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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삼국지]의 조자룡, 천하에 포효하다!
김영주 2008/04/11 01:54    

동양문화를 가까이 하려면, 무엇보다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에 먼저 익숙해지라고 권한다. 만화로든 소설로든 ··· . 덧붙여서 [수호지] [서유기] [홍루몽]까지 재미를 붙이면 더욱 좋다. 사서삼경이나 노자 장자 순자 한비자 ··· 의 한문원전을 읽으려면, 그에 앞서서 [열국지]를 족히 서너 번은 읽고,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12권, 한길사, 1995]를 두어 번 읽어서 중국역사의 큰 가닥을 잡고 있어야 한다.( [열국지]와 [삼국지]는 여러 사람의 번역이 있는데, 김구용과 박종화의 번역이 옛스럽고 구수하다. 일본의 역사소설 [대망]도 읽어두면 좋다. 부담 없이 읽으려면, 고우영의 만화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가 좋다. 진순신의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적극 권장한다. )


[삼국지]가 나에게 처음 다가온 건, 신동우의 만화[삼국지]이다. 그 때 박힌 이미지가 깊이 새겨져 있어서, 그 뒤에 만나는 고우영의 만화[삼국지]나 박종화의 소설[月灘 三國志] 그리고 한문원문[삼국지]를 볼 때도 항상 그 그림장면들이 떠나질 않았다.( 난 신동우의 만화뿐만 아니라 그의 스케치나 수채화를 매우 좋아하면서도, 그가 유신정권의 적극적인 홍보맨이었다는 기억 때문에 찝찝하다. )


[삼국지]의 수많은 영웅호걸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한 두 명을 꼽으라면, 사람들은 관우나 제갈공명을 꼽는 경우가 많은데, 난 단연코 ‘상산 조자룡’이다. ‘장판교의 싸움’에서 홀로 유비의 아들을 구해내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는 장면이 너무나 장렬하고 다부져서 그 강단진 의연함이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 있다. [삼국지]는 항상 이야기의 고향이나 책의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인데, 이번 영화[삼국지]가 조자룡에 초점을 잡아 만들었다고 하니, 고향 땅 형님을 만난 듯이 와락 반갑다. 더구나 예고편에서 유덕화의 조자룡 모습이 유난히도 그럴싸하게 다가왔다.


[삼국지]는 나관중이라는 이야기꾼이 정사正史의 팩트Fact 몇 줄에 픽션Fiction을 잔뜩 발라서 만들어낸 팩션Faction이다. 이 영화[삼국지]는 이런 팩션에 또 다시 픽션을 잔뜩 발라서 만들었다.

조자룡 고향 선배로 나오는 홍금보의 캐릭터가 스토리를 살리는 쪽이 아니라 죽이는 쪽이고, 조자룡 군사들의 갑옷과 조조 군사들의 갑옷 스타일에서 우리 편과 악당 을 유치하게 구별하고 들어가는 것은, 영화의 재미를 갉아먹었다. 중국 북서쪽의 고비사막 지역의 황량하고 메마른 흙먼지 사막지대만을 무대배경으로 삼은 것은 전쟁의 황폐감과 잔혹한 살육에 어울리기는 하지만 마냥 단조로웠다. 소품이나 의상의 고증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비록 잠깐이지만 유비 관우 장비 황충 마초 그리고 제갈공명의 캐릭터들은 제법 그럴싸하게 어울렸으며, 대규모 군단의 전투장면이나 개인적인 무술동작은 상당히 스펙타클하고 박진감 있었다.( 관우와 장비의 카리스마가 약해 보였지만, 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아니니 그리 거슬리진 않는다. ) 전투장면이, [무극]보다 훨씬 낫고 [황후화]나 [묵공]보단 좀 더 나아보이고 [명장]보단 좀 약해 보인다. 대중적 재미 B+ · 영화기술 B+ · 삶의 숙성 C0.


조자룡이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조조와 맞짱 뜨고 도망치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의 꽃은 조자룡 유덕화와 조조의 손녀 매기 큐의 팽팽한 대결장면이다. 유덕화는 어떤 배역보다도 이런 배역이 가장 어울린다. 매기 큐는 처음 보는데 강한 카리스마로 강렬한 호소력을 준다. 이 영화의 모든 것은 바로 이 장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황량한 사막의 겨울바람이 휘감아 후드득 펄럭이는 전장戰場의 깃발과 섬뜩하게 번뜩이는 서슬 퍼런 창검, 반백 머릿결에 삶의 회한을 돌이키는 백전노장百戰老將 조자룡 그리고 영특한 눈매와 맵시로 교활하고 음산한 복수결전을 다지는 요화여걸妖花女傑 조영, 조자룡의 죽음을 부르는 무거운 북소리 사이로 매기 큐의 날카로운 손톱 끝에서 비수의 칼날처럼 파고드는 카랑카랑한 비파소리. 강인한 호랑이와 검푸른 이무기의 죽음을 건 싸움이다. 이 극렬한 대비의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걸 말하고 모든 걸 승부한다. 이 장면만 말하자면, 대중적 재미 A+ · 영화기술 A0 · 삶의 숙성은 관심 없다. 이런 장면은 반드시 영화관에서 보아야 한다.


이성의 팩트는 삶의 냉철한 리얼러티이고, 감성의 픽션은 삶의 촉촉한 윤활유이다. 우리 삶이라는 게, 팩트를 너무 바짝 벼르고 발라내면 마른 건빵처럼 퍽퍽해지고, 픽션을 너무 질컥 바르고 문지르면 물렁 개떡처럼 헐렁거린다. 세상 모든 게 팩트와 픽션이 어우러지는 팩션이지만, 그걸 어떻게 벼르고 발라내며 바르고 문지르느냐는 삶의 내공과 외공에 따라서 그 맛이 다양하게 달라진다.





독자 의견 목록
1 . 그 장면 기억합니다 도토리 2008-04-11 / 17:47
2 . 지도 잘 보고 왔구먼요 초롱이 2008-04-23 / 16:08
3 . 초롱님도 저처럼 영화광이시네요? 김영주 2008-04-25 / 13:28
4 . 윤발이행님도 .. 초롱이 2008-04-26 /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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