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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용의 창업과 경영


안식가(安食家)이야기와 창업
한규용 2006/09/15 14:59    

잡지사에 맛 집 관련 기사를 기고하는 분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5천원짜리 백반을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약간의 재미있는 오해가 있음을 발견하여 유쾌해하였다. 그것은 서로가 음식에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에 입맛이 까다로울 것이고 웬만한 식당에는 가지 않을 것 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대화를 나눠보니 직업은 직업일 뿐 음식에 대하여 둘 다 매우 편안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음식의 맛에 집착하여 미각을 충족시키는 것을 삶의 큰 기쁨으로 아는 미식가나 잘 골라 먹은 음식이 곧 보약이라며 건강 위주로 먹거리를 챙기는 웰빙족도 아니고 맛있는 음식에 집착하여 식탐을 일삼는 대식가, 편식가는 더더욱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는 사회 분위기상 어느 정도 까다로워 것은 사실일지라도 대다수 서민들까지 음식위에 군림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에 공감하며 즉석에서 안(安)식가라는 말을 만들었다.

쌀밥이면 감사했던 시절들을 아직 잊지 않았고, 일과 생활에 쫓겨서 사먹는 밥 이것저것 가릴 처지 아니며, 온가족이 외식할 때면 아이들 학원비가 같이 떠오르는 우리 이웃들의 음식관을 표현 할 딱한 말이 없었기에 한 번 만들어 보자고 한 것이 ‘편안할 안’자 안식가이다. 서로의 국에 밥알 튕기는 줄 모르고 웃으며 공감했던 안식가들은 이런 사람들 아닐까?

첫째,5대 미각 (달다, 짜다, 시다, 쓰다, 맵다) 외에는 ‘맛있다, 맛없다’ 만 존재한다.
엊그제 모임이 있어서 찾은 오리 구이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갓김치가 나왔는데 지금까지 중 최고였다. 같은 테이블의 일행들에게 그 김치 칭찬하면서 맛이 어떻다고 표현을 해주고 싶었지만 도대체 떠오르질 않는 것이다.
‘달콤 씁쓸하다? 새콤 씁쓸하다? 씁쓸하다는 말이 들어가면 쓰다는 느낌이 강한 말인데...’
그 순간 앞자리의 한 60대 초반 여자 일행의 표현이 귀에 꽂혔다.
“씀쓰~음하면서 맛있네..”
글로 쓰다 보니 그 느낌 전달이 어렵지만 그 억양이 정말 절묘하게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 분은 나이도 있고 평소에 음식을 다루다 보니 그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겠지만 우리 안식가들은 싱거우면 소금 넣고 쓰면 설탕 타는 것 말고는 평소에는 모든 게 그냥 맛있다와 맛없다 이다.
‘달콤 짭짜름하다, 새콤달콤하다, 매콤한 국물이 시원하다’ 같은 표현을 쓴 기억도 오래인데
‘맛이 깊다, 풍부하다, 입안에서 겉 돈다’ 같은 추상적 표현은 물론이다.
하기야 몇 십 년 째 술을 마셔도 하이트, 오비, 카스를 구별 못하고 참이슬, 처음처럼 대신에 투명한 것은 모두 소주일 뿐이니 말 다한 것이다.

둘째,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지만 그렇다고 안 먹는 것도 거의 없다.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머뭇대다가 내가 파는 음식이름을 대며 넘어가지만 딱히 생각나는 음식은 없다. 김치찌개 정도인데 이거 안 좋아하는 한국 사람은 없을 것 같고.. 직업상 여러 음식을 접하지만 아무리 맛있어도 몇 번 먹으면 그저 그래 진다. 하지만 보신탕이든, 산채로 집어 입어 넣는 빙어회든, 메뚜기든 남들 먹는 것치고 못 먹는 것도 없다. 고양이나 병아리 째 든 계란같이 엽기적인 것은 빼고 말이다.


셋째, 음식 자체의 맛 보다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올 여름 속초로 휴가를 가면서 대포항에서 회 먹을 생각에 설레 했더니 누군가 거기서 파는 회들 대부분이 서해안 양식장에서 배송된 거니 비싼 돈 주고 먹어봤자 란다.
물론 자연산이 아니었다니 좀 속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사실 입안에서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을 난 아직 못 만났다. 대신 오랜만에 보는 밤하늘의 별빛들이 검푸른 바다위에 부서지고 넘실대는 파도가 금방이라도 내 무릎을 적실 것 같은 방파제 위에서 소주 한잔에 도톰하게 저민 회 한 점을 초장에 적셔먹는 그 맛이 회사 앞에서 동료들과 업무 얘기로 침 튀기며 핏대 올리다가 바지에 초장 묻는 지도 모르며 먹는 회보다 맛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음식이 맛있다고 느낄 때는 그 자체의 맛이 아니라 분위기, 동반자등이 어우러져 식감이 좋아서 일 때도 많은 법. 안식가는 그 상황에 충실하다.
내가 그리는 대포항의 조연으로서 회는 양식이든 자연산이든 가치있는 것이다.
혼례를 앞 둔 양가 부모 상견례 자리에 몇 번 가봤지만 어려운 자리인 만큼 비싼 음식점인데도 맛있었던 기억으로 남는 곳이 별로 없다.

넷째, 주는 대로 감사히 먹는다.
꼭꼭 씹어서 안 맛있는 음식은 없는 법이다.
군 시절의 여름날, 배추마저 귀할 무렵 멀건 된장국에 양배추 김치와 나물 몇 점이 따라 나온 식판도 게걸스럽게 비웠는데 각종 집안일에 힘든 와이프나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서의 불평은 복에 겨운 거다. 스스로 차려 먹는 것은 어떠냐고? 그 귀찮음 무릅쓰고 차릴 때는 보통 배고프지 않았을 텐데 뭐든 맛 없겠는가?

안식가는 바로 대다수 서민들이다.
각 매스컴마다 넘쳐나는 음식 얘기들보면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벌 만큼 벌어서 매 끼 맛있는 음식 찾으러 다닐 만큼 한가하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음식과 관련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팔아야 할 메뉴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나 최신 유행을 타는 것이어야 차별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전문가들은 길어야 1~2년이라고 생각하는 요즈음의 막걸리 전문점 같은 것 말이다.
요즘 같은 끝을 알 수 없는 불황기의 창업은 바로 우리들 안식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게 얻고 시설하는데 큰 돈 투자했다가 실패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모험 대신에 대중적인 아이템으로 저렴한 창업하여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고 실패해도 내 인건비 손해 보는 선에서 끝 낼 수 있는 안전함을 택해야 한다.

오늘 부쩍 날이 서늘해져서 내 방에 불을 넣었는지 온기가 올라온다.
멋있지만 활활 타올랐다 사라지면 곧바로 싸늘한 재만 남는 벽난로 대신에 소탈하면서도 그 훈훈함이 오래가는 온돌 바닥에 피로를 잊는다.

독자 의견 목록
1 . 참으로... 아~~~ 2006-09-16 /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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