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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레이] 찰스의 째즈&블루스에 열광하다.
김영주 2008/03/01 07:41    

지난번에 '마리아 칼라스'이야기를 했기에, 이번엔 3년전에 썼던 '레이 찰스'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

[레이]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보다 훨씬 더 좋았다. [밀리언 ]이 못 만든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주인공이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절묘한 연기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강렬하게 개성적인 마스크가 이 영화에 썩 어울렸다. 삶의 연륜을 담은 두 남자의 연기도 깊어 보였다. 주인공이 몸을 크게 다치는 장면에서는 무척이나 가슴 아팠다. 그러나 여자 권투선수라는 소재가 이채롭다는 것 말고는 스토리의 기본 흐름이 너무 단순하고 뻔했으며, 그녀와 두 남자의 삶에 더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올해 아카데미영화제의 가장 우수한 영화라고 하기에는 싱겁고 어정쩡했다.

아카데미영화제는 미국의 보수적인 관점이 깊이 배인 문화잔치이다. 그 관점의 바탕에 깔린 ‘강렬한 자기집착의 유치함' 때문에, 아카데미영화제의 작품안목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런 정도의 영화에 중요한 상을 몰아주는 걸 별로 의아해 하지도 않는다. 그 영화제의 색깔과 수준이 원래 그렇다. 나도 한 시절, 아카데미상은 보고픈 영화를 고르는 중요한 잣대였다. 그러다가 예술을 사회문화적 관점으로 보는 눈이 생긴 뒤로는 아카데미상을 싱겁게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얕잡아 보지도 않는다. 아무렇게나 주는 상은 아니다.

나라면 [밀리언 ]에 준 작품상과 감독상을 [레이]에게 주겠다. 그래미상을 12번이나 받았을 정도로 대단한 레이 찰스의 블루스&째즈 가락과 연주가 감겨들어와 안겨드는 귀맛이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그의 인생 스토리 사이사이에 엮어넣는 솜씨가 절묘하고 짜임새 있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연출로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낸 작품은 결코 많지 않다. [역도산]이나 [에비에이터]는 감독이 그들의 삶을 멀찌감치 바라보면서 그들의 인생기록을 나열해가는 듯했지만, [레이]의 테일러 핵포드 감독은 그의 인생에 함뿍 빠져들어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었다. 나도 저절로 레이 찰스의 인생에 빨려들어 한 몸이 되었다.



특히 그가 클럽에서 출연시간을 땜빵하면서 즉흥적으로 부르는 “ What'd I Say? ”라는 노래에, 나도 모르게 열광하는 감동의 도가니에 휩쓸려 들었다. 그 노래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아니! 바로 그 노래의 그 장면만 딱 뽑아서 뮤직비디오코너에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볼륨을 잔뜩 올렸다. 소리바다에 풍덩 빠져들었다. 어수선한 댄스홀을 어색하게 휘감아드는 들머리 피아노반주곡은 멈칫 멈칫 야릇한 분위기가 깔리며 잔물결 치듯이 두드리는 손가락이 점점 흐드러진다. 꺼벙스런 허수아비 어깨너머로 질박하게 내지르는 창법이 괴이한 꿈틀거림을 불지른다. 댄스홀의 남녀들이 점점 달구어지며 열광의 춤결로 흔들린다. 탬버린을 찰랑이며 곁들이는 세 여성의 도발적인 화음이 땀으로 번들거리는 가슴과 몸매의 선동적인 몸짓을 타고 열기를 돋운다. 나도 주체하지 못하고 팔순 노모를 건너방에서 모셔와 리듬따라 어그적 버그적 보리대춤을 들썩거렸다. 찐하고 척척한 색소폰소리가 숨을 몰아쉰다. 독특한 피아노 간주곡과 스폿화음이 흐르고 맺는 열광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댄스홀의 한 여인이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그녀의 물결치는 율동은 똑똑 부러지는 건반음을 따라 육감적으로 꺽고 흐느적거린다. 열 번도 넘게 보고 또 보았다. 울 엄니와 나는 보듬고 울먹이며 서로의 맺힌 삶을 다둑다둑 다둑여주었다.( 애인과 싸우다가 불러대는 “Hit the Road Jack"에서 여자코러스가 강렬하다. 영화관의 큰 화면과 화끈한 음향이 죽인다. )



만사를 제쳐두고 교육방송이 방영한 걸 녹화해둔 ‘7부작 블루스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았다. 블루스에 서린 흑인들의 생생한 삶이 새겨진 질박한 체취가 더욱 짙게 적셔든다. 레이 찰스의 노래가 이렇게 좋은 줄 미처 몰랐다. [프리다]에서 만났던 챠벨라 바르가스의 노래 만큼이나 전율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요즈음 매끈하게 잘 빠진 노래솜씨보다도, 이런 텁텁하고 굵직한 음색과 투박하게 내지르는 창법에 깊고 깊게 잠긴다. 판소리도 오늘날의 매끈한 재주꾼 소리보다도 옛날 송만갑이나 임방울의 껄껄한 막사발 소리에 더 깊은 귀맛을 느낀다. 그리 보자니 울 엄니가 못 부르는 듯이 부르는 ‘타향살이'와 ‘호남가'의 맛이 기막히다. 흉내를 내 보지만 영판 안 된다.

지금 사람들의 '덜 떨어진 잔재주'를 반성한다. 그게 아마 '덜 떨어진 마음새'에서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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