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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의 문화찾기


혁명의 현장에서 만난 우리들의 얼굴
동학유적지 답사 기행문
박관서/시인 2003/06/18 06:33    

지난 6월 6일 현충일날, 동학혁명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아직도 장애인, 노인, 여성 등 직접적인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이, 그저 눈에 띄고 손에 잡히는 정치권력이나 사회적 현상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는 지역 현실에서, 눈에 띄지 않게 묵묵히 활동하고 있는 목포 여성의 전화(회장 이혜경) 주관으로 다녀온 답사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중학생이 된 필자의 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동학혁명 유적지를 체계적으로 답사하게 할 수 있을까를 내심 고민하던 중이었다. 며칠 전에는 유홍준 선생의 '문화유산답사기' 뒷부분에 나오는 답사지도를 따로 복사해서 지니고 다니며 이를 연구(?)하던 중이기도 했던 터였다.

△ 황토현 가는 고부 삼거리

참으로 그러하다. 열정적으로 답사 안내를 했던 신정일 선생님(황토현연구회 대표)의 말씀처럼 갑오동학혁명의 정신은 봉건시대를 혁파하고, 그 어렵던 근대개발독재 시기를 넘어, 미력하나마 현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근간인 것이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바람직한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과거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더벅머리 젊은 날 가슴을 뜨겁게 했던 E. H. 카아의 전언 때문이 아니더라도, 갈수록 미세화, 극세화 되어 가는 첨단 기술문명에 눈멀어 홀로주체화 되어 가는 신세대들에게 이처럼 뜨거운 지난 역사와의 대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 없는 일이리라.

갑오동학혁명의 정신은 봉건시대를 혁파하고,현대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근간

마침 덥지도 춥지도 않는 햇살 흐린 6월의 날씨, 답사 여행엔 제격이었다. 목포에서 정읍까지 주최측에서 준비한 노래배우기와 새우깡까기(?) 같은 게임을 하다보니 약 2시간만에 역사의 현장인 정읍 고부에 당도하였다.

고부관아가 있던 고부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민중의 애환이 서린 남도 들녘의 역사와 그 역사를 관통하는 갑오동학농민혁명의 개략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고부초등학교 뒷편, 오 백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 널찍한 품안에 고즈넉이 잠겨있는 고부향교 교정에서 우리는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저마다의 가슴속엔 곡창이었음으로 도리어 봉건적인 정치권력의 희생양이 되곤 했던,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튀어오르는 불씨들을 담은 눈빛들로 말이다.

△ 초여름의 풍정 가득한 연못 위의 군자정

한 십여분 걸어 군자정(君子停)에 당도했다. 사방에 연푸른 개구리밥풀들 가득한 연못 한 가운데 세워져 있는 정자로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막힌 가슴을 씻어줄 듯한 풍정에 취하기도 잠시, 정자 마당에 그득한 비석들, 목 부러진 송덕비들이 경비병처럼 도열해 있다.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면서 동시에 아릿한 역사의 냄새가 온몸을 휘감아 왔다. 사람이 죽어서 남기는 이름은 비바람에 끄덕 없을 바위가 아니라, 묵묵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흙가슴이어야 한다는 것을 목 부러진 불망비(不忘碑)들이 뜨겁게 증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를 거울로 삼지 못하는 이들은 오늘도 돌 위에, 책 위에, 역사 위에 자신의 못난 이름을, 온 세월 두고 손가락질 받을 욕망의 흔적을 새기느라 정신이 없다. 답사 내내 박정희니, 전두환이니 하는 들쪼여진 이름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무엇인가 남기는 일의 두려움을 서로 눈치챘기 때문일까, 우리들은 이곳에서 단체사진을 찍지 않았다.

△ 목 부러진 불망(不亡)하고 있는 송덕비들

어느덧 점심시간, 무엇인가 남겨야한다는 조바심의 흔적 그대로 다시 500억원인가 하는 예산으로 신축하고 있는 동학혁명기념관 옆 '가보세'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들었다. 사회적 관심에 충일해 있는 사내들 몇몇이 침 튀기는 목청껏 참이슬 소주잔에 잠겨두고 뜯는 닭다리는 적당히 쫄깃쫄깃하여 참 맛이 있었다.

한민족 최초로 가능할 뻔했던 민중혁명을 무산시켜버린 현장에서

곧이어 당도한 황토현전적비 앞에서 우리들은 역사의 음성을 들었다. 갑오년 동학 봉기 후에 곧바로 서울로 진격하자는 김개남 장군의 주장을 이 눈치 저 눈치 다 보며 세월을 보낸 후, 국내로 진격한 일본군의 신무기에 처참히 무너져 한민족 최초로 가능할 뻔했던 민중혁명을 무산시켜버린 현장에서 우리는 작금의 한반도 상황을 보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공학이 아닌 참다운 민중적 기반으로 출발한 노무현 참여정부의 흔들리는 입장에서 우리는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는 민중들의 참요를 듣는 것이다. 아니 나직이 나직이 함께 부르는 것이다.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양키의 군화발에 짓이겨진 채 해결된 것은 아무 것도 없이 다시 일주년이 가까워오는 미선이, 효순이 때문이었을까? 아무런 세월이 흘러도, 어떠한 정권으로 바꿔도, 언제나 마찬가지인 우리들의 못난 모습 때문이었을까? 우리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 속에는 속울음이 묻어나고 있었다.

△ 녹두꽃 노래비, 동행했던 목포노동자문학회장 유종시인

"아니 그래. 양반 상놈을 없애고 민중의 대동세상을 꿈꾼 전봉준이 저처럼 삼단으로 된 양반 삿갓을 쓰고, 마치 성군인양 인자한 표정으로 위에서 내려보면서 창의문을 들고 서있는 초상화가 가당키나 하단 말이요? 정말 웃기는 일이지요!"
황토현기념관 벽에 원색으로 그려진 전봉준선생 영정과 전쟁그림들을 보면서 열변을 토하는 신정일 선생의 분노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도대체 언제쯤이나 이 땅에서는 명색이 주인이라고 외쳐대는 민중들이 전반적인 사회문화의 주류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답답함에 밖으로 나왔다.

전봉준이 저처럼 삼단으로 된 양반 삿갓을 쓰고...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세계사에 유래가 없이 쌓아올린 이조 오 백년의 수구보수적인 벽 앞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리라. 어찌 전봉준만이랴. 신채호선생의 지적처럼 역사적 호기를 놓친 존재들, 언제 한 번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 같은, 아니 최소한 미국의 흑인노예해방 정도의 역사적 자산도 챙겨보지 못한 우리들이 내면화시키고 있는 절망감이 문제이리라.

전봉준 생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을 입구에서는 마침 동네주민 누군가의 칠순잔치가 벌어졌는지 뽕짝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겨우 논 세마지기를 부쳐먹던 시골 훈장 전봉준의 집에는 제법 번듯한 가구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에 더하여 보통 초가집보다 한 세 배 정도는 두텁게 얹힌 초가지붕에 옆집을 사들여 만든 것으로 보이는 푸른빛 고운 잔디밭 누런 황토 담장 안에 전봉준의 모습은 단 한 장면도 볼 수 없었다. 이미 전봉준은 이 땅의 무지몽매한 민중들을 앞장서서 이끌고 간 훌륭한 지도자였다. 이렇게, 이렇게 민중들은 역사와 현실에서 타자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일찍이 이를 간파한 시인 안도현은 그의 시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우리 성상(聖上) 계옵신 곳 가까이 가서
녹두알 같은 눈물 흘리며 한 목숨 타오르겠네"

- 안도현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부분

발표 당시 문단의 뒷골목에서도 앞의 양반행색을 한 전봉준의 모습이나 초상화처럼 "우리 성상(聖上)"이 무어냐고 제법 논란거리였으나, 어쩌랴! 이는 앞에서 보는 것처럼 역사라는 이름 위에 저질러지는 보수 기득권층의 밥그릇 지키기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타자화된 못난 민중들의 전근대적인 우매함 인것을.

어머니 젖가슴처럼 광대무변한 들녘에 꽃처럼 매달려...

그러나 보라. 곧이어 들른 만석보에서 보라. 키를 넘는 동산 하나 제대로 인정치 않고, 어머니 젖가슴처럼 광대무변한 들녘에 꽃처럼 매달려 땀과 눈물로 세상의 식량을 엮어내고 있는 배들평야를 보라. 일하는 사람들의 얼굴, 그 위에 피어난 땀방울들을 보라. 역사는 너희들의 정치공학, 사회과학 속에 있지 않고, 현실은 너희들의 피 튀기는 계산 속에 있지 않다. 참다운 역사와 현실은 저렇게 말없이 제 길을 일구어 가는 이들의 숨결 속에 있는 것이다.

△ 광활한 만석보에서, 필자.

답사 여행의 마무리엔 모처럼 빠져나온 일상의 홀가분한 맘자락 위에 흥겨운 술 한 잔이 어찌 없으랴? "이화우 흩날리제 울며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나를 생각는가......" 하는 시조로 유명한 매창묘에 들러 우리들은 역사의 갈피 속에서 흐트러졌던 마음을 정리하고 곧장 영광으로 향했다. 핵폐기장 유치반대를 위한 릴레이단식의 현장에서 우리는 힘찬 박수를 쳤다. 수척해진 그들을 위하여, 오랜 시간 숨겨져 왔던 우리들의 또다른 얼굴을 위하여, 사발통문처럼 둥근 박수를 힘차게 쳤다.



독자 의견 목록
1 . 답사모임이 있나여? 목포에.... 2003-06-18 / 13:46
2 . 박관서님, 정말 좋군요^^ 접주의 후예 2003-06-18 / 19:04
3 . 혁명의 꼬리나마 놓치지 않으려고... 네스 2003-06-18 / 19:10
4 . 파이팅입니다. 목포시민 2003-06-19 / 19:47
5 . 알켜 주세요? 우리 지역 이야기도요. 고딩 2003-06-20 / 10:42
6 . 우리도 참사람이 되자 후추가루 2003-11-25 /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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