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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천년학] 임권택 정일성님! 천년토록 아름다우시길 ... .
김영주 2007/04/28 15:49    

한복을 그림처럼 곱게 차려입은 오정해가 단연 돋보인다. [서편제]에서 그녀의 전통적 여인미에 반했다. 그녀가 진행했던 KBS FM1 ‘풍류마을’의 오랜 애청자였고, 판소리와 대중가요를 퓨전해서 만든 ‘사랑’이라는 그녀의 노래를 참 좋아한다. 나의 그런 열망을 하늘이 전달하여, 어떤 인연으로 직접 만나 악수까지 하게 되었다. 많이 두근거렸다. 자그마하고 어여쁘다. 섬세하게 뜯어보기엔 실례되기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어색했지만, 함께 한 그 5분이 참 행복했다.

영화에선 실례되지 않기에 눈에 힘을 쏟아 섬세하게 샅샅이 뜯어보았다. 한국 토종 미인의 가장 전형적인 아름다움이 반듯하게 오롯하다. [대장금]의 양미경도 전통적인 미인으로 빼어난데, 그녀보다 더 빼어나고 더욱 전형적으로 보였다. 숯검정 치맛자락에 받쳐 앉은 짙은 자주빛 저고리의 색감과 매무새, 동백기름 적신 참빗으로 가지런히 빚어 넘겨 쪽진 머릿결을 따라 동그마한 얼굴에 외씨 눈매를 단정하게 다잡고, 단아한 목선이 어여쁜 어깨선에 살짝 내려앉으며 가녀리게 흐르는 팔꿈치를 돌아서, 백옥 같은 섬섬옥수로 쥘부채를 단단히 매어잡고 살포시 받쳐 든 그녀. 가히 천상에서 내려앉은 조선여인이었다. 그녀가 이 이상 더 아름다울 순 없을 것 같다. 더 말하면 오바할 것 같다. 이쯤에서 멈추겠다.


그녀는 노래솜씨도 참 좋다. 그러나 기본 음색이 여리고, 몸통이 작아서인지 소리의 힘이 제대로 받쳐주질 못해 그리 단단하지 못해서, 판소리의 참맛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그녀의 천부적인 체질이 그러하니 어찌하리오. 대중가요와 퓨전을 하면 훨씬 잘 어울 것 같다. 그 어느 분야이든 자기의 개성을 잘 담아서 그 어떤 경지에 오르면 되는 거지, 거기에 무슨 우열이 있겠는가! ) 그렇지만 매화마을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그 꿈은 꾸어서 무얼 할꺼나.”는 그 장면에 무척이나 어울리기도 했지만, 그녀의 음색과 소리 스타일에 꼭 들어맞아서 그윽하게 사무쳐서 아려왔다. 희고운 저고리에 분홍빛 치마로 하얀 나비처럼 곱게 내려앉은 자태마저 그 노래에 실려, 그 나비가 꽃잎인 듯 그 꽃잎이 나비인 듯 날리며, 꿈이 깨어 또 꿈이요 깨인 꿈이 꿈같도다.


*****


임권택 감독은 우리의 전통문화에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60년대 70년대 한국영화 풍토로 보아, 그는 그나마 조금 괜찮은 감독이긴 하였지만, 뛰어나게 돋보이는 감독도 아니었다.( 나도 70년대 중반까진 영화를 얼렁뚱땅 보던 시절이라, 감독을 눈여겨보지 않았기에 확실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의 작품 캐리어를 나중에 보고 기억을 더듬어서 하는 말이다. ) 그러다가 80년대 초에 [만다라]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이런 탐미적 감각을 담아내었다는 것에 놀랐다. 임권택 감독과 정일성 촬영감독을 처음으로 머리에 새겨 넣었다. 그리곤 임권택과 정일성이라는 이름만으로 무조건 그의 영화를 보았다. [길소뜸] [티켓] [씨받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창]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그리고 이번 [천년학]까지.

그는 판소리 영화를 세 편이나 만들었다. 이미 [서편제] [춘향뎐]을 만들었고, 이번 100번째 작품도 [서편제]의 쌍둥이로 [천년학]을 만들었다. 판소리 맛을 제대로 알려면, 그 첫째가 전라도 사투리의 말맛을 잘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이 맛을 잘 알아야, 판소리가 얼마나 우리의 소중한 보물인지를 실감나게 알 수 있다. 전라도 음식과 더불어, 전라도 사람만이 제대로 알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다. 그가 전라도 사람이기에 아마 이 맛을 절감한 듯 하다. 그가 영화로 판소리와 국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에는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건 그렇지만 굳이 따져서 말하자면, 이 세 영화가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진짜 참맛을 제대로 살려낸 영화는 아니라는 점에서 서운하다. 마찬가지로 그가 우리 영화에서 이바지한 바를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걸 넉넉히 인정하면서도, 그리 높이 평가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씨받이]에서 그 불만이 싹터 올랐다. [춘향뎐] [취화선]을 이야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문화적 품격이 척박한 이 땅에서, 영화는 예술 축에도 끼어주지도 않았던 시절에, 유치한 반공영화 [증언]이나 만들던 감독이, 어느 날 [만다라]부터 [취화선]까지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냈기에, 그를 황무지에 피어난 '기적의 꽃'이라고 여긴다. ··· 정일성님이 잡아내는 화면은 참말로 대단하다. 그 장면들이 어찌나 지극히도 아름답던지, 그에게 저절로 숙연한 존경의 마음이 일어난다. ··· 그러나 우리 옛 것을 아름답게 그려내려는 '강박적인 의무감'에 사로잡혀, 의도적으로 아름답게 꾸며대는 억지가 보인다. 그래서 우리 산천의 풍경과 우리 조상의 삶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고 작심하고 달려들어 애를 쓴다. 마치 '관광 한국'을 선전하려는 홍보물 같다. 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의식하여 열등감으로 품은 오기가 으르릉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임권택에게서 뿐만 아니라, 우리 전통예술을 살리려는 사람들 거의 모두에게서 이런 느낌이 온다. 열등감이 박힌 강박증. 그래서 뭔가를 기필코 보여주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지나치게 탱천하다. ) ··· "


이런 서운함에도 그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그려낸 우리 산천의 영상에 저며 드는 감동을 놓칠 수가 없어서 그의 영화를 빼지 않고 찾아보았다. 그런데 지난 번 [하류 인생]에선 많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 신중현의 ‘님은 먼 곳에’를 맛깔나고 참신하게 편곡해서 다양한 모습으로 들려 준 점이 참 좋긴 하였지만. ) [씨받이] [개벽] [태백산맥]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그가 또 오바페이스해서 김이 빠진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천년학]에선 기운이 더욱 확 빠진 느낌이다.


임권택도 늙고 정일성도 늙은 걸까? 아니면 제작 출발선에서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었다는데, 그래서 돈이 부족했던 걸까? 그의 작품이 여기저기 빵꾸나고 고지식해 보이며 60년대 70년대의 영화문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점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면에서 시들해 보이는 건 처음이다. ‘판소리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소리들 하나하나가 매끄럽게 이어가질 못하고 뚝뚝 부러지며 건성건성 건너뛰는 것처럼 따로따로 놀고 있다. 퓨전음악가 양방언이 음악감독을 맡았다는데, 그가 어디에 있는지 첫 음악과 엔딩타이틀음악 말고는 도통 보이질 않는다.( 난 개인적으로 양방언의 퓨전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귀엔 그의 퓨전이 어설프게 헛돌면서 괜한 똥폼이 섞여 들린다. 김수철의 음악이 참 실력있고 매우 훌륭한데, 왜 그와 함께 작업하지 않았을까? ) 매화마을 장면을 비롯해서 괜찮은 장면이 몇 개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영상에 힘과 정성이 부족했다. 이 영화에 대한 각오와 다짐이 평범치 않았을텐데, 왜 가장 힘빠진 작품이 되고 말았을까? 안타깝고 안타깝다.


영상미마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이젠 그의 작품에 아쉬운 작별인사를 해야 할 때가 되었을까? 그가 우리 영화에 남긴 커다란 발자취 그리고 내가 그의 작품에서 나누었던 감동과 서운함이 그 긴 세월 속에 묵혀낸 인간적인 정리로 보자면, 그럴 순 없다. 장예모 감독에게 느낀 실망감이나 폴 버호벤 감독에게 느낀 안타까움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와 정일성님이 다시 기운을 차려서, 좋은 작품으로 그들의 남은 인생에 아름다운 마무리가 이어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요즘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모습이 점점 보기 드물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독자 의견 목록
1 . 늙기도 서러운데 아름다우라니... 아름다운 늙은이 2007-04-30 / 22:04
2 . 글쎄요.. 몽타쥬 2007-05-01 / 01:20
3 . 목포촌놈 영화 관람기 소나기 2007-05-02 / 10:30
4 . 아니, 세 분씩이나? 신록이 꽃보다 더 예쁘네요. ^.^ 김영주 2007-05-02 / 17:45
5 . 영감이 눈감을때 불러줬던 창이 떠오릅니다. 소나기 2007-05-02 / 18:51
6 . 동감 덕암 2007-05-03 /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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