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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황진이]엔 황진이가 없다!
김영주 2007/06/15 23:09    

“16세기에 살았던 21세기의 여인!” 그렇다! 여자가 그 시대에 그런 삶을 살았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소나무처럼 늘 푸르고 대쪽처럼 꿋꿋하게 지켜내야 하는 선비의 지조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던 시대에, 그들을 치맛자락에 넘어뜨리고 그들과 시구를 겨룰 수 있는 여인. 유교의 숨 막히게 엄혹한 덕목을 점점 더 깊이 느껴갈수록, 그녀의 몸부림이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그녀의 미모와 재능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 치열함에 저절로 고개 숙여진다.

TV드라마 [황진이]는 그녀의 미모와 재능에 초점을 두었고, 영화 [황진이]는 그녀의 치열한 삶에 초점을 두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화사하고 요염했고, 영화에서는 무겁고 비장했다. 드라마는 화사한 색감과 요란스런 비주얼이 지나쳐서 경박하고 간질거리며 말초적이었으며, 영화는 무거운 조명과 색감이 지나치게 칙칙하고 답답했고 괜한 허세에 눌려 스스로 주저앉아버렸다.

장윤현 감독. [접속]이라는 영화로 혜성처럼 등장하였고 [텔 미 썸씽]으로 흥행감독 자리를 굳힌 그는, 운동권 영상단체인 ‘장산곶매’에서 [오! 꿈의 나라] [파업전야]를 공동연출한 캐리어를 가지고 있었다. 아! 그래서 유지태에게 임꺽정이나 홍길동 비슷한 이미지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영화에 가득 채워 넣었구나! 겉모습에는 시대의 저항녀 황진이가 차지하고 있지만 속모습에는 시대의 저항남 홍길동이 도사리고 있다. 이 두 저항녀와 저항남을, 겉으로는 황진이의 사랑으로 엮어내어 관객을 끌어들이고, 속으로는 시대의 저항을 담아내어 이 시대에 저항하고 싶었던 것이다. 색감과 조명을 무겁고 어둡게 잡아간 것도, 괜한 허세를 부리며 똥폼을 잡아 보이는 것도, 그래서였겠다. [황진이]엔 일반관객이 기대했던 황진이의 모습이 없는 셈이다. “황진이가 뭐 이래!”

감독은 나름대로 상당한 노림수를 두고 이 영화를 만든 것 같다. 그는 [스캔들]처럼 귀족적인 퇴폐성에 저항하고, [음란서생]처럼 저열한 음담패설에 저항하고, [왕의 남자]처럼 어느 광대의 개인적인 한풀이에 저항한 것 같다. 그래서 황진이에게 조선시대 양반세력의 위선을 꼬집게 하고, 유지태에게 조선시대의 왕조체제에 박치기하게 하였다. 그는 내용으로도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었고, 대중성과 작품성으로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네 마리 토끼’를 모두 놓쳤다.

드라마의 하지원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지만, 단정하고 단단하고 도도하게 예쁘다. 딱 이거 하나 볼만하다. 드라마는 배경음악을 서양음악만으로 채워서 많이 거슬렸는데, 영화는 우리 전통악기를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 그나마 괜찮았다. 나머진 너무나 어수룩하다. 시나리오가 무리하게 억지를 부리고, 음향이 억세게 귀청을 두들겨 부담스러웠고, 편집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미숙하여 그 이음새 떨림이 여러 번 잡혀 들어왔고 장면 전환이 갑작스레 턱턱 걸려들었다.( 요 10여년 사이에 음향과 편집이 그토록 미숙한 영화를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 드라마든 영화든, 소품들은 일본식 미감과 현대식 양념이 많이 뒤섞인 사이비 조선풍물과 사이비 조선미감이다. 남자들과의 사랑 장면이, 드라마는 공중파이기에 노골적이기를 바랄 수 없지만, 영화에서는 노골적일 줄 알았는데 그녀가 우아하게 보이고 싶어선지 그 움츠림이 영화에 김빠질 정도로 여실했다. 남자의 관음증으로 실망한 게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로 실망했다.


송혜교가 왜 그러하는 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게 우아하고 싶으면 뭐 하러 영화엔 출연하나! 전도연 강혜정 김혜수 엄정화는 우아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과감하게 벗어버릴까? 글고 그 감독은 영화의 흐름에 김을 빼면서까지 송혜교 눈치나 살펴야 했을까? 감독이 소심했던지 송혜교가 프로의식이 부족했겠다. 게다가 유지태가 눈에다 힘만 주면서 그렇게 꾀죄죄해 보이는 건 처음이다. 눈빛도 표정도 눈썹도 수염도 머리칼도 옷매무새도. 액션은 카메라 뻥과 음향 뻥으로 한껏 과장되어 있다. 그녀가 기생이 되어가는 과정이 영화의 반쯤을 지루하게 잡아먹고, 벽계수와 서화담 이야기는 싱겁게 스쳐 지나가 버린다. 그 유명한 시귀 “靑山에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 저 滄海로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 明月이 空山에 가득할 제 쉬어간들 어떠하리!” 그리고 松都三絶이 그토록 허접스러워 보여서야 ... . 도무지 영화 안으로 빨려들지 않았다. 열정으로 몰입하질 못하니까, 냉랭 찝찝하게 영화를 관찰하게 되고, 마침내는 연달아 하품까지 나왔다.

감독은 의욕만 앞섰지,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으며, 영화 만드는 기술도 딸리고, 영화배우와 스텝들을 이끌어 밀고 가는 힘도 딸렸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선 스스로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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