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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어머니로부터 받은 아름다운 유산
차라리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용기가 생기는 것은 필자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박관서/시인 2003/09/09 16:35    


근 팔 개월만에 어머니께서 당신이 사시던 집으로 돌아가셨다. 함께 계시자는 권유에도 끝내 고향에 있는 14평 독신아파트로 다시 가셨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여 가라, 어여 가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허름한 역광장 멀리 사라지는 어머니를 보며 울컥 속울음이 나왔다.

칠순하고도 중반을 넘기신 어머니에게서 식도암이 발견된 것은 작년 12월이었다. 언제부턴가 속이 메스껍고 명치끝이 답답해서 위장약을 장복한다는 얘기를 어머니 생신 날에야 들었지만, 그때는 그저 나이가 드셔서 그렇거니 하였다. 하지만 가끔씩 드리는 안부전화 끝에, 그 얘기를 들은 아내의 표정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듯하여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들어 그 날로 어머니를 모셔서 건강진단을 하였다.

그 보름 후쯤, 어머니는 식도암 중기 후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식도와 위가 만나는 지점에 암세포가 이미 상당히 많이 번져서 한 시라도 빨리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식도를 통째로 들어내고 여기에 더해서 위를 반정도 잘라낸 후 남은 위를 끌어올려 식도 역할을 하도록 해야하는, 약 8시간이 넘게 걸리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손바닥만큼 굵은 송이눈이 펄펄 날리는 지난 12월 말경 병원에 입원해서 안정제를 드시고 잠 든 어머니를 두고, 병원 근처 여관에 방 2개를 잡아 투숙한 우리 4형제는 아이들이 잠 든 옆방에서 서로 소리 없이 울었다. 사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였다. 모두 다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에 도대체 얼마가 들어갈 줄 모르는 병원비 걱정에도 그랬으나, 그보다는 너무도 억울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생애가 서로의 가슴을 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열 아홉에 시집와서 큰 형을 낳아, 막 해방이 되자 먹고살길 막막해서 경찰이 된 아버지, 하필 6·25전쟁에 말려 인민군에 쫓기다 끝내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시체더미 속에 버려졌단다. 이를 뒤져 간신히 똥물로 살아난 아버지는, 이후 거의 눈이 돌아 가정이고 뭐고 팽개치고 오직 빨치산과의 투쟁만을 전부로 삼는 우익경찰이 되어 밖으로만 떠돌았단다. 친정 고향에 숨어사는 어머니를 나 몰라라 하다가 결국엔 첩을 얻어 대처를 떠도는 아버지의 어처구니없는 그늘 아래서, 어머니는 큰 형 하나를 키우며 십팔 년을 홀로 사셨다.

어찌 편한 생활이었겠는가. 쓰라린 마음이야 그렇다해도 우선 먹고살 것을 위하여 소작이든, 길쌈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버티는 청상과부의 생활 장장 십 팔 년이 지나,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일을 내고 경찰복을 벗은 아버지를 다시 맞아 들였단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게 형님 아래 우리 삼남매였다.

하지만 사람 사이에 생겨난 불행의 그늘은 뿌리가 깊은 법이었다. 기나긴 방탕생활로 황폐해진 몸과 마음을 견디지 못해 평생을 실업자로, 술주정뱅이로 살아가는 아버지는 끄떡하면 구타와 욕설이었다. 물론 형편없는 집안 사정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는 별별 일을 다하다가 끝내는 노가대 막일로 정착하였다.

끝내 정신병이 도졌던 아버지가 간경화로 돌아가시던 무렵에는, 이미 가정이란 말 그대로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막내동생을 제외한 우리 삼형제는 먹고살 길을 찾아 서울로 올라와 공장으로 학교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고, 어머니만 홀로 어린 막내와 함께 고향집에 남았다.

그래, 그러했다. 그 어머니, 여덟 시간이 넘는 수술을 끝내고 중환자실에서 고요히 잠들기를 나흘째이던가. 온통 붕대를 감은 몸으로 간신히 뜬 눈 가에 흐르는 눈물이라니. "어여, 어여 가거라. 나는 괜찮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 맑은 눈빛을 차마 마주볼 수 없어 우리들 모두 돌아서고 말았던가.

이러하던 어머니가 다시 건강해져서 친인척 분들이 계시는 고향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어찌 팔 개월의 투병 세월뿐이었겠는가. 수십 년이 훌쩍 지난 것 같은 마음 속의 기억이 어찌 보면 훨씬 더 정직한 세월 정산법이리라.

그래, 필자는 지금 희망의 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살려달라 외치는 삼형제와 함께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했다는 삼십대 주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며,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만연한 자살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살들 역시 절망의 끝에서 힘들게 선택한 또다른 삶의 방식들일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가. 팔순이 다되어 고향으로 찾아간 우리 어머니 같은 삶의 방식도 괜찮은 것 아닌가. 더 지난하고 힘들었으며 소위 폼생폼사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정말 볼품 없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 아들인 필자에게는 희망의 뿌리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희망은 절망에서 나온다. 웬만한 어려움이나 절망이 닥쳐 몸과 마음이 절망이라는 어두운 그늘에 푹 빠져버렸을 때면 묘하게 마음 밑바닥에 돋는 게 있다. "그래, 좋다. 한번 해보자. 까짓 것!" 하면서 온몸이 비에 젖어버렸을 때처럼 차라리 편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용기가 생기는 것은 필자가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 광주MBC 사보 9월호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독자 의견 목록
1 . 어머니 율전 2003-09-09 / 21:26
2 . 빠른 쾌유를 기원드립니다 노만 2003-09-09 / 21:51
3 . 남은 여생 행복하시길..... 독자 2003-09-12 / 10:34
4 . 윗글을 보니 참으로 안타갑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추가루 2003-11-25 / 21:35
5 . 아~어머니 국도1호선 2003-12-27 /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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