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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다즐링]의 찌질한 인도여행, 그 쫀쫀한 생활의 발견.
김영주 2008/02/01 11:38    

광주극장의 ‘2007년 놓치기 아까운 영화’ 30여편 중에서 10편쯤을 보고 싶었지만 4편밖에 보지 못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매우 좋았고, [우리 학교]는 홋가이도 재일교포 조총련계 학교의 학생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이다. 정겹고 소박하게 촌스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아련하게 그립기도 해서 괜시리 눈물났다.

팀 버튼의 [스위니 토드]가 잔혹엽기영화인 것 같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작품성이 높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가슴을 꾸욱 누르고 억지로 보았다. 팀 버튼이 보여주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엽기적 상징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미국영화가 전반적으로 삶의 숙성이 얕고 직설적이듯이, 팀 버튼도 대체로 그러하다. 그래서 팀 버튼 작품을 항상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긴 하지만 감동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 [스위니 토드]는 삶의 숙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엽기적 상징성만 난무하였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천민적 자본주의의 피와 살’에 대한 분노는 ‘사회고발’일지언정 ‘삶의 숙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 그 천박한 엽기성을 억지로 참고 보다가 못 견디고 도중에 나와 버렸다. 서양의 보수문화와 진보문화가 함께 쏟아내는 ‘낭자한 선혈’이 진저리치게 싫다. 서양문화가 이대로 계속 주도권을 잡아갈 세상이 너무 어둡고 두렵다. 아아! 지구의 악마, 인간들이여!!!

*****

작년엔 광주극장 작품들을 까맣게 깜빡 놓쳤다. 다즐링? 인도 철도청의 철도여행 프로그램의 하나란다. 서유럽 청년 삼형제가 인도의 어느 구석진 지방에서 수녀로 봉사활동을 하는 어머니를 찾아가면서 경험하는 다양하고 이국적인 에피소드. 그걸 거창하게 양념치거나 심각하게 소리 높여 강조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고 무던하게 평범한 일상처럼 흘러가지만, 그 에피소드들 속에 담긴 삶에의 잔잔한 성찰을 오히려 코믹하게 다가오도록 만들어내는 솜씨가 결코 범상치 않다. 영화기술A0 · 대중적 재미B0 · 삶의 숙성A+.

감독이 진짜로 말하고픈 것과 그 영화적 표현기법과 숨겨진 상징을 일반사람들이 보아내기는 힘들겠지만, 몸을 함부로 놀리지 않는 나탈리 포트만이 웬일인지 깔끔한 누드를 불쑥 보여주고, 바람둥이 막내가 여자를 집적대며 보여주는 순박함이 코믹하게 감칠 맛 나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양하고 이국적인 에피소드들에 깔린 은근한 코믹장면들이 풋웃음을 준다. 기차 칸막이로 출연자들의 다양한 군상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장면은 참신했고, 무겁고 고급스런 가방과 별 것도 아닌 공작새털에 기대어 소망을 비는 모습이 갖는 상징성을 다양하게 생각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센티멘탈하게 우울한 지성미를 보여주던 애드리언 브로디가 쫀쫀하게 망가지는 연기도 새롭다.( [피아니스] [킹콩]에서 주인공. 그의 가냘픈 분위기나 옷맵시에 그토록 다부지게 다져진 근육이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놀랬다. ) 첫 장면에 쫙 빠진 맵시가 나면서도 다부지게 당찬 개성을 보여주는 나탈리 포트만이 왠지 찌질하고 꼬질꼬질해 보이는 막내와 놀아나는 게 처음엔 어색해서 잡친 기분이 들었는데, 영화가 마무리될 즈음엔 막내의 캐릭터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려고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가상적으로 설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오바했나?


이 영화는 인도여행을 소재로 하여, 다른 문화권을 얕잡아 보는 유럽인들의 뒤틀린 ‘오리엔탈리즘’을 비꼬며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대화’를 말하고 싶어한다. 서양사람들이 다른 문화권을 얕잡아 보는 모습을 실제로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학문이나 종교 또는 영화나 소설에는 그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도 있고 암암리에 뿌리 깊이 박힌 경우도 있다. 서양문명이 왜 그러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서양문명은 그 뿌리에서 이미 병들어 있다. 그래서 난 서양문명 자체가 출발점에서 이미 잘못 되어있다고 보고, 서양문명 자체를 총체적으로 불신한다.( 그렇다고 동양문명이 더 옳다거나 더 좋다든지 또는 이젠 동양문명이 주도권을 잡아야 된다는 뜻이 아니다. 동양문명도 그 뿌리에 잘못이 있고 문제점이 있다. ) 20세기 중반이후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그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성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내 보기엔 그마저도 ‘자기들 스스로 가둔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자학적인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어 보인다.

이 영화가 뉴욕영화제의 개막작이나 런던영화제의 폐막작으로 각광을 받는 것은, 서양의 예술계를 포스트모더니즘이 휩쓸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양영화제에서 높이 평가받는 이른바 ‘예술영화’는 일반관객이 다가가기 힘든 이상야릇한 영화이거나 무겁고 어려운 영화임에 반해서, 이 영화는 그 연출이 약간 낯설기는 하지만 그나마 무겁거나 어둡지 않고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고 코믹하기도 해서 일반관객이 별 부담도 없고 재미도 느낄 수 있겠다 싶어서 일게다. 그렇다고 이 영화의 작품성이 낮은 것도 아니다. 공작깃털의 상징성을 너무 드러내어 강조하는 게 군더더기 같기도 하고, 어머니와의 만남에서 보여주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지 않아서 마지막 마무리가 좀 허전하다는 서운한 점이 있긴 하지만, 서양의 잘못된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반성도 깊고 삶의 숙성이 매우 높으면서도 그걸 은유적으로 표현해 내는 솜씨가 매우 훌륭하다. 높은 작품성에 이 정도의 대중적 재미를 담고 있다는 게 오히려 더욱 훌륭하다.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Wes Anderson 감독. 그의 영화를 모두 다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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