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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의 문화찾기


우리는 김남주다, 해남군민이다.
'땅끝문학' 창간호를 읽고
박관서/시인 2003/12/01 12:10    

최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주화에 발맞추어 각 지역의 문화예술도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동안 군사독재를 비롯한 반민주세력에 맞서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던 양심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문화예술의 내적 미학과 지역문예운동으로 그 지향점을 전환하면서 각 지역의 문화예술은 새로운 활성화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 해남 땅끝문학회에서 간행한 '땅끝문학' 창간호
따라서 이러한 지역문예운동의 기반은 주로 한국민예총과 민족문학작가회의 전국 각 지회지부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전남지역 역시 지난 1993년 12월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전남지회가 전국 최초로 결성되면서 지역문예운동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물론 문학분야에 있어서는 지난 80년도에 한국민족문예운동의 중심이었던 광주전남민족문학작가회의의 중심적인 역할이 전제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하여 현재는 목포를 비롯하여 순천, 여수, 영광, 진도, 해남, 함평 등 전남 각 지역에 지역문학을 활성화시키려는 단체들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정치경제적인 소외와 차별을 내부동력으로 삼아 폭 깊은 문화예술의 세계를 키워왔던 남도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하여 그 동안 중앙문학지 중심으로 진행되던 한국문학의 현실에서 현재는 나름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담고있는 많은 지역문학지들이 출간되고 있다. 우리 전남지역에서만 보아도 광주전남작가회의 기관지인 {함께 가는 문학}을 비롯하여 순천의 {사람의 깊이}, 목포의 {문학과 세상}, 영광의 {영광문학}, 해남의 {땅끝문학} 등이 매년 년간지 형태로 발간되고 있다. 물론 아주 오래 전(?)부터 각 지역을 중심으로 출간되던 무슨 무슨 지역문학지들이 있었으나, 이네들은 그 단체의 성격에 맞게 아주 치졸하고 조잡한, 한마디로 문학이라 부르기도 힘든 친목지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터라, 본고에서는 논외로 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이처럼 새로 발간되는 지역문학지들 중에서 특히 {땅끝문학}과 {영광문학}은 눈길을 끈다. 갈수록 옹색해지는 군지역에서 아무래도 어렵게 발간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한국문학에 있어 한 분기점 역할을 한 영광의 시조시인 조운과 해남의 민중시인 김남주라는 걸출한 선배문인 때문일 것이다.
특히, 지난 80년대라는 질곡을 문학의 이름으로 헤쳐나간 김남주 시인에 이르러서야 한국문학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참다운 숨결과 만날 수 있었지 않았던가. 지난 80년대의 참으로 아름다운 해방과 열림의 민족문학이 김남주 시인으로 해서 가능하지 않았던가.

아, 지금도 기억난다. 지난 95년경이었던가. 막 출소하여 수척한 얼굴로 목포 가톨릭회관 강당을 울리는 시인의 걸걸한 음성은 그대로 문학의 경처럼 들렸었다. 문학은, 시는, 책상머리에서 조작해내는 것이 아니라 울고 웃는 우리들의 일상에서 건져내는 것이라는, 시인의 일갈에 신춘문예니 신인상이니 하는 이름에 목을 메고 있던 우리들은 얼마나 부끄러웠던가.

그래, 우리들은 아직도 김남주고, 해남군민이다. 그러하다. 참여정부라고 기껏 출범한 현정부는 단 일년도 못되어 파이이데올로기를 내세운 경제개발독재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곤봉과 방패의 휘두름 앞에 맨주먹으로 쓰러져가고, 청정한 남도의 하늘과 바다는 핵폐기장 유치를 위한 음습한 저울질에 신음하고 있다.
참으로 그러하다. 미국대통령 케네디가 분단의 땅 베를린에서 자기는 베를린 시민이라고 했듯이, 우리는 여전히 차별 받는 남도의 민중, 붉은 황토길이다.
그리하여 필자에게 읽힌 {땅끝문학} 창간호는 청송녹죽의 정신 김남주를 중심으로 읽혀졌다. 쪽수를 가늠하여 가장 먼저 펴든 김남주의 시편들은 오랜만에 읽는 그만큼 뜨거운 것이었고 '피로 쓰여진 언어의 화살'이라는 평문은 깊고 넓은 시원의 바다처럼 온몸 가득 출렁거리는 물결이었다.

그리하여, 그냥 사람과 자연이 어울려 살고 있기에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논란에서 비껴있다는 머릿글에서 마음이 상했고, 다시 격정의 시대가 온다고 해도 뜰에 핀 해바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한 생을 뜨겁게 견딜 수 있다는 김경윤의 싯귀에서 마음을 달랬다.

언뜻 지나치기 쉬운 독기 서린 눈을 들어 천천히, 마취주사에 찔려 쓰러진 짐승의 얼굴에 젖은 수건을 덮어놓고 뿔을 잘라낸 그 자리에 돋아날 그리움에 취해있는 김경옥을 발견하여 눈이 틔었고, 시골 논두렁 늙은 이 나라의 오빠들에게 차배달을 가는 오빠다방의 김양을 내려보는 이봉환의 눈자위를 지긋이 바라보며 뜨거워졌다.

어디 이뿐이랴. 풀먹인 외할머니의 삼베 손에서 어머니의 발걸음을 지나온 황실이 푹푹 찢어 딸년 입안에 맛나게 넣어주고 있는 유영곤의 손길과 소 키우던 농협빚 떼어먹고 야반도주한 친구로 해서 속 끓이는 사내를 쓸어안는 머리칼 고운 아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태정의 손길 위에서 마음 든든해졌다면, 너무 헤픈 것인가. 홀로 젖어버린 것인가.
하지만 그렇다. 너무 헤프면 어떻고, 홀로 젖어버렸으면 어떤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우리들은 저들의 시선으로 글을 읽었고, 저들의 손끝으로 원고지를 메웠으며, 저들의 목소리로 노래를 했던가.

이제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낼 그릇을 찾아냈거늘, 두 눈 부릅뜨고 나아가야 할 일이다. 향토문학이 곧 세계문학이란 말이 지닌 엄결성과 치열성에 몸 부려야할 일이다. 지역문학이 지닌 특수성과 세계문학으로 이어지는 보편성을 찾아내기 위하여, 지역과 지역민들의 삶과 모순 속으로 온전히 투신해 들어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모른 체한 것이 있다. 앞서 마음 상한 머릿글처럼 나무와 자연을 모른 체 했고, 금 간 진짜 녹찻잔과 두 번 이혼한 여자와 보리공판 전날 밤에 남정네의 힘을 그리워하는 과부어머니의 그리움을 모른 체 했다. 어쩌면 아직 설익은 내 안의 김남주가 그런 것인지 모른다. 미안하다. 그러나 미안하지 않다. 님들이나 나나 다 김남주고, 해남군민이기 때문이다. 정말이다.

독자 의견 목록
1 . 올 여름에... 율전 2003-12-01 / 15:46
2 . 창살에 햇살이 손님 2003-12-01 / 20:27
3 . 정현택 시인의 시 무지랭이 2003-12-03 / 00:35
4 . 난 모르고살았내 국도1호선 2003-12-27 /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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