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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영국판 '장희빈'에 얽힌 [천일의 스캔들]
김영주 2008/03/28 13:25    

지난 영화이야기에서, 아이스크림CF '엉짝댄스'를 독특하게 언발란스한 파격에만 눈을 주어 Stylish하다고 했다. 잘못 짚었다. Stylish가 아니라 Kitsch이다. 키치는 기존 주류예술에서 ‘쓰레기’로 여기는 ‘저급한 B급 잡동사니’를 일부러 강조하여 드러내는 패션이나 행위 또는 작품을 가리킨다. 고상하고 품위 있게 세련된 멋 뒤에 숨겨진 위선을 비꼬거나 물질적 풍요로움 뒤에 배인 판박이 삶의 권태를 벗어나고파서, 일부러 유치하고 산만하게 싸꾸려로 구기고 짓이겨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파격이나 소란을 일으킨다. 패러디와 매우 비슷한데, 패러디는 그 어떤 원본에 대한 삐딱함이라는 구체적인 표적이 있으며, 싸구려 잡동사니 스타일을 보이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수준 높은 유머나 풍자인 경우도 많다. 키치는 그 어떤 원본에 별로 상관하지 않고, 궁극적으론 풍자라고 할 수 있지만 싸구려 잡동사니 소란스러움을 벗어나지 않는다. ‘신바람 이박사’의 노래와 춤이 바로 그렇다. 최근에 정준호와 현영이 60시절 패션이나 감각의 촌티패션을 깔고 있는 ‘하이마트 광고’도 상당히 그렇다. 영화로는 [달콤 쌀벌한 연인]이 매우 그렇다. [아치와 씨팍]은 지나치게 오바해서 오히려 지겨웠다. [슛뎀업]이야기에서 이미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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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판 '장희빈'에 얽힌 [천일의 스캔들]



헨리8세와 앤 볼린의 드라마틱한 사랑이야기. 우리나라 ‘장희빈’만큼이나 서양에서 수많은 버전으로 되풀이되는 유명한 소재이다. 1969년 [천일의 앤], 앤 볼린이 1000일 동안 헨리8세의 왕비노릇을 하다가 비극적으로 죽어간다. 그 시절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 주제음악이 유명자자하다. 작년 TV드라마 [튜더스, 천년의 스캔들], 16세기 영국 튜더왕조의 스캔들이니 500년 전쯤 이야기이다. 천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스캔들이란 뜻일까? 상당히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지만, 스토리 흐름이 지루하게 늘어지고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자꾸 겉돌며 어긋나서, 두어 편 보다가 눈을 떼어버렸다. 이번엔 [천일의 스캔들]이다.

헨리8세의 에릭 바나에겐 별로 끌리는 바가 없지만, 요즘 한창 뜨겁게 떠오르는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와 맵시에 호기심이 일었다. 예고편이 의상과 영상에 카리스마가 흐르면서 장중한 무게감을 주었다. 땡겼다. 나탈리는 [레옹]의 어린 소녀부터 시작해서 지난 번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 이르기까지, 주로 도도하게 당당하고 당찬 역할이다. 그래선지 이 영화에서 처절하게 슬픈 부분에선 열연이지만 잘 어울리지 않았다. [호텔 슈발리에]처럼 깔끔한 누드를 기다렸는데 한 치도 보여주지 않았다. 스칼렛은 [진주귀걸이 소녀]에선 소녀 같은 순박함 속에 깊이 감추어진 육감적인 ‘로리타 콤플렉스’에 아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에선 그 이미지를 흉내내긴 하였지만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 요즘 매스컴에서 안젤리나 졸리에 버금가는 섹시 스타처럼 그려진다. 매스컴이라는 게 그런 것이니까 그 호들갑에 시비걸고 싶진 않지만, 오바가 지나치다. [헐크] [뮌헨] [트로이]에서 에릭 바나는 메갑시 눈깔에 힘만 주는 폼생폼사로만 보였는데, 이 영화에선 그 겉모습이 참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저 여자만 밝히는 ‘곰탱이 숫컷’에 그치는 그 역할이 너무나 쪼잔해 보인다. 스토리 줄기의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 같다.


스토리가 좀 이상해서 뒤져보았더니, 역사적 사실과 많이 다르다. 앤 볼린과의 결혼을 위해 헨리8세가 저지른 로마교황청과의 단절로 등장하는 영국 국교회(聖公會)에 얽힌 사회상 그리고 울시 추기경 · 토머스 모어 · 크롬웰의 갈등 속에 밀고 당기는 정치적 종교적 파워게임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유토피아>라는 책으로 유명한 토마스 모어가 그 당시 로마 카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영국 국교회 사이에서 겪는 갈등도 또 하나의 소설과 영화로 좋은 소재이다. 앤 볼린과의 결혼문제로 헨리8세의 미움을 사서 앤 볼린이 사형당하기 1년 전에 그 장소에서 사형당한다. 그리고 첫 왕비의 딸 메리여왕과 앤 볼린의 딸 엘리자베스 여왕 사이의 관계와 종교적 갈등도 또 하나의 소설과 영화로 좋은 소재이다. )

대중적 재미를 위해 그런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골치 아픈 얘기는 빼 버리고, 그 재미의 포인트를 마녀같은 나탈리와 천사같은 스칼렛에만 초점을 맞추어 몰아가는 데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그대로 발맞추어, 헨리8세의 무지막지한 마초Macho에 악의 포인트를 맞추고, 스칼렛을 바람끼 있는 언니로 그려내고 나탈리를 열등감과 도도한 야심으로 자기 스스로를 망쳐가는 동생으로 그려내어, 그 사이 사이에 왕실과 귀족들의 파워게임을 양념 치듯이 얽어 넣었더라면, 더욱 드라마틱하면서 삶의 깊은 숙성도 담아낼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선과 악의 대립각과 무게중심을 잘못 잡았다. 그래서 사실 왜곡도 지나치고, 스토리 짜임새도 잃어 버렸다.

그런데 의상이 아주 돋보인다. 카메라 앵글각도와 영상의 색감 · 빛감 ·질감이 잘 뒷받침하여 그 다양한 의상들이 더욱 빼어나게 꽃피어난다. 영상의 색감 · 빛감 · 질감이 의상에서만 빛나는 게 아니라, 절대왕정의 왕실과 귀족들에게 흐르는 엄정한 권위의 카리스마를 과장없이 실감나게 그려낸다. 그래서 그 뒤에 흐르는 간교한 계략과 음모가 더욱 추하고 비열하게 다가온다. 의상 A+ · 영상 A0 · 음악 B+인데, 시나리오와 각색에서 너무 실망스럽다. 대중적 재미 B+ · 영화기술 A0 · 삶의 숙성 C0. 감각이나 기술은 빼어난데 내공이 많이 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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