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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페인티드 베일]에 가려진 사랑의 미로, 그리고 오리엔탈리즘
김영주 2007/04/01 12:11    

킹콩의 연인, 나오미 왓츠. [킹콩]에서 인형처럼 예쁘기만 하고 매력 포인트가 선뜻 잡혀오지 않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숨겨진 매력이 점점 우러나오더니, 마침내는 참 괜찮은 배우로 다가왔다. 호기심이 있던 차에, 그녀가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영화로 다시 나타났다. 인터넷 영화마당에 들어가 보니,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소설이라는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의 작가인 ‘서머셋 모옴’의 1930년쯤 작품 [인생의 베일]을 각색하였다고 하며, 컨 쿠란이라 낯선 감독의 캐리어를 살펴보니 상당히 진중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예고편을 들여다보니, 화면감각도 상당히 깊어보였고, 무엇보다도 그 배경이 되는 1925년 중국의 계림과 장가계를 섞어놓은 듯한 황홀한 풍광이 날 저절로 잡아 당겼다. 요즘 인기 1위를 달리는 [300]을 옛 스파르타 전쟁와 지금 이라크 전쟁 그리고 타란티노의 [씬 시티]와 프랑크 밀러의 만화를 함께 엮어 이야기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페인티드 베일]이 요즘 영화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랑영화’라는 매력을 지나쳐버리기 아까웠다.

*****

사랑! 이 세상에 얼마나 흔해빠진 낱말인가! 온 세상이 돈 돈 돈으로 범벅인 것만큼이나, 온 세상이 사랑 사랑 사랑으로 넘치고 넘쳐흐른다. 존경해 마지않는 한문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길 “난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말이 뭔 말인지 잘 모르것데~!” 그 분은 평생을 한학에만 묻혀 사신 분이다. 아직도 양복을 어색해서 입지 못할 정도이다. 상투를 틀고 계시지는 않지만, 항상 옛 한복을 입고 계신다. 한학자입네 허세를 부리느라 그러시는 게 결코 아니다. 그걸 여실하게 증명하는 ‘스승의 날, 양복사건’이 있다. 그 분은 영락없이 이 양복사건마냥 지금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여간 어색해 하지 않으신다.( 절로 빠끔히 흘러나오는 잔잔한 풋웃음^.^;;을 참기 어려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지만, 접어두고 ··· ) 그건 문화코드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 수컷과 암컷의 사랑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문화의 색깔이 담겨있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사랑의 색깔은, 서양의 근대문명의 색깔에서 비롯되어서 미국문화의 색깔로 짙게 물든 ‘달콤한 사랑’이다. 우리가 만나는 그 수많은 시나 소설, 드라마나 영화, 그리고 노래나 광고 ··· 이 모든 것에 온통 사랑이라는 말로 넘친다. 요즘엔 이 달콤한 사랑에서 ‘화끈한 사랑’까지 섞여 들어오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세상에서는 이렇게 ‘달콤 화끈한 사랑’을 보여주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는 걸로 오해 받는다. 지금까지 난 이런 사랑에 많이 어색해 했고 버벅거리고 헛발질 했다. 진도가 얼마쯤 나가다가, 꼭 중요한 순간에 어리버리해지고 비틀거리고 핸드링하고 똥볼 차버린다. “아휴, 나 땜에 내가 미쳐!!!” 그 중요한 순간들을 달콤하고 매끈하게 처리할 줄만 알았드라믄, 아마 난 지금 이렇게 컴퓨터 앞에서 요런 글이나 끄적끄적거림서 살지 않을 꺼다! 아마 캐더린 제타존스 남편이나 비욘세의 애인쯤은 되지 않았을까? 안젤리나 졸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게다. 아 참! 영어가 받쳐주질 못하지~ ··· . 끌끌 -_-;;

이 영화는 그 흔하고 뻔한 사랑이야기하고는 많이 다르다. 서머셋 모옴의 내공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들이 어찌 어찌 결혼은 하게 되었지만, 사랑을 이루어가는 첫 스텝부터 어색하게 삐거덕거린다. 나오미 왓츠가 이 남자의 속 깊이 담긴 진정성을 미처 알아보지 못한 채, 겉에 흐르는 무덤덤한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바람끼 짙은 남자를 참사랑으로 알고 빠져든다.( 이걸 빗대어 영화제목을 ‘Painted Veil’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 그러나 이런 저런 고난과 역경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알면서 마침내 그의 ‘속 깊은 사랑’에 감동하게 된다. “우린 서로에게 없는 것만 서로 원했어요!” 스토리 흐름도 괜찮고 배우들의 연기도 괜찮다. 화면감각과 빛감의 톤은 참 좋았다. 그러나 바람끼 남자의 생김새가, 기생오래비처럼 바람끼 축축한 달콤함이 전혀 보이지 않고 음흉한 모략가 같은 분위기가 짙어서 리얼러티가 많이 떨어졌다. 주인공 얼굴도 좀더 건실하면서도 숨겨진 고집이 있어 보였으면 훨씬 더 좋았을 법하다. 나오미 왓츠가 [킹콩]에서와는 달리, 좀 삭아 보이길레 나이를 알아보았더니, 무려 마흔 살이었다. 우와! 마흔의 나이에 저 정도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 동안 별 볼 일 없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각광을 받았단다.


*****

이 영화가 유럽의 도시교외를 배경으로 했더라면, 엄청난 감동까진 아니었겠지만 제법 괜찮게 잔잔한 감흥이 있었겠다. 그런데 이 영화의 문제점은, 그 배경이 콜레라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중국의 깊은 산골마을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한 폭의 동양수묵화 풍경 속에서 처참하게 무너지는 마을을 더욱 추해 보이게 한다. 그 배경장소야 감독이 물색해서 잡았겠지만, 그 장소가 어떠하든 거기엔 문명이 자연의 야만을 이겨내고 새하얀 백인이 꾸질꾸질한 유색인종의 미개함을 계몽시킨다는 서양우월주의에 의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자기 집착Le affection이 숨겨져 있다.( E.Said의 [오리엔탈리즘] : 일반 사람들에겐 많이 딱딱하고 두껍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책이다. )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들이 모두 그렇다. 서양문명이 다른 문명권에게 저지른 거대한 침략적 폭행은 눈감아 버리고, 중국인들의 백인들을 향한 적대감만을 무지막지하게 들이댄다. 주인공들과 천주교 수녀들의 헌신을 돋보이게 일방적으로 강조하면서, 중국인들은 무력하거나 무지하며 비굴하게 일방적으로 그려낸다. 게다가 어느 백인이 중국 여자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서양남자들이 동양여자에게 응큼하게 품고 있는 인종멸시의 포르노그라피가 깃들어 있어 보였다. 서머셋 모옴 쯤 되는 품격 있는 서양의 지성인이 이러하니, 다른 서양인들의 머릿속은 어떠한 지 가히 한심스럽고 암담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암담한 것은,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일방적인 자기중심적 집착을 전혀 의식하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단박에 난 [시티 오브 조이]가 떠올랐고, [미션] [늑대와 함께 춤을]이 떠올랐다. 어찌 이 뿐이랴! [타잔]부터 시작해서 · · · [인디아나 존스] [라이언 킹] · · · 최근의 [킹콩] [아포칼립소]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으로 또는 암암리에 오리엔탈리즘이 담긴 영화는 많고 많다. 어찌 영화뿐이랴! 1500년대부터 시작된 그들의 팽창으로, 그들은 모든 것에서 우월하기에 생활도 개선해주고 정신도 깨우쳐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세상을 떵떵거리며 휩쓸고 다녔다. 우리나라도 50~100년 사이에 지금의 이런 생활모습 이런 사고방식에 푸욱 젖어 살게 되었다. 이젠 전혀 어색하지도 않으며, 더 제대로 닮지 못해서 안달인 세상이 되었다. 아니 오히려 한 술 더 뜨는 장면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걸 은혜롭게 생각하든 절망스레 생각하든,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보거나 놀이를 할 때에는, 차가운 머리로 냉철하게 분석하는 게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열정하게 몰입해야 합니다. 냉철한 분석은 그 놀이가 끝난 뒤 적어도 1시간 대체로 하루 이틀은 지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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