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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논리로 지역의 권위에 도전한다
말, 인터넷, 권위에 대한 단상…익명성은 ‘말할 권리와 방식’을 독점하고 있는 ‘지역의 권위’들에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일 터이다.
박관서/시인 2003/04/19 19:33    

요즈음엔 말들이 참 많다. 하기는 어찌 요즈음 뿐이랴. 인간 역사가 시작되면서 말은 인간문화의 중심이었다.

말은 참 평등하다. 누구나 말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은 인간을 억압하여 불평등과 차별을 일삼으려는 권력이나 부당한 권위와는 항상 대립각을 세워왔다. 따라서,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이나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비롯하여 최근의 군사독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당한 권력들은 말을 죽이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그리하여 핍박받는 민중들이 오직 말을 하고싶었으면 ‘말’이라는 잡지까지 생겼겠는가. 따라서 요즘 우리 사회에 말들이 많이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이제 말이 제 기능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무슨 게이트니, 비리니, 지역감정이니 하는 지저분한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해도, 말 자체가 그처럼 활발히 돌아다니면서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고, 또 이를 차츰차츰 말을 통하여 풀어나간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바로 민주주의의 요체가 말의 해방에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지역에서의 말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 가를 돌아보는 일은 참혹하다.
표준어, 또는 표준말이라는 게 있다. 학교 현장을 비롯한 곳곳에서는 지금도 엄혹하게 준수되고 교수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지금은 많이 완화된 “서울의 중류계급이 사용하는 운운” 따위의 전근대적인 말의 지배방식이 지금도 우리 지역에선 횡행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음습한 내면의 그늘을 걷어내지 못한 채 다양한 말의 감옥에서 복역하고 있는 것이다.우리 지역에서 일반 시민이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는 통로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는 일은 좀 더 고통스럽다.
얼마 전에, 그나마 소수의 의견이라도 제법 활발히 개진되어 지역사회의 의제들이 형성되곤 하던 목포시청 게시판마저 지금은 거의 반쯤은 닫힌 채, 실명제라는 이름으로 겨우 모임 홍보방이나 개인 민원들이 조심스레 올라오는 곳으로 바뀌고 말았다.
여기에서 우리가 하나 짚고 가야할 것은 바로 익명성, 또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인터넷에 대한 오해이다.

익명성을 두고 보자. 익명성은 양면의 진실을 지닌다.
그 하나가 가려진 얼굴을 통한 남에 대한 근거 없는 말의 폭력이라는 부정적인 얼굴이라면, 사회적 계층적 위상을 벗어난 민주적 의견개진이라는 긍정성은 익명성이 지닌 또하나의 얼굴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선 그 뒷면의 긍정적인 얼굴에 대해선 서로가 낯설다. 특히 많은 부분에서 ‘말할 권리와 방식’을 독점하고 있는 ‘지역의 권위’들에겐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일 터이다. 도대체 그 말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진실에 접근하고 있는 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굴을 감춘 누가 감히‘대드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 실명제로 바뀐 목포시청 게시판

이처럼 아직도 우리 지역의 경우는 권위적인 사고체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말에는 항상 학연, 지연, 혈연은 물론이며, 각종 사회체계라는 얼개 위에서 돋아난 반쪽의 일그러진 말들이 돌아다닐 뿐이다. 여기에 어떤 합리성이나 민주성 같은 것들이 깃들기엔 정말 힘든 일이다. 바로 그 직접적인 증거가 시청게시판의 실명제 운용으로의 변화 같은 경우가 아니겠는가.
도대체 참지를 못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의지는 그처럼 깊은 것이어서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말들에 대하여 짜증부터 앞서고 마는 것이다. 이런 곳에는 제대로 된 말들이 살지 못한다.
말에 대하여, 이제 말의 형식은 고삐 풀 듯 풀어버리고, 그 속에 담긴 뜻과 진실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그리고 인간의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하여, 차가운 머리를 거쳐, 식도를 지나 혀와 입술로 돌아 나오는 말에, 세상이 지닌 권위니, 위계니, 질서니 하는 것들의 옷을 입히지 말자.

그리하여 말들이 좀 자유롭게 돌아다닐 때, 우리 사회의 투명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며, 도리어 남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험담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 대안언론 사이트 같은 곳에 직접 참여해보면 안다. 말이 질서정연한 우리들의 몸에서 우러나는 그것이듯이, 익명으로 떠도는 말의 공간 속에 얼마나 엄정한 질서가 스스로 정립되는지 모른다. 거의 ‘자동적’으로 질서가 생긴다. 그리고 그 질서는 힘있는 그 누구에 의해서 기획된 근대적 질서가 아닌, 우리들 개개인의 의견들이 모여서 형성된, 참다운 민주질서인 것이다.

말들의 해방은 참으로 엄청나게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앞당기고 있다. 바로 현정권의 탄생이 어찌 말의 해방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겠으며, 붉은 악마의 응원이나 촛불시위처럼 응집된 민중의 목소리들이 말의 해방 없이 이뤄질 수 있는 것들이겠는가.
이제 말은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봄을 맞아 이제 들불처럼 번질 노동자, 농민들의 많은 시위와 파업 역시, 사회적 약자의 말은 철저히 막아놓은 채 진행되는 각종 경제 논리들에 대한 말의 해방 작업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자, 이제 우리 지역에서도 어떻게든 말들을 풀어 놓아보자.
그리하여 “아쭈!”, “아니, 이게!” 같은 권위적인 말들 대신, “아야, 거-”, “아따, 동상”, “어이, 오살헐 놈아!” 같은 곰살맞기 그지없는 우리의 말들이 맨얼굴로 살아 돌아다닐 때, 우리들은 삶은 훨씬 살맛 난 것이 될 터이다.



독자 의견 목록
1 . 목포시 실명게시판... 말그대로 2003-04-20 / 16:40
2 . 참, 맛깔나는 글이로군요.. 율전 2003-04-20 / 21:16
3 . 신선한 의견이네요. 시민 2003-04-23 /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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