즉 소회된 노동의 거부와 제 3세계 수탈의 거부가 68을 이은 두 개의 이념이었다. 68혁명은 자본주의적 노동을 사회주의적 노동을 반 소외의 관점에서 동시에 문제 삼았던 인류역사상 최초의 투쟁이었다. 자본주의 경제가 만들어낸 발전, 그 경제적 진보에 대한 단호한 거부와 소외되지 않은 삶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표현되어 있다.

이런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혁명은 노동에서 출발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려 했던 전통적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혁명과는 달리 일상의 삶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통제의 권력에 지나지 않는 국가권력 장악을 거부하고 삶의 복구와 확장, 즉 더 나은 삶을 추구했다.

즉 물질적 행복의 추구를 넘어서 자아의 실현이라는 질적 가치를 추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삶의 양식과 새로운 자기 정체성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또 5월 혁명은 프랑스사회의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인간관계를 보다 평등한 인간관계로 바꾸어 놓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상수준에서의 관습과 인습의 엄청난 변화가 이를 말해준다. 68 이후 이성간의 동거와 피임기구의 판매가 자유롭게 되고 사제간의 경어 사용이 폐지된다.

"혁명을 생각할때면 섹스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슬로건에서는 혁명가들이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무엇을 성취하고 싶어하는가가 아니라 혁명가들이 무엇을 하고 그 일을 할 때 어떻게 느끼는 가를 찾아볼 수 있다. 개인의 해방과 사회적 해방이 병행되었다. 68년은 산업사회의 계급갈등에 기반한 노동운동과 후기산업사회의 탈계급적인 새로운 사회운동이 혼재하여 나타났다. 전통적 노동운동을 넘어 환경운동, 여성운동, 정보운동, 반핵운동 등의 다양한 운동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지배계급은 공산당과의 협력을 통해 68을 선거로 봉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개혁조치들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업의 감축, 노동자의 경영참가에 따른 공장의 공동관리, 학생 참여에 따른 학교의 공동관리 등이 그것이다.

68혁명의 모두에게 발언권이 주어지고 모두가 토론을 했다. 60년대를 통해 절제와 억압에 기초를 둔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저항하여 육체적 쾌락과 성의 자유가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며 영화와 출판물에 있어서도 성과 폭력이 일반화되었으며 마약과 환각제가 공공연하게 되었다. 이는 전통적 문화와 공리주의적 가치관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즉 혁명세대는 성의 자유와 함께 이를 공개적인 담론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기존세대의 가치관이 가지는 허구성과 위선을 폭로할 수 있었다. 이전에 금지되었던 것을 행하는 것 그 자체가 기존 가치관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68혁명으로 인해 섹스, 마약, 동성애 같은 모든 금지가 풀리게 되었다. 결국 68세대는 개인적 해방과 함께 사회적 해방을 완성했다. 68혁명은 프랑스 사회에 새로운 가치, 새로운 고민,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삶의 방식을 부여했다. 공장에서든 정치에서든 교육에서든 방송에서든 수직적 커뮤니케이션은 무너지고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대화에 근거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양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에서는 여성의 지위상승과 여성운동이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인다. 여성운동가들의 저서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이후 낙태와 피임을 합법화시키는데에 또 의료보험의 대상이 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5월에 맛본 자유의 장기적 파급효과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그 폭발을 간단히 잊지도 않았을 것이고, 당시에 드러났던 사회적 모순들이 자진해서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은 순종시키기 위한 제약과 사회적 지서를 강력히 거부함으로써 자신들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류의 존엄을 확인시켰다.

68혁명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산업화된 국가에서의 혁명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권위와 명성의 상징이었던 드골을 1969년 4월 27일 은퇴시켰다. 또한 권력구조를 능률화하고 학생과 노동자들에게 참여의 외관을 부여하는 일군의 개혁이 도입되었으며 종국에는 1981년 사회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68혁명은 대학교육의 대중화, 성의 혁명을 통한 여권의 성장, 엘리트 문화의 대중화라는 성과를 얻었다.


2. 68혁명의 정치적 의미


1)애국주의와 국제주의

5월 투쟁의 목표로 했던 비전은 어떠한 국가경계도 인정하지 않았다. "국경을 타도하라"는 구호는 대중적 감정을 표현했다. 전단과 포스터들을 통해 쁘띠적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조직적 켐페인이 수행되었다. 이 켐페인은 즉각적으로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던 세계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5월 사태에 참가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학생폭동이 강화됨에 따라 파리의 외국인 학생 기숙사는 가장 급진적인 구성원들에 의해 점거되었다. 기숙사들의 민주적 재조직이 요구되었고 고향과 프랑스내에서 모두 해방운동을 지원해 줄 것이 요청되었다.

2개국어로 된 포스터들은 아랍인과 유대인같이 겉으로 보기에 적대적인 집단들이 "당신들의 공동의 적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노동자들의 일자이레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인종주의자의 공격을 빈번히 받았던 프랑스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6월의 기간동안 동지로 받아들여졌다. 총파업은 분열된 노동자들을 변화시켰다 .경영자 측이 이민자들을 구사대로 동원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절대다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참여했다.

저항자들의 국제주의와는 달리 정부는 독일과 이탈리아로부터 파리에 오고자 시도했던 많은 젊은이들에 대해 프랑스 국경을 봉쇄했다. 국외추방은 프랑스에서 외국활동가들을 제거하는데 이용되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국경철폐를 위한 행동위원회가 파리에서 건설되어 유럽인들이 혁명을 대륙전체로 확산시킬 것을 촉구했다. 행동에 대한 그들의 요구는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반향이 있었다.

2) 권위주의와 자주관리

총파업의 참여자들 중에는 많은 수의 전문가들, 기술자들, 생산라인 밖의 사무실 요원과 서비스 요원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단결된 노동계급은 이전까지의 분절되고 부분적이었던 생산관을 통합할 수 있었다. 지식의 구획과 그에 상응하는 특권화된 전문가와 경영자에 대한 필요는 희망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공공연히 논박되었다.

1968년 프랑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자본주의 파이의 더 많은 몫을 분배받기 위해 파업을 계속한 것은 아니었다. 그르넬협약에 대한 그들의 압도적 거부, 지주관리에 대한 많은 제안들, 소유권 폐지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들이 그것이다 총파업기간중 많은 공장들을 점거했으며 경영진 없이 노동자들의 자주관리로 제품을 생산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강자에 대한 복종으로 더 많은 재화를 얻고자 하는 대신 그들의 직무와 삶에 대한 스스로의 통제를 원하는 프랑스 노동자의 깊은 열망을 나타내준다. 자주관리는 프랑스의 집중화 권위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자율과 직접 참여에 기반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해 주었다. 자주관리는 소비사회의 수동성과는 대조적으로 능동적 참여를 요구했다. 자주관리는 지식의 구획과는 대조적으로 집단구성과 개인적 기술들의 공유를 요구했다. 그르넬 협약을 거부하고 파업을 계속한 기층노동자들은 좀더 많은 임금이나 좀 더 좋은 작업조건이 아니라 더 이상 복종적인 도구가 되지 않겠다는 동기에서 파업을 지속하였다. 즉 이들은 생산현장에서의 권력관계 재편을 위해 투쟁하였다. 그리하여 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이 자주관리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장을 운영해갔다. 이런 자주관리는 대학에서 기원한 것으로 대학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은 이른바 '직접민주주의'와 '참여하는 데모크라시'를 내세워 대학관리위원회를 조직하여 스스로 대학의 결정권을 손에 넣으려고 한다.


3. 6월 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프랑스 혁명은 꼬뮌을 추구한 프롤레타리아의 패배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패배는 이후의 역사에서 보면 계급간의 싸움에 있어 서전에 불과하다. 5월의 노동자투쟁은 학생의 카드제시로 시작하여 드골의 또 다른 카드 제시로 끝났다. 그러나 5월혁명에서 승리한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전후 제국주의의 경제적 세계체제의 막바지에서 프랑스자본주의가 부딪친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둘러 싼 대립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했다고 보기 힘들게 한다.

5월혁명은 선진자본주의국 내부의 진정한 투쟁이 공장점거반란으로 들고 일어선 노동자대중과 지배계급·국가권력사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대중 내부의 혁명파와 질서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예리하게 폭로했다. 즉 노동자에게 자기 자신들 속의 질서파, 조합적·회의적 개량파를 무력화하지 않고서는 지배계급·국가권력에게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주었다.

또 하나 혁명의 전위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르조아적 노동자당과 싸울 수 있어야 하며 조합주의적인 켐페인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 결론


일반적 의미에서의 혁명 즉 사회변혁적이고 또 저이체제의 변화를 가져오는 혁명으로서 68혁명은 결코 성공한 혁명이라 부를 수 없다. 아니 처음부터 68혁명은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다. 68은 분명 그 이전의 시대와 그 이후의 시대를 단절시키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성문화와 가족제도 대중문화의 측면에서 변화의 모습들을 더욱 많이, 그리고 선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68혁명의 성격 중 일부이다.

그러나 68을 재평가함에 있어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계급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켰던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일찍이 1848년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부르주아 혁명 이래로 프랑스에 있어서 120년만에 노동자중심성, 반자본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명백히 계급적인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혹자들이 지나치게 68의 일상성에 침잠한 나머지 보고 있지 못하는 부분이 아니었는가 한다.

68세대들이 이제 정권을 잡았다고 한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세대. 그러나 사실 정권을 잡은 68세대들은 이미 그 때의 주역들과는 많이 멀어져 제도권으로 편입해간 인물들이 아닌가.

우리가 볼 것은 지금의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때 그사람들이 외쳤던 말들을 현재적으로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하는 점에 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쳤던 부르주아 혁명은 68년에 재전위되면서 프랑스를 주목케 했다. 다시 한번 대혁명의 정신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지금. 다시 우리는 '실업자 운동'으로 대표되는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바로 이곳에서 혁명의 꿈은 아직 접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까치, 1997.
요미우리 신문사,『20세기의 드라마 3』,새로운 사람들.
월러스틴, 『반체제운동』, 창작과 비평사
편집부 편, 『프랑스 5월 혁명』, 백산서당.
"1968: 거부된 과거, 감추어진 미래", 신진욱 외, 『학회평론』11호, 1995.
"68혁명 이후 한세대", 카피레프트 모임, 『읽을 거리』2호,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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