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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잔한 조중동과 매국노의 후손들과 일본군 장교의 딸
한 시민의 용기를 본받아야 할 메이져 신문과 정치인들
김희재 2005/09/07 01:33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지난 29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될 1차 명단을 발표하자 명단에 前 사주들이 포함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지면을 통해 선정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는 “보수 언론이 사실 관계를 왜곡해 편찬 사업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I

동아일보는 30일 <편협한 사관으로 유권해석…여론몰이 우려>라는 기사에서 “이번에 발표한 사람들 대부분의 구체적 친일 행적을 밝히지 않아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발표 문제점과 파장>이라는 해설 기사에서는 <열린우리 신기남-김희선 부친 제외> <정부서 예산 지원 받아 순수성 의구심> 등의 소제목을 뽑으며 의혹을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도 이날 1면 <장지연 선생도 친일?> 8면 <“과거사 정리” “정치적 편견”> 기사에서 명단 선정 기준과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4면에 <언론인 장지연도 포함 ‘논란’>이라는 기사 한 꼭지를 싣는 데 그쳤다. 그러나 조선일보도 신기남, 김희선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부친이 친일인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조선은 안병직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자유주의연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입장을 통해 친일인사 명단 발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그동안 보수 언론들이 과거사 청산의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 온 점을 미루어 볼 때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사실관계조차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조 사무총장은 “신기남 의원 부친이 1차 명단에 올라 있지 않은 것은 선정 기준으로 볼 때 2차 심의와 발표 대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 총장은 또 박 전 대통령이 명단에 포함된 것을 놓고 편찬 사업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 명단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은 연구소가 출범할 당시인 91년부터 얘기돼 왔었다. 또 편찬 사업이 구체화된 2001년에 박근혜씨는 한나라당 대표도 아니었다”고 일축했다.

‘국책사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2002년 국회 교육위에서 통과된 예산은 ‘근현대 단체 인물 연구’로 편찬 사업과 직접 관련이 없다”며 “국민들이 지난해 모아준 7억5000만원의 성금으로 진행되는 사업을 국책사업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이 사업에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처럼 덧입혀 본질을 왜곡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편, 친일 명단에 전 사주가 포함된 데 대해 동아와 중앙은 “어떠한 입장도 밝힐 게 없다”고 말했다. 조선은 유일하게 “계초 방응모를 친일 인사로 규정한 것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회사의 공식 입장을 보도했다.


II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인민재판식 친일인사 선정과 발표를 중단하라”,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조선일보 보도내용)

한나라당 소속 법사위 의원인 김용균 의원은 그동안 친일인명사전 편찬이나 친일규명진상특별법 만드는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반대 해왔고 위원장의 직위를 이용해 계속 딴지를 걸어 왔다. 김용균 의원이 이렇게 친일역사 바로잡기에 방해를 하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오마이뉴스에서 취재한 결과 김용균 의원의 아버지가 일제시대 면서기를 지낸 친일파였다는 것이다.



III
[현재는 홍대부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이 윤 회원이 민족문제연구소에 보내온 이메일은 조부님이 일제관료(군수)로서 이번 친일인사 명단발표에 포함된 이후에 후손된 심정을 피력한 글이다]

친일인사 명단 발표(1차)에 즈음한 저의 고백
내 할아버지도 친일명단에...할아버지 짐 덜어드리려 연구소 가입

2005년 8월 29일, 경술국치 95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사로 우선 3,090명의 명단을 1차로 발표하였습니다. 자신과 조상의 허물이 크면 클수록 숨죽이고 이를 지켜보아야 할 마당에 언제나 만년 기득권세력인 그 후예들은 악의적인 왜곡을 하면서 그 선정과정과 발표의도에 먹칠을 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이에 본인은 자신의 조부님이 일제관료로서 이번 명단에 실린 것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자신의 소회를 피력하고자 합니다. 이번 명단에서 1,168번째에 위치한 관료부문의「이준식(李畯植)」님이 바로 저의 할아버지로서, 본인은 친일인명사전이 만들어진다면 ‘당연히’ 이렇게 그 성함이 기재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입장이었습니다.

1895년(을미년)에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서 출생하셨던 조부님은 증조모님의 독려로 일찍부터 대처로 나가 신문물에 눈을 뜨고자 하셨답니다. 장손인 제가 집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로는 조부님은 토지측량기사로 일제의 관료생활을 시작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제의 조선병합 후 대대적으로 시행했던 토지조사사업에 협력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조부님은 충북도 관내에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1930년대에 보은군의 내무과장을 거쳐 30년대 말에 음성군수 자리로 승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기는 당신의 40대 초반이시고, 중일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로 짐작이 됩니다. 40년대로 들어와서는 공직을 물러나셔서 경부선이 지나는 영동으로 내려오셔서 산금회사에 관여하시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고 들었습니다.

일제의 고등관료로서 군수자리에까지 오르셨으나 성품이 청렴결백하시고 의기와 긍휼심이 많으시어 이재(理財)와는 담을 쌓고 해방 무렵 은퇴 시에는 전답은커녕 집 한 채조차 갖고 계시지 못하셨습니다. 이러니 주변에서(누구보다도 맏며느리이신 제 어머니부터도) “군수까지 하신 양반이 얼마나 주변머리가 없었으면 집 한 칸 마련을 못했을까?”하는 푸념을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조부님의 장손으로서 해방 전해에 영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병약하셔서 경제적 능력이 별로 없으셨고, 큰 숙부님은 경도제대 재학 중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군 소위로서 해방을 맞으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호사를 하셨다면 숙부님 대학공부를 시킨 일일 것입니다만 숙부님도 조선경비대 창건당시 옛 동료들의 집요한 권유를 뿌리치고 교직으로 들어가셨습니다.(당시 일군 출신들이 건국초기 대거 군문에 들어가 ‘출세’를 했던 것에 대비되는군요)

할아버지께서는 해방 후 지난 과거를 버리시고 은둔자로 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온화한 성품으로 주변의 존경을 받으셨는데도 약주를 드신 날에는 옛날 사람들을 나무라는 주정을 늘어놓곤 하셨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입니다만 자유당 이승만 정권에 빌붙어 호가호위를 하는 옛 지인(충청 출신 군수급 관료)들을 나무라는 푸념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속죄는커녕 한 술 더 떠 독재자의 주구노릇을 한다는 꾸짖음 같았지요.

저는 1960년대 대학가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미력한대로 서울사대 쪽 투쟁을 거들었던 사람입니다. 졸업 후 소시민으로 돌아와 대가족의 가장으로서 식솔을 거닐다가 1990년대 말에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친일문제를 실천하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방대한 친일인명사전을 기획한다는 신문기사를 접하였습니다. 아, 바로 이곳이 내가 들어가 할아버지의 짐을 덜어드리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찼습니다.

일제치하에서 그들의 수족이 되는 고급관료가 되셨던 할아버님. 그렇지만 속으로는 창씨한 것이 싫어서 맏손자의 이름에서 돌림자를 빼어 성명 넉자를 벗겨주셨던 은유!(그래서 해방 후 외자인 제 이름이 셋에서 두 글자로 줄어든 것이지요). 해방 후에는 집 한 칸 없이 작은 숙부님이 입대하시자 산에 올라 손수 나무까지 해서 짊어지고 내려오셨던 그 곤궁스러운 고생!(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군수댁’ 영감이 낫질까지 한다고 혀를 찼겠습니까?)

이제 친일인명 사전의 편찬에 앞서 일차적으로 단순히 그에 수록될 명단만을 발표했을 뿐인데도 세상은 왜 이리도 소란스러운지? 붓을 놀려 살고 있는 소위 ‘조․중․동’을 필두로 하여 입에 개 거품을 물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속죄하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새삼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비록 보잘것없는 일개 무명교사일망정 내 자신부터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으로서 이런 어두운 과거를 규명하고 그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 전폭적인 성원을 보냅니다.

외세에 의한 뼈아픈 분단을 안고 출발한 민족의 해방이 진정한 해방일리 없습니다. 교활한 친일파의 후예들은 이제 한술 더 떠 친미도 아닌 숭미파가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기본과제는 사대주의의 척결과 민족정기의 확립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 세기 전의 그 풍전등화 같던 시대가 되풀이되고 있는 듯한 오늘날 우리는 진정 스스로가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새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 참으로 거북한 말씀을 첨부합니다. 저희 일가 중에는 그때(그 좋았던 시절에) 저희 조부님이 ‘상식대로만’ 재산관리(?)를 했더라도 해방 후 그토록 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며 저희(돌아가신 조부님을 지칭하는 의미겠죠)를 딱하게 생각하는 어른들도 많았습니다. 더군다나 제 조부님이 해방 후에 일제가 지급하던 연금마저 받지 못하게 되어 참 안타깝게 되었다는 말에는(해방이 오지 않았어야?) 그저 두 눈, 두 귀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말 가까운 주변 하나 하나에까지 파고든 일제잔재를 청산한다는 것이 이만큼이나 어려운 일일까요?

-친일인사 명단 발표(1차) 며칠 후에 아픈 마음으로 자신을 고백합니다-

<주> 이 글은 언론 발표내용과 본인에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보내온 메일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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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이윤회원님에게 박수라도 치고싶은 심정입니다, 김종숙 2005-10-01 / 14:02
2 . 삼성바이오로직스결과 삼성바이오로직스결과 2018-12-06 /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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