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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즐거운 인생], '우울한 인생'들에게 부친 위문편지
김영주 2007/09/23 18:54    


‘웰메이드well-maid 작품’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난 ‘좋은 작품’이란 말과 구별해서 쓴다. 비록 영화 만드는 기술에서 ‘웰메이드 작품’일지라도, 예술적 감흥이 깊지 않으면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난 웰메이드하는 재능을 외공外功이라고 부르고, 삶을 통찰해 내는 예술적 감흥을 내공內功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난 웰메이드라는 말을, 촬영 음악 음향 미술 조명 의상 그래픽 소품 편집 등과 같은 영화 만드는 기술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예술적 감흥은 시나리오 · 그 대사의 리얼러티 · 배우들의 표정연기 그리고 여기에 영상 · 음악 · 미술이 얼마나 감칠 맛나게 깊은 숙성을 담아냈느냐에 따른다. 그 안목은 세상만물과 세상만사에 얽힌 ‘삶의 깊이’에서 비롯되기에, 사람마다 색깔도 다르고 깊이도 다르다. 그 색깔의 다름을 함부로 좋다 나쁘다고 말하기 어렵고, 그 깊이의 다름을 함부로 가늠하여 다툼을 벌이기도 어렵다. 자기 색깔에 따라,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찾아다니면서, 긴 세월을 두고 ‘열린 자기’의 개성과 깊이를 다듬고 숙성시켜 갈 따름이다.

지난 5년간 영화관객수를 기준으로 학점을 매겨보면, 1000만 명 이상 : A+ · 700~1000만 명 : A0 · 400~700만 : B+ · 200~400만 명 : B0 · 100~200만 명 : C+ · 50~100만 명 : C0 · 20~50만 명 : D+ · 5~20만 명 : D0 · 0~5만 명 : F쯤으로 보인다. 영화관객수는 일반사람들의 호기심이나 재미에 의한 대중성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대중성의 눈높이는 그 사회의 시대상이나 문화적 품격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다. 그 사회의 문화적 품격이, 높으면 외공과 내공이 높은 영화에 관객이 모이고, 낮으면 외공과 내공이 낮은 영화에 관객이 모인다. 내 눈으로 보기엔, 우리 관객은 외공이 C+이면서 내공이 C0인 영화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외공이 C+와 B0인 경우는 외공이 좋은 영화라는 걸 알아보는데, 외공이 B+이상인 경우에 수준의 높낮이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거꾸로 낮추어 보는 것 같다. 내공은, B+를 넘어서면 오히려 해롭고, B0는 위태롭고, C+는 그 영화의 행운과 불운에 따라 다르고, C0는 무난하다. 그래서 내공이 C0이면서 외공이 C+이거나 B0쯤 되어야 히트칠 가능성을 갖게 된다. 여기에 대중성이 A학점이나 B학점이 되면, 대체로 500만 명쯤 관객을 모으게 된다. 또 여기에 영화의 그 어떤 포인트가 관객을 사로잡으면 800만 명을 넘긴다. 그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은, 감독의 대중적 역량이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행운의 여신이 돌보심으로 보인다. 영화 홍보마케팅은 중심역할을 하지 못하고, 영화 자체에 대중성이 힘을 타서 입소문이 돌아야 홍보마케팅도 잘 먹혀든다. 800만 명을 넘어선 숫자는 영화팬이라고 하기 어렵다.

*****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외공과 내공의 학점을 매겨 보면, [황산벌]은 외공=C0 내공=C+이었고, [왕의 남자]는 외공=C+ 내공=C+이었고, [라디오 스타]는 외공=B0 내공=B+이었다. 여기에 외공이나 내공과는 상관없이 일반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어 할 대중성을 가늠해 보면, [황산벌]은 B0 · [왕의 남자]은 A0 · [라디오 스타]는 C+쯤이었다. [왕의 남자]는 외공과 내공이 제법 괜찮게 만든 영화이면서 대중성이 아주 높아서 10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라디오 스타]는 외공과 내공이 좋았는데 대중성이 낮아서 200~300만 명에 그치고 말았다. [라디오 스타]의 외공과 내공의 기대를 안고서, 그의 새로운 영화 [즐거운 인생]을 곧장 찾아갔다. 외공=C0 · 내공=C+에 지나지 않았다. 대중성도 C0나 C+쯤밖에 되지 않아서, 앞 영화에서 얻은 인기와 추석시즌에 상영한 것에, 도움을 많이 받으면 250만 명을 모을 수 있겠고, 도움을 적게 받으면 150만 명을 모을 수 있겠고, 도움을 받지 못하면 100만 명쯤에 그칠 것 같다. 이래저래 100~150만 명쯤 되지 않을까?

그는 [라디오 스타]와 비슷하게, 이 세상에 그늘진 삶의 씁쓸한 모습에 따뜻한 눈길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마흔 중반에 세상살이 구석지로 몰려 비틀거리는 세 남자. 마누라의 월급에 기대어 대책없이 세월만 낚는 만년백수, 마누라와 아이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학비와 생활비 벌어 대느라 아등바등하는 중고차사장,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택배업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걸 집에 숨기고 근근이 버티는 주야헐떡남. 이런 ‘개 같은 인생’이 쪽팔려서 옆구리로 터져 나와, 샛푸른 대학시절의 별 볼 일 없었던 ‘락밴드 활화산’을 돌이켜 보려는 몸부림이 가엾지만 귀엽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귀여움이 순박하게 풋풋해서 흐뭇하면서도, 저런 심성으론 이 엄혹하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치이고 자빠지고 깨질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이 오버랩되면서 명치끝에 씁쓸한 애잔함이 아려온다. [라디오 스타]에서 서민의 리얼러티가 상당히 좋았지만, 안성기와 박중훈의 모습에서 여기저기 서운했다. 이 영화에선 삶의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지고 상투적이고 도식적이다. 이런 이야긴, 그 명치끝에 아려오는 씁쓸함을 잘 그려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엔 그 껍질만 보여주고 만다. 그들의 슬픔이 겉돌았다.

그렇다고 별 볼 일 없는 영화는 아니다. 세 남자의 연기력이 좋다. 정진영은 연기가 항상 괜찮으면서도 항상 조금 서운하다. 중고차사장의 김상호 연기는 아주 좋았다. 장근석이라는 젊은이는 상당히 돋보였다. 그가 KBS드라마 [황진이]에선 그저 꽃미남 마스크 하나로만 기억했는데, 여기에선 반항아로 돌변하여 냉소어린 싸늘한 표정에 미묘한 내면심리를 비쳐내는 연기가 참 좋았다. 노래솜씨도 상당해서 B0쯤은 되어 보여서 가수를 해도 될 법하다. 얼굴로 한 목 먹고 들어가면, 인기가수가 될 수도 있겠다. 이준익 감독은 락음악에 나름대로 평범치 않은 사연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감성에 들어맞지는 않지만, [라디오 스타]에서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음악을 소재로 엮어가는 솜씨가 그 나름의 안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라디오 스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도 락음악이 미국 락음악의 본 모습을 잃고 우리나라에서 변형된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제대로 살려내지는 못하고 있어 보인다. 그가 우리 나름의 ‘독특한 센티멘탈리즘’을 예민하게 의식하여, 마지막 노래장면에서 ‘한동안 뜸했었지’를 먼저 불러서 관중의 흥을 후끈 달구어 놓은 다음에, 이 영화의 주제가인 ‘즐거운 인생’으로 마무리 지었더라면 엔딩장면에 감동이 훨씬 컸을 것이다. ‘한동안 뜸했었지’가 ‘즐거운 인생’보다 이 영화의 분위기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대체로 잘 만드는 편이기는 하지만, 아직 서운한 점이 많다. 이번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삶의 리얼러티’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해서 내공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 다음 영화를 기다린다.


독자 의견 목록
1 . 후훗 아침이슬 2007-10-02 / 22:49
2 . ^.^;; 김영주 2007-10-04 /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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