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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보의 한계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결단하라는 진보
김동민 2007/08/14 03:49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전주공장위원회가 7월13일 대둔산 청소년수련원에서 가진 수련회에서 '언론과 노동자'란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금속노조가 한미 FTA 완전무효를 내걸고 파업을 벌이려던 참이었다. 금속노조는 노무현 정권 퇴진투쟁을 슬로건으로 제기해놓은 상태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금속노조가 역점을 두고 투쟁해야 할 대상은 정부가 아니라 <조선> <중앙> <동아> 등 수구신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극히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조중동 프레임'에서 해방된 이는 없다. 바로 그렇게 '조중동 프레임'에 갖힌 인사들이 한미 FTA 구상을 만들었고, 조중동은 밀어부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이 높게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이런 분위기의 정권 후반기에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다. 이 지형에서 진보진영의 전략과 전술은 현명하고 치밀해야 한다. 과녁을 어느 곳에 맞추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비단 이 사안만이 아니다. 조중동이 국민여론을 호도하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이 분위기를 무릅쓰고 소신을 펼 수 있는 관료는 없다. 관료들에게 진보진영의 목소리는 전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진보진영의 반응도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있다. 회담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환영하면서도 기대치는 다소 상식을 벗어나 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한국청년단체협의회, 국보법폐지국민연대 등에서 반미 차원의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NLL 등을 주요 의제로 다룰 것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이를테면 실천연대는 '남북정상회담과 하반기 정세전망 그리고 진보진영의 과제'란 논평에서 "우리 민족대 미국의 대결전은 미군철수전선에 최종적으로 판가름된다"면서 "전체 진보세력은 미군철수투쟁 중심주의를 확고히 견지하면서··· 대선국면에서 범국민적 미군철수, 한미동맹해체 투쟁을 조직 전개하여 우리 민족 대 미국의 최후 대결전을 완전한 승리로 장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잘못된 전략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동북아정세는 반미운동이 고조됐던 1980년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고 북한이 곤궁한 처지에 빠져드는 사이에 중국은 급격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미소대결 구도가 중미대결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의 6·15선언 이후에는 한반도문제에서 남한의 발언권이 증대하고 있다. 북한이 남한 정부를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기 시작했으며, 2·13합의가 그 백미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마당에 과거의 주장만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양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미 구호는 평양에서도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북한의 희망은 미국과의 선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지, "우리 민족 대 미국의 최후 대결전을 완전한 승리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다. 통일운동단체가 이 정세를 읽지 못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런 주장은 수구세력에게 공격의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조선>은 8월 13일자 기사 '남북정상회담 발표 후 좌파·진보 성향 사이트에선···'에서 위 실천연대의 주장과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논평 중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눈치 보지 말고 최대 걸림돌인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문제에 대해 결단해야 한다"는 부분 등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평소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친북단체들"의 "선동·주장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구논객 김대중도 <조선> 같은 날자 칼럼 '왜들 평양에 못가서 안달인가'에서 "이번에도 남북의 평양회담은 온 국민이 납득하고 성원할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다. 우선 이 회담은 형식은 노무현·김정일의 대면이지만 실은 김정일과 남쪽 좌파간의 회담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개혁·진보진영의 행보를 모두 좌파로 매도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되는 시기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이런 기사는 독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중앙> <동아>와 더불어 신문시장의 75%를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공세는 일을 그르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사이비언론들과 한나라당은 핵 폐기를 주요 의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미간 의제로 민족의제를 희석시켜 정상회담의 의미를 퇴색시키려는 의도다.

따라서 통일운동단체들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강조하기보다는 반통인 수구세력의 음모를 분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번 회담의 주 의제는 경제협력과 더불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될 것이다. 평화체제 구축에서 미군철수는 큰 변수가 아니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북한이 중소대립 국면에서 등거리외교를 폈듯이 중미대립 국면에서 어느 한편에 치우치거나 대립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북아정세의 변화나 대중의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경직된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수구세력, 그 중에서도 수구신문들의 영향력을 차단시키는 투쟁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는 성명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수구냉전세력들, "반통일세력들의 음해와 정략적인 태도를 맹렬히 비난하며,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이들의 만행에 우리는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투쟁 대상에 수구신문들이 포함되었는지 의문이고, 무슨 강력한 프로그램을 갖고 이런 의지를 천명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선언은 선언 자체로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는 통일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에서 진보의 목적은 성취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한민국 진보의 한계는 주적이라 할 수 있는 수구신문들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주장은 최소화하고 <조중동>에 대한 투쟁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가동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평화통일의 첩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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